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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시조 : 심인자 시인 ♣ -2020년 3월 24일 화요일-
이심전심
햇살이 앵두처럼 붉어진 오후 세 시
나는 꿈치예요
무심
산벚꽃
♠ 나누기 ♠
심인자는 경남 진주 출생으로 2012년 오누이시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거기, 너』와 공저 『경상도 우리 탯말』등이 있습니다. 특히 그는 탯말 연구에 일가견이 있고 작품 속에 입말을 잘 살려 써서 감동을 더합니다. 이러한 감칠 맛 나는 토속적인 언어 구사는 문학의 효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그의 시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직업이 노출됩니다. 관찰자의 위치에 있지 않지요. 함께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동고동락하는 것이지요. 그에게 그 일은 직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사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힘들지만 기쁨과 보람으로 감당하기 때문이지요.
때는 햇살이 앵두처럼 붉어진 오후 세 시 무렵입니다. 요양원 벤치에 앉아 나란히 손잡은 모녀가 극세사 잠옷바지에 이름을 새겨 넣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오그라지는 바지춤을 서로 당기며 오당실오당실 덧칠하고 눌러쓰는 이름 석 자를 두고 함 보자 매매 써 놨제, 이름도 도망간데이, 라고 말합니다. 이름도 도망간다는 대목에서 묘한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합죽한 입가엔 가느다란 깨꽃 웃음이 가득하고 안 죽어서 큰일이다 얼른 죽어야 편한데, 라고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는데 딸은 오당실 딸 오래 하겠다면서 고아 만들지 말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툭툭 이어지는 대화 가운데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어머니는 연해 말하고 딸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못 와 미안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마음껏 펴지 못한 마음 은 눈빛으로 이울고 맙니다. 이런 정황은 요양원 어느 곳에서나 요즘 비일비재하지요. 우리의 현실이 그러한 것입니다. 요양원은 인생의 종착지입니다. 참으로 서글프지만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지요.
‘나는 꿈치예요’에서 야금야금 기억을 도난당하고 몰래 들어와 지금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병을 두고 주변이 무너지고 곁 사람이 더 아픈 상황을 노래합니다. 아름다운 병, 꿈꾸는 병이라고는 하지만 진실로 꿈이기를 바랍니다. 피붙이도 잊어버리고 늘 문 앞을 도돌이하며 하릴없이 배회하기 때문이지요. 일몰의 불안감은 쑤시뭉티로 들러붙고 갈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 끊긴 뇌 속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운전대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제목에 나오는 꿈치는 치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시인이 붙인 새 낱말입니다. 쑤시뭉티란 말은 경상도 지역에서 흔히 듣는 수세미처럼 엉키다, 라는 뜻의 탯말이지요.
단시조‘무심’은 무심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나 왔어, 섬진강은 못 들은 척 흘러 가네와 악양들 아미드는 안개 사랑은 먼 산보네 그리고 종장 벚꽃은 봄 찔러 놓고 보란 듯이 떠나가네, 라는 진술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애잔합니다. 섬진강과 사랑과 벚꽃은 서정적 자아와는 별개로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가슴에 오두다’는 밥 묵는 본새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에서 삶의 교훈을 읽습니다. 숟가락은 안으로 착착 오다 넣으며 먹어라 하고, 밥그릇 뺑뺑이 돌리면 만사가 어지럽기 때문에 제 그릇 꽉 오두고 무라 한눈팔면 퍼간다, 라는 말씀은 옛 추억의 한 장면이자 오늘날에도 새겨야할 가르침입니다.
‘산벚꽃’은 절절합니다. 엄마는 자꾸만 해 지기 전 놀러 가자시면서 얼른 양말 신겨라 꽃 지기 전 단장해야지, 라고 재촉합니다. 화자는 가는 길 하염없어라, 벚꽃잎 흩날린다, 라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벚나무 아래 자리 깔고 엄마를 눕혀드리자 어미야 땅 냄새가 와 이리 구수 하노, 라고 말합니다. 흙속에 발 집어넣고 고물고물 숨는 엄마, 라는 대목은 자연 회귀의 모습이어서 더욱 애잔합니다. 산벚꽃 같이 날자고 하롱하롱 꼬드길 때 흩날리는 꽃잎을 이불처럼 덮는 엄마는 가지마다 물이 오르건만 돌아갈 땅속만 내려다봅니다. 난만히 꽃 피운 길 두고 꽃잎 따라 가는 엄마를 화자는 따라갈 수는 없기에 슬픔은 더합니다. 삶이란 이렇듯 비장한 것이지요.
‘이심전심’은 어떤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지만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생로병사의 길을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기에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종언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회제도도 잘 마련되어야 하고 개인이나 가족이 이에 대한 바른 인식과 적절한 대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이심전심’을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야 하겠습니다.
땅 냄새가 구수하다니요? 흙속에 발을 집어넣고 꼬물꼬물 숨다니요? 진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는 심인자 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밀려옵니다. 2020년 3월 24일 <세모시>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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