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8~12 / 헤롯에게 재판받으신 예수님
(눅 23: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눅 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눅 23: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눅 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눅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8-11절 헤롯은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예수님에 대해 듣고,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기를 원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헤롯은 즉시 예수님께 기적을 행하거나 사주팔자 보는 것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시험하는 자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사시는 최고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께 여러 가지 말로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말도 대답지 않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더욱 고발하였습니다. 헤롯은 "네가 죽은 자를 살려! 다 헛소문이었군." 하며 역정을 내었습니다.
헤롯은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히고 조롱한 후, 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냈습니다.
군병들은 헤롯의 비위를 맞추고자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왕이나 입는 자주색 빛나는 옷을 입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갈릴리 촌놈! 폐하" 하며 예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헤롯은 요절복통하고 군병들은 더 신이 나서 가시면류관까지 씌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잠잠했습니다. 성을 내지도 불평, 불만하지도 않고 비방의 표적으로서 수난당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스스로 선택한 그 좁고 험한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셨지만, 진정한 표적을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진정한 표적이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신다는 표적이요. 부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영광의 표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12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아닌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를 대표하고 헤롯은 유대인을 대표하므로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서로 예수님을 핍박하는 그날에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사단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헤롯은 예수님이 보여주는 이적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헤롯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어떤 연관성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눅 9:9).
(눅 9: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헤롯의 반응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계속된 질문에도 예수님이 침묵을 지킨 또 다른 이유는 헤롯이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예수님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에서 친구로 변한 이유는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향한 적대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님에게 가졌던 호기심과 지금 나의 믿음을 비교하여 살펴보면서 진실한 믿음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자가 법에 의해 판결받는 방식은 법정에서 그의 죄를 밝힌 후에 그에 맞는 형량을 정하여 재판장이 선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죽이기로 결의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그에 맞는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이는 악한 모함이 됩니다. 무리가 예수를 죽이기로 이미 작정하고, 모함한 것과 같이, 그러한 일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항상 일어납니다.
질투심에 의해,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악의적인 헛소문으로, 전후 관계 확인 없는 그릇된 구설수로 누군가를 모함하여 일평생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이 남을 모함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매우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합니다.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재판장은 그가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행하여 그중에서 악을 제하라”(신 19:19)라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고 모든 일에 정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