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寧國寺)까지 거의 왔을 무렵이다. 이게 웬일일까? 잿빛 구름으로 덮인 하늘이 뚫렸나 보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옷과 배낭을 살금살금 적셔 나간다. 이거 어쩌지 하고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걱정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여기까지 왔는데
산행을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어떻게 안전하게 산행을 하느냐다. 더욱이 이 산은 바위산이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위는 비에
젖으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미끄러워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고 배낭이 젖지 않도록 덮개로 덮었다. 우산을
쓰고 산행할 것이라고 주접을 떠는 나 자신 처량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71번째 속하는 산이다. 천태산(天台山)은
낙랑장송(落落長松)과 어우러진 석벽은 한 폭의 산수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우산을 쓰고라도 그토록 아름답다는 산을 볼
것이다.
천태산은 소백산맥에 속한 곳으로 바위 능선이 많은 석산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절리(節理)와 단층이 유난히
발달했다. 그래서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 낸 산으로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영국사(寧國寺)가 자리를 잡고 있고 영국사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6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이 거대한 은행나무는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쌍벽을 이룬다. 1편에서 유래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천태산의
유래는 불교의 천태종에 의해 기인한다. 고려 문종의 넷째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의 천태종(天台宗)을 공부하여 이곳에서 열었다고 하여
천태산(天台山)으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산을 쓰고 영국사(寧國寺) 경내로 들어갔다. 경내는 삼층석탑 옆에 보리수(菩提樹) 한 그루가 있다.
보리수(菩提樹)는 각수(覺樹), 사유수(思惟樹)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서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성수(聖樹)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의 과거. 미래 등의 모든 부처님에게도 각각 다른 보리수가 있다고 한다. 미륵불의 그것은 용화수(龍華樹)라고 한다.
열매는 염주(念株)를 만들어 기도와 수행에 사용하고 있다 *보리란:범어 bodhi의 음역(音譯)으로 각(覺), 지(智), 도(道)라고
번역한다. 부처님(佛)께서 얻은 깨달음의 지혜(智慧)를 말한다.
보리수나무 옆에 있는 영국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533호다. 이
탑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으로서,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원래 옛 절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42년 주봉 조사(朱奉 祖師)가 이곳으로 옮겨 와 복원하였고. 대웅전 건물이 향하고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탑을 옮겨 세울 때 2중
기단의 위층과 아래층이 바뀌었던 것을 2003년 문화재 보수 정비 사업 때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신라 후기(9세기 말경)에 건립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재료는 화강암이다. 상륜부의 다른 부재들은 일부가 없거나 훼손되어 사찰 내에 보관 중이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후기 탑
중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사(寧國寺) 경내를 살펴보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을 했던 비가
반갑게도 멈춰다. 눈앞엔 싱그럽게 녹음이 깔려있고 회원들은 기쁨의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엔 낙랑장송(落落長松)이 유유히
천하를 굽어보고 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너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우냐? 또 얼마나 외로움과 싸우며 살았느냐?
수많은 세월을 바람과 싸웠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땐 가뭄과도 싸웠을 것이다. 단 낮에는 등산객의 발짝 소리와 대화 소리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고 때로는 새들이 찾아와 벗이 되어 놀다 갔을 것이다. 밤에는 바람 소리와 짐승들의 속삭이는 소리 들으며 외로움을 견디었을 것이다.
한 폭의 동양화보다 아름다운 풍광을 나는 본다
얼마 걷지 않아 바위 능선이 나타난다. 이곳은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영동군
지자체에서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로프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여경희 대장과 초이 대장도 함께 로프를 타고
올라간다. 로프를 타고 올라가는 아름다운 광경을 초이 대장은 사진기에 담기 바쁘다. 아마도 먼 훗날 추억의 한 토막이 될 것이다. 더욱이
아름다운 두 여인의 로프타는 장면은 천하일품이다. 서로 위로하고 조심해 올라가라고 걱정해 주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10~20m의 간격으로
로프가 설치된 것 같다.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안전을 위해 설치해 놓은 곳도 있다. 다행히 구름이 하늘을 엷게 덮어 산행하기에 최고의
날이다. 비가 그친 것도 그리 반가울 수 없다. 만약 비가 내린다면 어찌 미끄러워 이런 위험한 바위를 올라갈 수 있겠는가? 하늘도 역시 마음씨
고운 산울림 가족을 돌봐 주는 것 같다.
이산의 7부 능선까지 올라온 것 같다. 그런데 앞에 90도의 절벽에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높이는 약 75m 정도 되는 짧은 거리다. 아마도 이곳이 이산 등정의 크라이맥스가 아닌가 싶다. 보자마자 호기심이 발동한다. 단숨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밧줄을 잡고 올라갈 폼을 잡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친다. 고문님은 올라가시면 안 된다고 말린다. 그분이
바로 이 산악회 수석 산악대장 서완철 님이다. 왜 못 올라가게 할까? 처음에는 좀 야속하고 섭섭했다. 그러나 나를 위한 말이다. 행여 올라가다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극구 말리는 것이다. 잘못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신나게 올라간다. 나의 생각도 잘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올라간다는 것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젊은 사람도 힘든 코스인데 올라갈 수 있다는 용감한 마음가짐에 살짝이
박수를 보낸다. 서완철 대장 고맙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용감했던 마음만 간직하겠습니다.
젊은 사람처럼
용감하게 불사르지는 못했지만 잘 한 것 같다. 그곳을 피해 옆길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영국사(寧國寺)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명당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 폭의 서사시를 담은 동양화다. 참으로 아름답다. 한참을 올라온 것 같다.
이정표가 정상까지 200m 남았다고 가리킨다. 이젠 다 올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때 또 가랑비가 야속하게도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꺼내 쓰고 또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니 비가 또 멈춘다. 한마디로 여우비처럼 사랑스럽게 올라가는 우리가 샘이나서 약을 올렸나 보다. 드디어
정상을 밟는 순간이다. 와~^^하고 나도 모르게 기쁨의 소리가 튀어나온다. 오늘도 이 험한 산을 해냈다는 반가움을 참지 못했나 보다.
"天台山"이라고 한문으로 써 놓은 글씨가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돌의 비석에 "天台山"이라고 써 놓았다. 한마디로 남성미가
흐른다. 달려가 반가운 입맞춤을 하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옆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천태산을 사랑하는 사람 중 "황선복" 시인께서
써놓은 아름다운 글이다
천태산/황선복
보았는가 들었는가 고요한 산울림을 비늘 같이 잎 하나 틔우고 낙엽 한
잎 떨구는 태초의 소리
모든 생명들이 공존하는 질서의 묵언 거대한 바위틈에서도 드러나는 생명 시기와 욕망과 비뚤어진
상념까지 훌훌 벗기우나니
먹구름 속에 천둥 비 울어도 폭설이 온통 하얗게 덮어도 어머니 품속인 양 푸근히
품어 새 생명 내놓는 묵언의 울림
고요 속에 아름다움이여 거대한 그대 이름은 산.
산 천태산이어라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을 닮은 바위산의 풍광을 감상하며 정상을 밟고 보니 천하를 얻은 듯 힘이 솟아난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이 산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에 취하고 말았다. 또한, 동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는 기쁨이 넘쳐 하늘에 메아리친다. 회원들은
한참 동안 천태산(天台山)의 기를 받고 개운한 몸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편편하고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성회원들은 음식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듯 많은 음식이 쏟아져 나온다. 본 산악회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한 쌍의 잉꼬부부가 있다. 그 잉꼬부부가
권호경 부회장 부부다. 산행할 때면 누구나 그 부부의 닭살 돋을 만큼 다정다감함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권호경 부회장 혼자 왔다.
대신 부인께서는 맛있는 음식을 한 보따리 싸서 보낸 것이다. 회원들에게 정성이 담긴 음식을 선물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회원은 소풍 온
어린이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음식을 즐겼다. 필자 역시 맛있는 음식에 반하고 말았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지 못한 부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글로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하산하는 길도 만만치 않다. 잘못 발을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오늘 반가운 일이 있다. 그것은 회원 전체가 기뻐해 줄 일이다. 이 산악회를 위해 수장 다음으로 노력을 하는 신인희 리더와 조진순 총무다. 함께
산행하려고 차를 타고 왔지만, 산에는 거의 올라가지 못하고 회원들의 점심 걱정을 하며 준비하느라 바빴던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훨훨 털어버리고
함께 산을 탄다. 그러니 반갑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인희 리더는 추억을 만들어 줄 사진을 찍기 바쁘고 조진순 총무는 회원들의 힘을 돋아
주려고 배꼽 뺄 정도의 재미있는 유머를 뱉어낸다. 여하튼 회원들은 사진 찍느라 즐겁고 유머가 흘러나올 때마다 웃음보따리가 터져 나온다. 이렇게
웃고 즐기다 보니 힘든지도 모르고 하산한다. 한참을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려고 절벽의 바위 위에 한 그루의 낙랑 장송이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하며 서 있다. 하도 아름다워 그 오묘한 자태를 감상하고 있을 때 장미정 총무와 주명순 회원도 그 아름다움에 반했나 보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다정한 자매처럼 포즈를 취한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준다. 이렇게 산울림 회원들은 즐거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산하다 보니 어느덧 영국사(寧國寺)까지 내려왔다.
끝으로 천태산(天台山)과 영국사(寧國寺)에 대해 소상히 알아보자. 간단하게
언급하였지만, 여기서 다시 알림판과 인터넷을 통해 좀더 상세히 알아본다. 천태산(天台山)은 고려 시대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며,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리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이름난
명소가 산재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여름철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기암과 각종 수목의 푸름과 단풍이 절경을 이루며,
천년 사찰인 영국사(寧國寺)가 자리 잡고 천년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다. 주차장으로부터 약 1km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영국사(寧國寺)라는 오래된 절이 나오는데 이 절에는 고려조 공민왕의 발자취가 서리어 있다.
서기 1361년(공민왕 10년) 11월
원(元)나라의 한산동(漢山童)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노국(魯國)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다.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樓橋里)에 머물게 되었는데, 영국사의 그 당시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이기
때문에 왕이 부처님 앞에 나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하였으나,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갈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개울 건너 천태산(天台山)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오자 공민왕은 깜짝 놀라 좌우를 둘러 보면서 이 부근에 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인 줄은 몰랐구나 라고 하자,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피다가, 대신 한 사람이 설명하기를
"저 절은 일찍이 신라 때 원각국사(圓覺國寺)께서 세운 절로써 처음에는 만월사(滿月寺)라 하였다가 문종대왕(文宗大王) 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공민왕은 눈이 번쩍 띄었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은 문종대왕(文宗大王)의 셋째 아들로
천태종(天台宗)을 일으킨 분이 아닌가? 의천(義天)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어보고 싶다. 왕비 왕자 그리고
대신들과 함께 칡넝쿨을 엮어 완성된 다리를 밟고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매우
즐거운 산행이었다. 황진남 회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 오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필자를 위해 수고해 주신 서완철 산악대장 글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남깁니다. 회원 여러분들의 가정에 가호가 있길 두 손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