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최고의 해! / 양선례
출근하려고 서둘러 준비하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다. 코로나에 확진되었으니 알아서 하란다.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오전에는 나주 출장, 점심을 급하게 먹고 한 시간 거리의 영암에서 3시간 강의가 예약된 날이었다. 아무런 증상이 없으니 이대로 갈까? 그래도 사람 많은 데서 강의까지 하는데 검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두 마음이 다툰다. 행여 나 때문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이겼다.
보건 선생님에게 전화하니 호흡기로 유명한 이비인후과를 추천한다. 신속 항원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다고 알려도 가는 게 더 확실하단다. 병원 도착하니 아홉 시다. 입구부터 코로나 검사자로 북새통이다. 휴일에 검사하지 못한 환자가 밀려드나 보다. 개인 병원치고는 꽤 큰 현관인데도 서 있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여기서 오히려 코로나에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차례를 기다렸다. 30분이 넘어서야 이름이 불린다. 십여 분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나오면서 이번에는 의사 면담이 있단다. 그러면서 살짝 귓속말로 확진되었다고 알려 준다. 이럴 수가. 검사 받는 동안에도 나는 아닐 것으로 믿었다. 의사는 무증상이라고 말했더니 혹시 밤에라도 증상이 나타나면 먹으라면서 해열제와 진통제, 그리고 위장 보호약이 각기 하나씩 든 약을 처방해 준다.
남편은 지난 목요일부터 종종 기침을 했다. 그런데도 새벽 수영을 다니면서 생긴 비염으로 재채기를 자주 했기에 코로나와 연관짓지는 못했다. 주말에 3주 만에 소휴당에 가서 숙식을 함께한 게 원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에는 아점을 먹고도 일어나지 못했다. 텃밭에 나가서 일한다더니 오후 늦게까지 잠만 자서 어디 아프냐고 물었었다. 그때 이미 코로나에 걸렸었는데 그도 나도 몰랐던 거다. 월요일 출근길에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들렀다고 했다.
결국 나도 피해가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이제는 안 걸린 사람이 몇 되지 않아 희귀 동물 취급을 받았다. 나보다 행동 반경이 좁고, 굉장히 조심하는 사람도 걸린 예가 많아서 더 그랬다. 몇 년 전에 고산병을 이겨야 갈 수 있는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에서도 두 딸과 여동생은 힘들어했는데 나만 멀쩡했다. 내심 나는 호흡기 증상에는 강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장 가까운 데 폭탄이 있었다.
강의를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학교에도 전화해서 복무를 처리하고, 넉넉하게 장을 봐서 남편과 소휴당으로 갔다. 오후가 되니 조금씩 머리가 아파 왔다. 저녁을 먹고는 치우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식은땀이 나다가 금세 또 한기가 들었다. 허리와 엉덩이가 누구에게 맞은 듯 쑤셨다. 돌아누울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즈음 증상이 거의 없던 남편이 이런저런 수발을 들어 주었다. 코로나 치료제로 받아온 남편의 약을 먹었다. 정확하게 12시간 간격으로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내가 다녀온 병원에서도 중간에라도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라고 했지만 그곳은 너무 멀리 있었다.
서른 시간을 내리 잠만 잤다. 목이 마르면 물만 한 컵 마시고는 다시 누웠다.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전화도 귀찮기만 했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쇳소리가 심하게 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사흘이 되니 깨어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넷플릭스에서 크리스마스 영화를 내리 세 편 보았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과 동화 세상을 옮겨온 듯한 설경, 포인세티아의 붉은 장식이 아름다웠다. 새벽에 하는 월드컵 축구까지 보았다. 그 와중에도 삼시 세끼 밥은 꼬박꼬박 챙겼다. 4일째 되는 날은 중무장을 하고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수산 시장에 갔다. 주말이 아니어선지 한가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키조개와, 이맘 때만 잠깐 먹을 수 있는 새조개를 한 통씩 사 왔다. 무밭 사이 고랑에 난 냉이와 먹기 좋게 자란 봄동에다 집에서 가져온 새송이 버섯까지 넣어 해물 샤부샤부를 해 먹었다. 며칠 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인지. 만족스러운 한끼였다.
소휴당에서 5일을 보내고 순천으로 왔다. 잘 먹은 것 같은데 몸은 부대꼈는지 몸무게가 빠졌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마지막 달력만이 남았다. 올해는 의미 있는 일이 많았다. 먼저 남편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퇴사하기 전의 회사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서 하는데 월급은 반 토막이고, 이름은 계약직이 되었다. 그러나 아침을 먹으면 나갈 데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2월에는 아들이 취업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한다. 7월에는 큰딸이 카페를 열었다. 단골이 조금씩 늘어가고, 무엇보다 즐겁게 일하는 딸을 보면 대견하다. 집에서는 설거지도 안 하던 딸이었는데 물 마를 새 없는 직업이라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말이다. 11월에는 수필집을 냈다. 지인들 불러 거하게 잔치도 벌였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별거 아닌 일일지라도 내게는 오랜 꿈이었다. 일상의 글쓰기 문우들이 함께 기뻐해 주고 무엇보다 수업 시간에는 독설을 날리는 교수님이 따뜻한 추천사를 써 주셔서 고마웠다. 이 수업이 아니었다면 단지 꿈으로만 그쳤을 것이다.
내년 봄에는 아들이 결혼한다. 오래 기다린 예비 며느리와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여름이 되면 작은딸이 돌아온다. 머나먼 타지(파라과이)에서 지낸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회사는 부모에 한해 왕복 항공료를 지원해 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조차 물 건너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달에 딸이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알려 왔다. 잘하면 겨울방학에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남미를 또 가게 생겼다. 고장 난 허리 때문에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생만 실컷 하고 온 지난 여행은 잊고, 이번에는 눈 크게 뜨고 제대로 즐기다 올 참이다.
세상만사 좋을 수만 있으랴. 코로나 확진으로 처음으로 일상의 글쓰기 수업을 못 들었다. 병원 다녀오는 길에 케이티엑스(KTX)에서도 이어폰을 끼고서도 들었고, 모임이 있는 날이면 끝 부분에라도 얼굴 도장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컴퓨터를 켜지도 못했다. 비록 몸이 좀 고생했으나 그조차 잠시 쉬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이만하면 2022년은 내게 최고의 해이다.
첫댓글 오랜 꿈을 이루었으니 정말 선생님께는 올해가 최고의 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내년에도 올해 못지않게 바라시는 모든 일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5월에 코로나 걸려 고생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이 질환은 특히 잘 먹어야 얼른 회복된다네요.
네, 고맙습니다.
먼저 걸린 선배들이 다들 그렇게 말해서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영 맛이 없네요.
입 안에 쓴 사탕을 하나 물고 있는 기분이랍니다.
와! 고구마 줄기처럼 좋은 일이 많았네요. 남미 다녀오시면 또 멋진 글이 탄생하겠네요. 올 한해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올해는 글을 쓸 생각으로 메모도 열심히 하고 미리 공부도 좀 하고 그래 보려고요.
바빴지만 의미있는 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선생님!
선생님 지난주에 선생님이 안 계셔서 의아했는데 많이 아프셨군요. 지금은 괜찮으신지요?
지금도 멍한 상태랍니다.
오늘 학교에 처음으로 나왔지만 여즉 머리는 맑지 않고 눈빛은 흐립니다.
걱정 고맙습니다.
면역력이 대단하다 여겼는데 코로나가 그냥가기 아쉬웠나 봅니다. 만사형통이네요. 2023년도 행복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게요.
발발거리고 돌아다닌 것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저는 피해가려나 했는데 걸리고 말았어요.
아쉽습니다.
선생님 수필집< 어느 구름에 비 들었을까>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어느 것 하나라도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는 걸 읽히더니, 그 와중에도 세끼 밥을 챙겨드시고...해물 샤부샤부 저도 해 먹고 싶네요. 요리방법 좀 알려주세요.
하하!
그냥 눈대중으로 대충 해 먹는 거지요.
디포리와 다시마 육수로 국물 내서 먹는데, 요즘엔 샤부용 국물내기를 마트에서 팔기도 하더라고요.
- 딸 표현에 의하면 그게 더 맛나다네요. -
안에 먹고 싶은 해산물과 야채 듬뿍 넣고 먹다가 마지막에 라면 사리 넣어서 먹으면 완성입니다. 하하
아참, 노을 마을로 분명히 책을 보냈는데 왜 못 받으셨을까요?
@이팝나무 선생님. 샤브용 육수에 물 2리터 넣어서 해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코로나로 힘들었지만 금년 알차게 보내셨네요. 2023년에도 더욱 더 좋은 날의 연속이길 기원합니다.
네. 선생님, 응원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내년도 꽃을 피우기를 기도합니다.
최고의 한 해! 축하드립니다.
결석을 안 하는 분인데 의아했습니다. 잘 이겨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개근상 받으려고 했는데 놓쳤네요.
선생님도 내년에는 책 한 권 내셔요.
역량이 충분합니다.
베풀며 넓은 도량을 펼치니 좋은 일이 겹쳐 오네요. 축하드리고, 올 한해 즐거이 마무리하고 새해에도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길 빕니다.
선생님,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신거죠? 후유증이 없기를 빕니다. 최고의 해!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