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동구 고잔동에 작은 길로 올라서다 보면 한화기념관이 있다. 어쩌면 기업의 홍보를 위한 기념관일 수 있는 이곳에 인천 아니 대한민국의 화약의 역사가 잠시 머물렀던 작은 공장이 있었다.
지금도 잘 꾸며진 기념관 안에는 당시의 공장을 보존, 재현해 놓아 화약의 역사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 치열하게 화약을 만들었던 윗 세대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현암 김종희 회장은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 상과를 중퇴하고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 이후 1952년 전란 속에 부산에서 한화의 모태인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창업한다.
1953년 조선화약공판을 인수, 1955년 인천화약공장을 보수, 신축하면서 본격적인 인천시대를 열며 화약산업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들이 바로 당시의 인천한국화약공장의 모습이다.
이후 1959년 한국화약류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공급하기 시작한다. 2006년 50여년간의 인천공장시대를 마감하고 충북 보은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한국화약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화기념과으로 바뀌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직원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안전을 기원하며 미사를 드리던 성당이다. 한화그룹 창업자인 고 현암 김종희 회장의 세례명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1981년 회장의 별세 후 <고 현암 김종희 디도 기념성당>으로 봉안되었다.
인천공장의 이전을 앞둔 2006년 5월 마지막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에는 당시 미사를 올리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숙연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한화기념관 안으로는 화약제조 공정에 쓰였던 당시의 기계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가족의 나들이와 함께 학생들의 교육에 큰 도움이 되도록 유익하게 준비되어 있다.
지금은 그 일부만 남아 기념관이 되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겨 이곳이 화약을 만들던 공장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전혀 알수 없게 되어버렸다.
당시 한국화약의 근로자들은 인천의 최고 번화가였던 동인천의 주점에 가도 명함 하나면 외상술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니 한국화약이 인천경제에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수 있는 예라 하겠다.
그러기에 한국화약 인천공장은 한화기업의 역사이기 전에 인천의 역사이기도 하며 이제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소중한 역사의 한 부분을 이 기념관을 통해 우리는 접할 수 있음이 다행이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삼아 찾아보면 한국화약의 역사와 인천의 옛모습을 함께 느낄수 있는 좋은 곳임을 아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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