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입춘과 우수가 지난 이월 끝자락 주말이다. 작년 가을부터 우리 지역은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아 가뭄이 심각하다. 아침에 고향 큰형님께 안부 전화를 넣으니 마늘밭에 관정 지하수를 퍼 올려 물을 댄다고 했다. 어제 당항포 근처로 산행을 나갔더니 야산에 산불이 나 여러 대 소방헬기가 출동해 공중에서 물을 뿌려댔다. 비가 흡족히 내려야 농사나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될 듯하다.
아침나절 글을 몇 줄 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쳐 읽었다. 베란다에 말려둔 산국을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친구에게 보냈다. 일전 나에게 적하수오 담금주를 보내준 답례였다. 산국은 매우 쓴데 다른 약재와 함께 찻물을 달일 때 조금씩 넣으면 좋다. 산국은 잠을 편안하게 자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산국 잎줄기와 꽃잎을 말려 만든 베개를 베고 자면 쉬 숙면에 든다고 들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시장을 몇 가지 봐 놓고 산책을 나섰다. 요새 집에 머문 시간이 많아 아내의 눈치와 구박을 받지 않으려면 대면 접촉을 줄임이 상책이다. 저녁에는 예전 근무지 동료를 만나기로 약속 되어 산책 이후 그곳으로 바로 갈 작정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천변을 따라 걸었다. 물웅덩이에는 흰뺨검둥오리와 쇠오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냇바닥 가장자리 물억새 잎줄기는 색이 바랜 채 야위어 있었다. 며칠 전 지날 때도 봤지만 버들개지는 솜털이 더 부풀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 갯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가지마다 솜털이 보송보송해지는데 잎눈이 아닌 꽃눈이다.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버들개지였다. 반지동 대동아파트단지를 지나니 천변 조경수로 심겨진 조팝나무에서 파릇한 잎이 돋았다.
창원천2호교에는 지귀장날을 맞아 과일 노점상이 펼친 파라솔이 보였다. 오일 장터를 구경함도 뜻이 있겠으나 산책 동선을 벗어나지 않음은 코로나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피하고 싶기도 했다. 명곡 교차로를 지나 대원교를 건너려다 생태 탐방을 나서 복귀하는 초등 친구를 만나 반가웠다. 매일이다시피 집에서 봉암갯벌까지 이십 리를 왕복하면서 자연에서 한 수 배우는 친구다.
대원교를 건너 창원농업기술센터로 갔다. 화훼 양묘장 비닐하우스에는 봄에 심을 여러 꽃들이 잘 자랐다. 주말임에도 출근해 배양토에 뭔가를 심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품삯과 무관하게 일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니 책임자가 아니라 답을 드릴 수 없다고 했다. 공원에 거름포대를 나르는 인부들이 있기도 한데 그들은 정해진 일당을 쳐주지 무보수는 아니라고 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사화공원으로 향하니 민간공원 개발사업으로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올라 향토사단이 떠나고 아파트가 들어선 언덕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은 차질이 왔다. 명서동 주택지 이면도로를 따라 걸어 산기슭의 주민운동장을 한 바퀴 둘러 쉼터에서 볕살을 쬐다 창이대로를 건너 낮은 아파트가 재개발된 곳으로 갔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잠시 살았던 동네였다.
나는 그 당시 밀양에서 창원으로 전입해 주택지 산기슭 신설 여학교에 근무했다. 그때 같이 만난 동료로 여태까지 교류하는 지기 둘을 명서시장 횟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러 재래시장을 빙글 둘러보면서 지난날과 달라진 모습에서 격세지감이 들었다. 우리가 들린 식당은 욕지사량횟집이었다. 남편이 사량도 출신이고 아내가 욕지도 사람이라 그렇게 붙여진 횟집이다.
수족관에는 여러 어종 활어들이 유영을 했다. 셋이 자리를 하니 한 친구는 내보다 먼저 퇴직했고 한 동료는 아직 현직이다. 친구는 몇 차례 들린 곳이라 횟감에 대해서도 잘 알아 옴도다리를 주문했다. 등에 줄이 나란해 일명 줄가지미로 불리는데 생선회로서는 특급 활어였다. 밑반찬에 이어 회가 나왔다. 셋이 맑은 술잔을 채워 비우면서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21.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