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김일씨 한국서 귀국후 2주만에 무역회사 경리로 취직
한국로무로 3년간 일한 김일(35살)씨가 귀국할 때 딸라뿐만 아닌 한화로 우편료금 5만원 팔면서 영어사전 등 공구서적을 망라한 책 한박스 갖고와 화제를 던져주고있다.
로무로 한국 가기 전 룡정시 세린하골 막치기에 자리잡은 대회동에서 김일은 촌민소조장으로, 당보의 통신원으로 활약했고 입당도 했다.그도 남들처럼 한국로무길에 올랐지만 노린것은 돈뿐만 아닌 선진기술, 선진문화의 습득이였다.
한국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원정공주식회사에 취직한 김일씨는 세탁기, 랭장고 부품생산에서 부지런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휴식일에 같은 회사에 취직한 중국조선족들과 함께 시가지로 회식을 갔는데 갑자기 태풍,폭우가 들이닥쳤다. 부품생산재료가 몽땅 거덜날 판국이니 속히 돌아와 태풍피해 구조작업을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회사 사장의 구원전화가 걸려오자 음식이 갓 상에 올랐건만 절도 대지 않은채 그는 동료들을 이끌고 급급히 회사로 뛰여가 구조작업에 들어갔다.이렇듯 매사에서 본때를 보여 귀국시에는 회사측으로부터 로무일군으로는 처음 공로상까지 탔다.
한국에 있는 기간 그는 돈을 좀 벌자 우선 한화130만원을 들여 노트북을 갖추고 짬짬이 컴퓨터조작과 영어를 꾸준히 익혀갔다.
귀국을 앞두고 김일은 학비 90만원을 내고 전화강의로 영어일상회화실력과 컴퓨터심층조작을 가일층 공고히 하였다.
《한국 연수 3년간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컴퓨터 다루고 영어에 입문한것이 제일 큰 수확이다.》 김일씨의 한국행 감수이다.
귀국후의 취직에서 김일씨는 컴퓨터기술과 영어실력을 밑천으로 귀국 두주일만에 연변다락가(多있加)무역유한회사 경리로 취직하였다.한국서 작업복 입고 장갑 끼고 3D업종에서 일을 했지만 중국서 관리계층에 들어선 김일은 신심가득히 말했다.
《일하면서 노트북 갖추고 영어 배운게 은을 낸것 같다.남들은 한국서 번 돈으로 연길에 주택 사놓고 돈이 딸려 재출국하면서 책임포전을 한족들에게 가볍게 넘겨주지만 나는 한국서 번 돈으로 우선 대회동에 있는 초가집을 개조하고 책임포전을 굳건히 지키는 한편 연길에서 열심히 사업할것이다.》
길림신문
첫댓글 참 훌륭한 분이십니다 김일씨같은 분들이 좀 많아 졋으면 좋겟습니다 외국에 가서 벌어온 돈과 기술로 우리 고향에 의바지 햇으면 좋겟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저 분에게 박수를.....
많은 분들한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훌륭한 분이십니다.
같은 조선족으로써 참 대단하십니다
잘 하셨네요,박수.
저도 지금 자습으로 일어를 배우는데 힘들어서 포기할까도 하는데 힘이 되네요.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