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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4,ubf 천안 주일메시지
누가복음 4장 강해 사부 성령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4장 14절 -누가복음 4장 21
요절 누가복음 4장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의 방향이 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누가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누가가 전하는 복음은 마태나 마가나 요한이 전하는 복음과 조금 다릅니다. 다른 저자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처음부터 성령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성령님을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더 많이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에는 6번, 요한복음에는 10번, 마태복음에는 11번 성령이 나오는데, 누가복음에는 16번이 나옵니다.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는 성령이 무려 50번이나 나옵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을 이차전도 여행 전에 만났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이 오신 것이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을 공부하며 성령님을 알고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힘있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의 능력을 받으신 예수님)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님이 시험을 이긴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자 큰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이기면 시험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셨습니다. 단박에 예수님의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예수님은 능력만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충만하여 여러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말씀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은혜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자 예수님은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역사는 성령님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힘있게 복음 역사를 섬기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씀 공부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성령의 복음)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신 후에도 늘하신던 대로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 61장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성령의 기름을 부으셨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소식을 복음으로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유일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찾아낸 복음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bc700년 전에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한 복음입니다. 성령이 메시야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신 것이 아름다운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물론 구약에도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한적인 사람에게만 임하셨습니다.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들에게만 임하였습니다. 성령은 주로 우리 위에나 곁에서 임하시고 내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 중에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내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내주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셨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성령이 내주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성령의 민주화, 성령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이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만든 찬송이 찬송가 185장입니다. 너무나 잘 만든 찬송입니다. 우리가 매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의 예배, 감사의 예배. 회개의 예배, 사랑의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믿고 순종할 수 있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고. 회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도우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찬송가 185장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1.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은 성령이 오셨네” 일 절은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성령이 오셔서 평안과 위로를 주신다는 찬송입니다. “2. 만왕의 왕께서 저 사로잡힌자 다 구원하시고 참 자유 주셨네 승리의 노래가 온 성에 들리니 성령이 오셨네” 이 절은 사로잡힌 자를 성령이 다 구원하시고 자유를 주신다는 찬송입니다. 성령이 승리의 노래가 온성에 들리게 하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3. 한없는 사랑과 그 크신 은혜를 늘 의심하면서 안믿는 자에게 내 작은 입으로 곧 증거하리니 성령이 오셨네” 삼 절은 성령이 오신 기쁜 소식을, 한 없는 사랑과 그 크신 은혜를 늘 의심하면서 안 믿는 자에게 전한다는 내용입니다. 후렴)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후렴구는 성령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신 것이 기쁜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누구에게 오십니까?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복음)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성령은 가난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보다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자신의 죄를 애통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갈망하는 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로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채워줄 예수님을 구하였습니다. 그 여인의 가난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 우물가에 여인처럼 이라는 ccm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오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성령을 채워달라고 간구하는 노래입니다. 여인은 헛되고 헛된 남자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잔을 높이 들고 하늘양식을 넘치도록 채워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늘 양식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반복하여 성령을 채워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마음으로 이렇게 성령을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간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자유의 복음)
“18d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하신 일은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합니다. 눌린 자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가 성령이 오시기 전에 포로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죄의 포로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죄에서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속에는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우리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바울과 같은 성자도 육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였지만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은 탐내지 않고자 하였지만 탐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탐심의 죄가 그를 사로 잡았습니다. 탐심의 죄에게 잡혀 탐심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죄의 포로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걵져내랴!” 그러나 에수님이 주신 성령이 그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는 육신이 연약하여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지만 성령이 그에게 율법을 지키게 도우셨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하자 그는 신기하게 율법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물론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을 연습해야합니다. 수영을 연습하듯이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을 연습해야합니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면 몸이 물에서 뜨듯이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을 배우면 율법을 지켜행할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어 자유를 얻자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죄와 육신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를 진정 자유케 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은혜의 복음)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禧年)은 기쁠 희로, 기쁨의 해입니다. 히브리어로 요벨인데 수양의 뿔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희년에 수양의 뿔로 나팔을 불어서 희년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입니다. 이 해 7월 10일 속죄일이 되면 나팔을 불어 희년을 선포합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합니다. 50년마다 평등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조건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면 빈부의 격차가 이루어집니다. 빈부의 격차가 이루어지고 유산을 상속하면, 빈부가 자녀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갈수록 이런 빈부의 격차는 커집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입니다.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나온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분배합니다. 열심히 일하게 하고 소득도 국가가 분배합니다. 공산주의는 조건과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합니다. 매우 이상적입니다. 문제는 똑같이 준다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할 것을 한 달에 걸쳐서 일합니다. 일에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기막히게 해결하셨습니다. 열심히 일하게 하고 그 결과를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오십년에 한 번씩은 희년을 선포하여 조건의 평등을 갖게 합니다. 희년에는 땅도 회복되고, 집도 회복되고, 노예도 해방되고, 채무 면제를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조건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땅을 분배한 본래의 상태로 회복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해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나누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은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본래의 상태인 에덴의 상태로 회복하십니다. 에덴에서는 가난도 질병도 죽음도 갈등도 없었습니다. 풍요와 평화와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그 나라를 회복하십니다. 우리의 노력이 없는데 예수님이 회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에덴의 회복은 은혜의 복음입니다. 먼저 성령을 보내사 그 나라를 일차적으로 우리 마음에 회복하십니다. 물질적으로나 건강에서도 어느 정도 체험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천년 왕국에서 썩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이 땅에서 완전히 회복하십니다. 천년왕국이 끝난 뒤에는 에덴보다 더 나은 새하늘과 새땅을 주시고 그곳에서 새로운 몸으로 살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 복음)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성령의 복음이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세가 든 뱀을 바라보았습니다. 뱀을 본자는 병에서 치료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에수님을 바라볼 때 성령이 임합니다. 또한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디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성령의 강물이 배에서 흐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에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성령을 주실 것을 믿어드려야합니다. 바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의 안경을 쓴 자만이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박안나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박안나 선교사님은 어느날 기도하는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박안나 선교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기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나 나라를 보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해주시고 있습니다.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심고 있습니다.
(결론-성령이 오셨네)
지난 주에 이복음이 천안에 왔다가 갔습니다. 복음이를 보면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합니다. 복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야합니다. 물론 복음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처음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이 복음이라고 하지 않고 성령이 오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으로 가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완성하신 복음을 가르쳐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지 않지만 내가 가면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예수님이고 또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에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죄사함의 확신을 주시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예수님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에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오셔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성령님께서 에수님이 하시는 일을 지금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자유의 복음, 은헤의 복음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희년이 선포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9. 8.4,ubf 천안 주일메시지
누가복음 4장 강해 사부 성령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4장 14절 -누가복음 4장 21
요절 누가복음 4장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토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