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14장 (구 511장) / 요한복음 16 : 1 - 1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1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요한복음 16장 1절 – 16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애덤 짐머먼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농구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넌 너무 멍청해. 고등학교도 졸업 못할 거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처럼 그는 낙제했고, 한 학년을 유급해야만 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을 허접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난독증 -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자를 읽거나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증세에 걸린 애덤 짐머먼으로 하여금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또한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마음에 새기지 말아라. 세상으로 나가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줘라. 문제는 네게 장애가 있다는 게 아니라 네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거다.” -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70cm의 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농구와 배구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 두 스포츠에서 최우수선수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적이나 작은 키는 일류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기에는 부족한 성과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2부 리그 학교에 들어가 경기를 통해 실력을 연마 했습니다. 1부 리그 농구선수가 될 리 없다는 감독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2학년 때, 1부 리그 학교로 이적했습니다. 연습을 거듭해 이듬해 그는 정식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2006년, 키가 작고 멍청한 소년이었던 그는 스포츠 경영·마케팅 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자라면서 힘이 생기고 강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순간 절망하고 낙심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의욕적으로 일하다가도 어느 순간 별로 문제도 되지 않는 일에 걸려 넘어져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자포자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삶이 보다 건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견고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늘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은혜,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셨을까요? 오늘 본문 7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님께서는 성령을 “보혜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 나를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나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의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영혼들을 지혜롭게 하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심으로써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품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의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시편 37편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다음으로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 13절 후반 절에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이 나와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들을 가리켜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자의대로 해석하며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바쳐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성령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우리들 가운데 계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다른 것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알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힘이 됩니다. 능력이 됩니다. 지혜가 됩니다. 길을 보여줍니다. 읽고 묵상하고, 쓰고 암기하고 반복해서 하다 보면 말씀, 곧 우리 자신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주위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뜻하지 않는 환경에 막혀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흔히들 낙심합니다. 그러나 때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막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자 겁에 질렸으나 하나님이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경우 아주 뜻밖의 사람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힘은 다 유한합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정보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세월이 흐르면 바뀝니다. 기술이 뛰어나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진정 강한 존재가 누구인지 압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압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도, 기술도 아닌 성령의 파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소원을 주십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주위 환경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십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령의 사람이 되어 더 이상 약한 존재가 아닌 강한 존재가 되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