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퇴직한 선배와
삼 년 전 이월 말이었다. 코로나는 그 이듬해 이월에 덮쳐와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예상하지 못했던 때였다. 나는 그해 봄이 오는 길목에 교단 마지막이 될 근무지가 거제로 정해졌다. 출퇴근이 안 되는 곳이라 옮겨갈 학교 부근에 원룸을 정해 놓고 부임 인사를 하고 왔다. 거제는 창원과 떨어진 곳이라 관리자로 승진해 가거나 음주 운전으로 징계 받은 자가 가는 곳인 줄 알았다.
평교사에 지나지 않고 음주 운전 징계 대상이 될 리가 없는 내가 거제로 임지가 정해져 난감했다. 그해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양산과 거제였기에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거제 풍광을 감상하고 역사 지리도 한 수 익히며 교직을 무난히 마무리 지었다. 거제로 떠나기 전 몇몇 지기들과 식사를 나누었고 돌아와 되갚기도 했다. 그 가운데 복귀 이후 자리를 못한 선배가 있다.
선배는 나처럼 2년제 교육대학을 나와 재직 중 학업을 계속해 중등으로 전직한 분이다. 평교사로 정년을 맞은 나와 달리 교육 행정가로 역량을 발휘했다. 지역 교육장은 물론 본청 국장과 교육연수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선배가 믿음직했음은 도의회 답변석에 서면 도의원들 앞에서 도지사도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접두사를 쓴다는데 싹둑 자르고 본론으로 들었다는 얘기였다.
퇴직 선배는 삼 년 전 반송시장으로 나를 불러내 칼국수를 사주면서 후배를 격려해주었다. 나는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퇴직에 즈음해 안부 전화를 넣고 식사를 한 끼 나누기로 했다. 일정이 여의치 못하다가 이월 끝자락 일요일에 서로 시간을 맞추었다. 아침나절 선배의 댁에서 가까운 용지호수 부근서 뵈었다. 칠십 문턱을 넘어서도 오십대 장년과 같이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어디로 산책을 마친 뒤 점심을 같이 들기로 했다. 선배가 청원천 천변으로 가보자는 계획을 내가 진로를 수정해 도청 부근으로 가보십사고해 동의를 받았다. 창원중앙도서관에서 세로수길을 걸어 자연보호학습장으로 향했다. 유리온실에 자라는 열대식물과 다육식물들을 살펴보고 도청 후문에서 도립미술관으로 갔다. 미술관 뒤 산책 데크는 낡아선지 안전을 염려해 개방하지 않았다.
수형이 아름답게 자라는 반송 단지를 지나 경찰청 뒤로 가니 산책로가 개방되어 있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니 부엽토를 밟으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나왔다. 선배와 나는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던 산책로를 같이 걸으면서 일상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동안 교직을 마무리 짓게 되면서 주변 여러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는데 고향의 큰형님에게 더욱 감사를 표했다.
산책로 끝은 아까 지나쳤던 미술관 건물이라 숲길을 되돌아왔다. 경찰청에서 창원중앙역 역세권 상가를 지난 신리 물향기 공원으로 향했다. 예전 농업용수를 공급했던 소류지는 수변 공원으로 개발되어 산책하기가 좋았다. 저수지 가장자리 포물선을 드리운 수양버들 가지는 수액이 오르면서 연녹색을 띄었다. 산책로를 한 바퀴 둘러 경찰청 모퉁이 솜털이 부푸는 목련망울을 살펴봤다.
도청 뜰의 연못가를 둘러 용지문화공원을 거쳐 시청 광장을 돌아 중앙동의 어느 상가 식당으로 들었다. 선배는 가끔 들렸는지 고령의 주인 부부와 익히 아는 사이인 듯했다. 미리 예약된 식탁에 맛깔스런 밑반찬으로 도다리쑥국이 차려진 점심상을 잘 받았다. 선배는 일적불음이면서 나에게 맑은 술을 잔에 채워주어 넙죽넙죽 받아 마셨는데도 내가 점심 값을 치를 기회를 줄 리 없었다.
식당을 나와 선배는 오후에 찾는다는 색소폰 연주 연습실로 향하고 나는 남은 산책을 마저 나섰다. 나중 저녁에 사림동에서 예정된 지인들과 자리로 바로 가기 위해서였다. 창원병원을 지나 공단지역에서 남천 천변 산책로를 걸었다. 봉암갯벌에 이르니 물때가 사리라 펄이 드러났다. 천변을 따라 걸어 생태탐방을 나선 초등 친구와 합류해 사림동 식당에 들어 지인들과 마주 앉았다. 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