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 죽거든
목숨이 참 질기다. 나 자신 십 년도 훨씬 전 죽는다고 생야단이었는데, 아직 살아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아무튼 이승 떠나는 게 그리 두렵지 않다.
나는 죄인이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편이 되레 나을 것 같아 내 장례는 치르지 말라고 여러 번 자식들에게 강조하였었다. 부산에 있을 때부터…….더구나 이 천리 타향에서 내가 관속에 누워 있다 치자. 누가 찾아올 것 같지 않았고, 떠나는 주제에 무슨 미련이며 번거로움인가도 싶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약간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올라온 지 다섯 해, 성당 연령회(煉靈會)도 가입하고, 가끔은 위령 미사에 참례하였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거룩하다는 것도 체감을 했다. 나는 슬쩍 뒤로 한 발 빼고 말았다. 이렇게 마음먹은 것이다. 내 비록 죄인이라도 연옥에서 단련을 받을 터, 가족이나 신자들이 두 손을 모으는 것까지 마다한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죄이리라!
그러다보니 사위 보스코에게 이런 언질을 주게 되었다. 내 숨 멎는 즉시 사체를 절차에 따라 기증하라고. 내외가 직장에 나가는 터, 그동안 이래저래 경조사에 참석한 곳이 적지 않을 테니, 장례는 치르라고 덧붙였다.
워낙 내가 죽는다 죽는다 했고, 유서에까지 번거로운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당부해 왔던 터라 사위는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이윽고 동의했다.
이제 한시름 놓은 셈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다가 멈췄다 치자. 사위는 곧 가톨릭대학교 시신기증센터(02-2258-7135)에 연락하고, 본당 연령회장(이병곤 베르나르도 010-5383-138*) 급하게 전화를 돌리리라.
이 죄인이 죽음의 옷을 갈아입는데, 요란스러울 건 없다. 학교 동기 동창 몇 명쯤이면 끝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몇몇 서울에 사니 부음을 전했으면 한다. 그리고 사범학교 졸업 동기도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퍽 조심스러운데,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던 아내와 나의 옛 제자들은 어쩔까 싶다. 그들은 서울이며 부산, 삼랑진 등지에서 산다. 세상 떠나면서 ‘나 가네’하는 인사말(복음 성가 녹음)을 들으러 오라는 초청(?)을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것이다. 좀 더 관망해 보고 판단하자.
그 밖에는 별로 없다. 26사단 전우들/ 이야기가 통하는 문우/ 이름이 그리 나지 않은 가수(歌手)/ 가톨릭교우(신부 및 수녀 포함)/ 4촌 이내의 친척 중 가톨릭 신자/ <실버넷 뉴스> 동료 기자 등.
사위와 딸에게는 약간 번거로울 것 같다. 하지만 난, 머리 쓰기 나름이리라 여긴다. 나는 문명의 이기를 한껏 활용하라고 권할 참이다. 앞서 들먹인 사람에게 보낼, 미리 쓴 부음(訃音)을 입력시켜 놓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이 세상에 왔다가 이제 오늘 201*년 월 일 시, 저세상으로 떠납니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행여 틈나(시)면, 제 영혼이 부르는 흑인 영가‘방황하는 나그네’를 들어 주실(줄) 수 있을는지요?
-이원우 아우구스티노(010-4731-4356)/ 예명 李 下士/ 필명 犬之勞 ‧ 遼東豕
일시: 20**년 윌 일(위령 미사) 시
장소: 천주교 동백성요셉성당 성전(부의는 받지 않습니다.)
연락: 딸 이지현 클라라(010-9241-666*)/ 사위 박정규 돈 보스코(010-2846-211*)
묻힐 곳: 안성시 일죽면 화곡길 130 유토피아 추모관(031-673-7904)
이야기가 길었다. 여기까지 끌고 오려다 보니 몸살이라도 날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이 전문(全文)을 딸 내외에게 메일로 보내면, 둘이서 허둥대지 않아도 되니, 짐 하나 덜어 주었다고 여기자. 얼마 전 이근양 예비역 소장을 만나 인터뷰하는 도중 벽에 붙여 놓았던 그의 ‘사후(死後) 연락처’가 이 졸고 위에 겹쳐져 보인다.
<연락처> 서북원 베드로 주임신부(010-8719-534*)/ 최진형 학사(26사단 제대 ‧ 곧 신부가 됨 010-4699-040*)/ 이명인 소화 테레사 수녀 (010-8488-450*)/ 김의배 26사단 전우(실버넷뉴스 기자 010-8725-066*)/ 김진규 소방위(아내 제자 대표 소방 파출소 010-3565-211*)/ 이성태 내 숭진초 제자 대표 (010-6339-729*) ‧ 강점옥 송진초 제자 대표(010-8526-110* 및 정순개 ‧ 010-4717-088*) 진홍구 감전초 제자 대표(010-5047-206*/ 윤성필 전 26사단 부사단장(010-5072-945*) ‧ 이경진 전26사단주임원사(010-5080-326*) ‧ 허수진 군악대장(010-9048-477*) ‧ 김화종 대령(전 26사단 대대장 010-5085-500*)……생질녀 안석순 베로니카(010-6317-3927)/ 질녀 박정해 클라라(010-9506-9488) 등 25명/ 사범학교 친구 대표 하영수(010-2288-577*)/ 초등학교 친구 대표 안창회(010-2569-890* ‧ 노윤길(010-5445-578*) ‧ 안우상(010-4322-647*)………(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