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기침소리 1
지금은 새벽 두 시
한 편의 불후 명작을 쓰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
머리에 떠오른 절묘한 한 구절의 어휘
잔기침이 몇 번 들리더니
이내 가래 끓는 소리가 그렁그렁 난다
외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어머니는 해소를 앓고 계신다
곤한 잠을 주무시다
터진 기침에 잠드시지 못하는 어머니
외손자들 성화에 늘어난 흰머리
깊게 패인 주름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장가 못간 아들 걱정이
기침을 키우셨나보다
앞니 다 빠지셔도 병원 한 번 안 가시고
무릎에 물이 차도
파스 한 장이면 그만이신 어머니
내 머리 속에 떠오른 한 구절의 아름다운 시는
어머니의 거친 기침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산산이 흩어지고 있다
(김석준·시인, 1964-)
+ 어머니의 맷돌
맷돌을 돌린다
숟가락으로 흘려넣는 물녹두
우리 전 가족이 무게를 얹고 힘주어 돌린다
어머니의 녹두, 형의 녹두, 누나의 녹두, 동생의 녹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녹두물이
빈대떡이 되기까지
우리는 맷돌을 돌린다
충무동 시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의 남폿불이 졸기 전까지
우리는 켜켜이 내리는 흰 녹두물을
양푼으로 받아내야 한다
우리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맷돌일 뿐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타리로 서서
우리들의 슬픔을 막고
북풍을 막는다
녹두껍질을 보면서 비로소 깨친다
어머니의 맷돌에서
지금도 켜켜이 흐르고 있는 것
물녹두 같은 것
아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김종해·시인, 1941-)
+ 여름밤
깜깜한 여름밤
저녁밥을 먹고 나서도 쉬지 못하는 어머니는
뒤뜰에다가 멍석을 내어다 깔고
식구들의 빨래를
다림질하고 있었다
때로 어머니는
마음씨 고약한 산적 같은 아버지한테
붙잡혀 와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선녀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엄니, 나 엄니를 위해서라면
무어든지 될래요
엄니가 돈 많은 사람 되라면 돈 많은 사람 되고
높은 사람 되라면 높은 사람되고
공부하는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무엇이든 되어드릴 거예요
물컷 들어갈라
어여 문 닫고
나머지 숙제나 하려무나
그런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진짜 아들이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서도
저들 혼자만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엄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별들이 우리 애기 주먹만이나 하구나
나는 다 자란 뒤에도
어머니가 애기라 불러주는 것이
은근히 속으로 좋았다.
(나태주·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