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3대 혁명
이번 주 인도 방문을 통해 필자는 현지의 분위기가 타 지역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미국과 유럽이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도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중국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거느린 국가로 떠오른 인도의
다음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인도는 올해의 경제성장률을 5.9%로 전망한다.
“인도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최근 선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전에도 같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세계경제포럼 당시 개최지인 스위스 다보스의 거리는 “경이로운 인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유 시장주의 민주국가” 등의 슬로건이 담긴 게시물로 넘쳐났다.
사실 그 무렵 인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를 웃돌았다.
다보스에서 필자와 만난 인도 삼우장관은 인도 경제가 조만간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 성장세는 둔화됐고, 경제개혁은 멈춰 섰으며
‘약속의 땅’으로 몰려들었던 해외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국외로 빠져나갔다.
머지않아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던 고위관리의 호언장담도 빈말로 끝났다.
최근의 성장둔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규모는 인도의 다섯 배에 달한다.
그러나 필자는 2006년 다보스포럼에서 느꼈던 ‘인도 열풍’이 사라졌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의 부푼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성장세를 유지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인도 경제는 일련의 혁명을 통해 성장 가속 엔진을 달게 됐다.
첫 번째 혁명은 아드하아르로 불리는 정부주도의 정교한 디지털 신분증명 프로그램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아드하아르 프로그램 가입자에게는 지문이나
홍채 스캔만으로 신분확인이 가능한 열두 자리 숫자의 고유번호가 주어졌다.
별 것 아닌 듯 들릴지 몰라도 노벨상 수상자인 폴 로머에 따르면
아드하아르는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ID 프로그램이다.
인도 성인의 99.9%가 가입한 디지털 ID 프로그램으로 즉각적인
신원확인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든 단 몇 분만에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정부도 수령자들에게 연금이나 사회복지금을 직접 송금할 수 있어
전달단계에서 발생하는 횡령이나 착복 등의 부정행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구든 무료로 가입할 수 있는 아드하아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가입자 개인 정보를
제 3자와 공유해 영리를 취하는 서방국의 디지털 플랫폼과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따로 수수료를 지불할 필요 없이 아드하아르에 기반을 둔 사업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오 혁명이다.
재계의 리더인 무케시 암바니는 자신이 소유한 통신서비스사 지오(Jio)를 통해
모바일 스마트폰과 데이터 패키지를 최저가로 제공함으로써 대다수 인도인의 인터넷 접속을 가능케 하는 460억 달러 규모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을 컴퓨터로 사용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도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7억 명 선을 넘어섰다. 2015년도 인도 국민 1인당 모바일 테이터 사용량 순위는 122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중국과 미국의 합산 사용량을 뛰어넘으면서 당당히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 번째는 기반시설 혁명이다.
도로와 공항, 기차역을 비롯한 각종 기반시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예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4 회계연도 이후 정부의 설비투자는 다섯 배, 전국 고속도로 건설은 두 배로 늘어났고
항만 화물처리능력과 공항의 숫자 역시 크게 개선됐다.
이들 3대 혁명이 이번에는 인도를 확실하게 바꾸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주변인의
삶을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인도인들을 수용하는 고난도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9년 현재 인도 전체 인구의 45%에 해당하는 6억 명이 하루 3.65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드하아르의 설계자인 난단 니레카니는 하부에서 상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새로운 상향식 접근법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0개의 새로운 공장을 지어 수만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중국의 하향식 접근법이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수백만 개의 영세업체들이 아드하아르를 통해 대출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1,000만개 영세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업체 당 두 명의 직원을 채용한다면 당장 2,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크고 시급한 포괄적 접근성의 문제는 아직도 사회활동에 다양한 제약을 받는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놀랄 만큼 낮은 인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20년 사이에 30%에서 23%로 떨어졌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인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최하위로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낮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여성과 남성의 노동참여율 격차를 줄일 경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이 향후 30년에 걸쳐 30%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인도는 양적 성장뿐 아니라 양질의 가치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리고 바로 그 같은 잠재력의 발현이 ‘경이로운 인도’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 파리드 자카리아/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호스트^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
미주 한국일보
2023년5월1일(월)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