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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불랑카>의 테마음악 "As Time goes by(세월이 가면)"
[ 영화 <카사블랑카> ]
영화제목으로 가져다 쓴 도시이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약간은 퇴폐적이고 홍등가 비슷한 분(粉) 냄새가 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미 북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성한 무역항으로 성장했던 이 도시는 태생부터가 그처럼 돈과 사랑을 쫓아 각지에서 몰려든 부나방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도시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집이고, 또 분냄새 짙은 여자들.......
오늘날 가리봉동의 허름한 대폿집에서부터 특급호텔의 분위기 좋은 바 이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흔하고 흔한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은 마이클 커티즈가 감독한 이 영화로 인해 조금은 로맨틱한 아우라까지 걸치게 되었죠.
영화 속 술집 '아메리칸'의 주인은 릭, 그 배역을 맡은 배우는 험프리보가트, 그리고 그의 잊지 못할 파리의 연인은 일자, 그 배역은 잉그리드 버그만.......
흘러간 그 이름들에서 느껴지는 향수도 찐하지만 퇴폐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느낌의 카사블랑카의 이름이 더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은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천지 미국으로 가는 비자를 따내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이방인들이 한없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던 갈증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자의 남편 라즐로는 침략자 독일에 대항한 항쟁운동의 선봉에 선 애국투사이고 그가 투옥되어 사형 집행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의에 빠져있던 일자가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던 릭은 잘 놀고, 잘 쓰는 사업가이자 마초기질 다분한 남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면서도 파리를 함께 떠나자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일자(잉그리드 버그만)는 착한 동양적 이미지가 팍팍 풍겨나는 미인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떠나 보낸다'이고 그런 선택을 한 릭(험프리 보가트)은 남자 중의 남자로 전 세계의 여인들에게 공인을 받게 됩니다. 당초 릭이 가진 통행증으로 남편을 미국으로 탈출시켜주는 대신 그녀는 릭의 곁에 남겠다고 했던 일자에게 자기 대신 남편 라즐로와 떠날 것을 종용하면서 릭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반대의 선택을 했을 때,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당신은 결국 후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파리에서 사랑했던 여인 일자를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은 결국 그녀를 남편과 함꼐 떠나보내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물론 그와 함께 카사블랑카에 남겠다고 한 일자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거둬들이도록 한 릭의 마초적 결단은 도덕적인 해피엔딩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긴 했지요.
다시는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일자의 사랑스런 여인상과 우국지사인 남편을 위해 헌신적인 아내로서의 위상, 그 모두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안개 속에서 릭이 코트 깃을 세우고 담배를 멋지게 꼬나물며 협객처럼 그녀를 떠나보낼 수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머레이 버넷이 쓴 소설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를 각색한 것인데 원작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194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도 한창 제2차세계대전 중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감흥도 남달랐으리라 여겨지는데, 그 당시 카사블랑카도 전쟁의 와중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 촬영은 현지에서 이뤄지지 못했고 전편 모두 할리우드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매력적인 씬 중의 하나는 영화의 주제곡이자 일자가 사랑한 노래 'As time goes by'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흑인가수 샘의 연주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You must remember this
A kiss is still a kiss
A sigh is still just a sigh
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
이것은 기억해야 해요
키스는 단지 키스일 뿐이고
후회는 그저 후회일 뿐이라는 걸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근원으로 돌아 가게 되죠
And when two lovers woo
They still say "I love you"
On that you can rely
No matter what the future brings
As time goes by
두 연인이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며 구애한다면
당신은 믿어도 좋아요
미래가 어떻게 되든지 말이에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요
(중략)
[ 영화 카사블랑카 뒷얘기, 일자를 라즐로와 보내는 사나이 릭 ]
영화 <카사블랑카>의 시나리오는 촬영이 시작될 시점에서도 대강의 줄거리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의 행동과 감정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었고, 특히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특히 불분명했지요.
잉그리드 버그만은 그녀가 ‘일자’라는 인물을 만들어 가는데 느꼈던, 어떤 심리적시계 제로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내 문제는 이 이야기 속에서, 두 남자인, 릭과 라즐로가 나와 똑같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나는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물었죠 “결말부분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와 떠나죠?” 그들은 내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것을 결정하지 못했고, 우리는 2개의 다른 결말들을 촬영하게 될 것입니다. 한 결말에서, 당신은 릭과 떠나고, 다른 결말에서 당신은 라즐로와 떠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것을 빨리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남자에게 하는 행동과 애정 혹은 연민을 느끼는 남자에게 하는 행동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음… ,그들이 내게 대답하기를, 당신의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말라. 여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세요. 우리는 때가오면 그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시나리오의 수정을 주장한, 영화 제작자, 할 윌리스의 압력을 받고, 마이클 커티즈 감독도 정당하게도 자신이 무엇을 찍게 되는지 알고 싶다고 요구하게 되자, 공동 시나리오 작가들이었던, 엡스타인 형제와 하워드 코츠는 결국 일자가 라즐로와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말은, 헤피앤드와 정반대였고, 3년 전에 있었던 릭과 일자 간의 어긋난 사랑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시대의 정치적 맥락에 의해 정당화 되었고, 그것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릭은 불법거래인,애국자,배반자,대독협력자,그리고 레지스탕스가 드나드는,작은 세계의 냉소적인 관찰자로,이 릭의 카바레라는 소우주는 세계를 피로 물들인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릭은 환멸에 빠져있었고,차라리 냉소적인 인물이었으며,당시는 중립은 용납될 수 없는 시대상황이었죠. 즉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래로, 미국은 확실하게 反-파시스트 투쟁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이 릭의 눈을 뜨게 만들었고, 그를 영웅으로 만듭니다. 일자에게 카사블랑카를 떠나라고 요구하고, 유럽의 레지스탕스 지도자들 중 한명인 라즐로를 따라가라고 요청한, 릭은 보편 이익이라는 제단에 자신의 감정들을 희생시켰죠. 한편으론 사나이다움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냐는 여운도 짙게 남겼습니다.
[ 터프 가이 험프리 보가트 이야기 ]
고독한 영웅, 이 시대 최고의 센티멘탈리스트이자 고전 흑백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우상 험프리 보가트는 2차 대전을 전후해 할리우드를 풍미했으며 죽은 뒤에도 우리 곁에 남아 그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명배우입니다.
파리가 이미 나치의 수중에 들어간 1940년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망명한 여인과의 아름다우면서도 고독한 사랑을 그린 영화 42년 <카사블랑카>에서 그가 만들어낸 장면, 트렌치 코트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 연기를 날리는 멋진 이별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앞서 그를 빛나게 한 영화는 41년 존 휴스턴 감독의 데뷔작 <말타의 매>입니다. 필름 느와르의 선구자격 작품으로 인정받고 영화사에서 손꼽는 명작인 이 작품에서 험프리 보가트는 사설 탐정으로 출연해 열연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사립 탐정의 전형을 완성하였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후 51년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주정뱅이 선장으로 나와 같이 주연을 맡은 캐더린 헵번과 완벽에 가까운 연기 조화를 이루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으며, 54년 작 <케인호의 반란>에서는 거의 광적인 모습으로 연기하여 진짜 미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호연을 했습니다.
그는 멋진 모습만큼이나 상대 여배우 복도 많아 잉그리드 버그만, 캐더린 헵번, 오드리 헵번 등과 함께 등장하여 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평생 술과 담배를 사랑하였던 험프리 보가트는 흑백 영화 시절의 대표적인 배우이며, 터프가이이자 로맨틱 히어로로 아직도 영화 팬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 세기의 성녀이자 불륜녀(?)였던 잉그리드 버그만 ]
역사상 가장 성공한 로맨스 통속물로 꼽히는 <카사블랑카>를 보면 아주 인상깊은 대사 한마디가 있죠. 바로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이라는 말입니다. (Here's looking at you, kid) 의 적절한 의역입니다. '이 유리잔에 당신의 모습이 비치네요 뭐,이런 멋없는 표현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은 참 적절한 의역입니다)
이 말은 험프리 보가트가 연인인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한 말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러한 '대사'에 딱 어울릴만큼 매혹적인 눈을 가진 여배우입니다. 카사블랑카의 자세한 내용은 잊을 수 있어도 이 대사는 잊기 어렵습니다.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의 이별장면으로도 유명한 흑백고전 <카사블랑카>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어떤 배우였을까요?
잉그리드 버그만은 1915년 스웨덴에서 출생한 유럽출신의 여배우였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3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여배우지만 1939년 <인터메쪼(간주곡)>라는 영화를 비롯하여 이후의 거의 모든 활동은 헐리우드에서 했던 '헐리웃의 대표적인 40년대 여배우입니다.
1939년 작품인 <인터메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 역으로 알려진 레슬리 하워드와 공연한 멜로영화입니다. 그다지 뛰어난 영화는 아니지만,음악과 로맨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흑백영화였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초기의 잉그리드 버그만 영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당시 버그만의 24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인터메쪼>는 36년 스웨덴 시절에 만든 잉그리드 버그만의 출연작인데 헐리웃에 진출하여 3년 만에 자신이 다시 출연하여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36년 작품은 우리가 볼 수 없었죠.
<인터메쪼> 출연 2년 뒤인 1941년 잉그리드 버그만은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인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는 행운을 잡습니다. 40년대 헐리웃 대표 미녀인 라나 터너와 함께 출연하게된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 영화를 계기로 본격적인 '메이저 헐리웃 영화'에 계속 출연하는 톱스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듬해인 1942년에 출연한 작품이 <카사블랑카>였고, 이 작품으로 그녀는 정상의 스타자리에 오릅니다. 사실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의 이 영화가 제작 당시 성공에 회의적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진 비화입니다. 예상을 뒤엎고 <카사블랑카>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 '전설적 고전'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죠.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스펜서 트레이시,험프리 보가트라는 헐리우드 최고 스타들과 연달아 공연한 이후 그녀를 맞이한 배우는 역시 30-50년대에 걸쳐서 독보적인 정상급 인기를 구가한 스타 게리 쿠퍼였습니다.
1943년 작품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였는데, 이 영화는 유명한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짧은 머리의 화장을 안한 수수한 생얼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게리 쿠퍼와의 애틋한 사랑이 감동으로 남겨진 영화였는데 '키스할 때 코가 걸리지 않나요?'라는 대사가 유명해진 영화죠.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키스도 못해 본 순수한 처녀 역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생애 최초의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시에도 꽤 히트하였는데 두 남녀의 안타까운 이별 장면이 펼쳐지는 종반부의 부분이 꽤 여운이 남는 영화였죠. 잉그리드 버그만의 그다지 많지 않은 칼라영화이기도 했습니다.
1944년에 출연한 <가스등>은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29세의 무르익은 나이와 원숙한 미모를 자랑하던 시기였고, 이때가 그녀의 가장 절정기 때라고 할 수 있었죠. <가스등>은 재산을 노리고 아내를 독살하려는 살인마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는 여성의 이야기인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 <성 메리 성당의 종>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9년까지 무난한 활동을 펼칩니다. <오명>,<개선문>,<남회귀선>,<잔다르크>,<망각의 여로> 등 출연작품들이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개봉되었고, 특히 이 기간동안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에 3편이나 출연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충실한 아내이자 정상급 헐리웃 여배우인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이 때 갑자기 벌어집니다.
1950년 그녀는 갑자기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에게 소위 작업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불륜 간통을 저지른 것이죠. 그가 대단한 감독임에는 틀림없으나 그의 영화(무방비 도시)를 보고 그에게 푹 반하여 멀쩡한 가정을 버리고 달려간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 사건은 세기의 불륜으로 유명한 사건이며 고고한 이미지의 여배우인 그녀는 한순간에 파렴치한 색녀로 전락하였습니다.
* <스펠바운드>에서 그레고리 펙과
이로 인하여 그녀는 헐리우드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래서 1950년부터 1955년까지 6년 동안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럽영화 출연시대였습니다. 13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버리고 로셀리니 감독이 있는 이탈리아로 가서 그와 재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살면서 비록 헐리우드에서는 추방당했지만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영화중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은 로셀리니 감독과 찍은 3부작 <스트롬블리>,<유로파 51>,<이탈리아 여행>과 장 르노아르 감독의 코미디 <엘레나>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불륜상대로 유명한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거장중의 거장으로 <무방비 도시>,<전화의 저편>,<독일영년>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시대의 대표감독이기도 했습니다.
* <이탈리아 여행>에서
아무튼 영화 속에서 조강지처나 성녀 이미지였던 그녀가 로셀리니 감독과의 동거를 한 사실은 그녀의 팬들에게는 당시 꽤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태어난 이사벨라 로셀리니 역시 잉그리드 버그만을 쏙 빼닮은 딸로 역시 매혹적인 여배우로 성장하여 <백야>,<죽어야 사는 여자>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졌죠. 미모만 따지면 그 어머니의 그 딸입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영화에서 볼 때 마치 잉그리드 버그만이 환생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956년 드디어 잉그리드 버그만은 헐리우드에서 해금되어 7년 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헐리우드 복귀작은 아나스타샤 공주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 아나스타샤(국내 개봉명은 ‘추상’)였고, 이 영화로 다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 <아나스타시아>에서
정말 감격적인 성공적 복귀였습니다. 이후 <무분별>,<여섯번째의 행복>,<이수> 등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가 되었고, 이수 이후로는 그다지 두드러진 활동을 못한 편입니다. <황색 롤스로이즈>와 <선인장 꽃>,<오리엔트 특급살인> 등의 영화가 국내 개봉은 안하고 TV나 DVD혹은 케이블 방송 등으로 소개되었죠.
특히 1974년 작품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는 불과 몇 분 출연했음에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니다. 이 영화에서 58세의 곱게 늙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헐리우드으로 진출했다가 다시 유럽에서 활동하고 다시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등 파란만장한 그녀의 영화계 이력이 있지만 가정에서도 13년간 살아온 남편을 버리고 로셀리니 감독과의 재혼을 했고, 죽고 못사는 커플 같았던 이 결혼도 결국 7년만인 1957년 종지부를 찍었고, 1958년 세번째 남편과 재혼할 만큼 순탄치 않은 가정생활을 한 셈입니다.
* <브람스를 좋아 하시나요(이수)>에서 이브 몽땅과
특히 그녀는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완전히 도려내는 불운한 말년을 살았고,1982년 영국에서 몇명의 지인들과 조촐한 67세 생일파티를 한 이후에 눈을 감았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세상을 떠난 시기와 비슷하게 헨리 폰다,나탈리 우드, 윌리암 홀덴이라는 유명스타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을 떠나서 많은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카사블랑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스등>,<추상(아나스타샤> 등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 속 모습에서 정말 눈동자에 건배를 하고 싶은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배우로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랜 세월 각인되어 온 추억의 스타였습니다.
* 영화에서 리자(잉그리드 버그만)이 릭의 카페로 들어와 샘에게 "As time goes by"를
들려달라고 간청하는 장면,리자가 애인(릭)을 배신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샘은 떨떠
름한 표정으로 연주를하는데...
첫댓글 옛날에 Bertie Higgins가 부른 Casablanca를 듣고, 후에 영화를 보니, 그 노래가 영화에 없어서, 가사를 음미했더니 음악이 더욱 좋아했드랬지요.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는 동 영화를 보고 감동하여 히긴스가 그 느낌으로 만들어
불러 대히트를 쳤던 곡. 1982년 29주동안 빌보드 차트에 올라 빅 히트를 기록한 노래였
는데...영화에서 나오는 "As time goes by"와는 분명 다른 노래이지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내용을 따라 가느라고 바쁘게 보았지만 나중에 두세번을 더 보면서 제대로 즐긴 기억이 나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LA 거사에게! 여긴 억수로 추운데 그곳은 쾌청한 가을날씨? 캘리포니아 날씨는
지구촌에서 알아주는 기후 아닌감?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항상 관심을 보여
주어 감사하이. <카사블랑카>가 이렇게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될 줄은 당시 이 작
품에 참여했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지. 하여튼 당대의 미인 버그만과 터프가이
이자 마초 스타일인 보가트의 열연에 힘입은 바가 컸으리라 생각되네. Have a Good Day!!
끝으로 올레TV 영화채널을 통하여 천원이면 <카사블랑카>를 감상할 수 있음을 덧붙이니 참
고들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