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벙에 가입한지 1년이 지나서야 첫 참가를 하게 되었네요.
영덕대게축제를 가려했는데 자리가 없다 해서
차선책으로 매화축제를 한번 보는 것도 괜찮을듯 싶어 신청했답니다.
사실 태어나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자못 기대를 했었지요.
7시30분에 신사역 출발이니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지요.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서보는게 얼마만인지... ㅎㅎㅎ 제가 쫌 저녁형 인간인지라...
아무튼 자그마한 사정(?)이 생겨 차는 40분이 약간 넘어 출발을 했지요.
그리고 무려 5시간 가까이를 달려 보해매화마을에 당도했습니다.
해남까지 지루한 여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요란한 음악과 축제를 알리는 행사마당이 곳곳에 펼져져 있더군요.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 제눈은 주위 곳곳을 훑고 있었더랬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찾고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뜨~~~헉~~~!
처음 만나는 매화밭의 느낌이 아래 사진에 잘 담겨 있습니다.
추위가 길어진 탓일까. 정작 축제가 시작된 시점에도 매화는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꽁꽁 숨기고 있었지요. 왕대박 실망!
그래도 희망을 갖고 혹시라도 피어있을 매화를 찾아 동분서주 했지요.
그러다 발견한 녀석. 아직 활짝 피지도 않았건만 이정도도 왜이리 반갑던지... 에혀~~~!
(아래 사진은 매크로 촬영 사진. 나름 이쁘지 않나요?)
한참을 뒤지고 뒤진 가운데 발견한 나무 한그루에서 제법 활짝 핀 꽃들을 찾아냈네요.
이거라도 봤으니 망정이지.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게 된게 그나마 다행. ^^
참, 울타리 형태로 심어놓은 동백꽃은 아직 한창이더라구요.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할만큼 이쁜 꽃들을 달고 있어 나름 위안이 되었던 녀석입죠.
아직 새순조차 내지 못한 매화가지엔 박주가리 씨방이 을씨년스럽게 달려 있기도...
매화밭 가엔 꽃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광대나물이 현란한 광대놀이라도 보여주듯 자태를 뽐내며 옹기종기 모여 피었더군요.
한 소쿠리에 천원하는 겨울을 난 시금치라도 뜯어 왔어야 했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단지 뜯기가 귀찮아 포기했다는...
듣보잡 가수의 구성진 가락이 땅끝 해남 매화 축제의 일등공신은 아니었을지...
1시간30분 정도 주어진 시간이라 짧게 느껴졌어야 하건만 아직 피지도 않은 매화밭을 순식간에 돌아보고
행사장 주변의 먹거리만 뒤지다 버스에 승차하고 다음 장소인 녹우당으로 향했답니다.
효종 임금이 윤선도에게 하사한 녹우당.
'푸른 비가 내리는 집'이라... 왠지 이름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저만 한건 아닐듯.
입구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반깁니다.
세워진지 600년쯤 되었다 하니 저 은행나무도 그쯤의 시간을 그곳을 지키고 있었겠지요.
버스에서 내리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곳. 유물전시관이 마련되어 해남 윤씨 일가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30여 분만에 둘러보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산초당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산초당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20분 정도 소요되는것 같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18년동안이나 유배되어 지내던 곳으로 유명하지요.
이 곳에서 저술한 책만 해도 500여권에 이른다 하니 실로 놀랍기만 했답니다.
아래 사진은 유배지로 가는 길이랍니다.
뿌리가 다 드러날 만큼 푹 패인 길 양 옆의 흔적이 세월을 대신하네요.
정약용 선생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일명 뿌리의 길이라고도 한다네요.
이쯤에서 정호승 시인이 이 길을 보고 지은 시 한편 적어 봅지요.
뿌리의 길
정호승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할
길이 되어 눕는다
이 시 길 중간쯤에 적혀 있었는데 다들 보셨겠지요. ^^
아래 사진이 다산초당이지요.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정약용은 초당 왼쪽 30미터 위쪽에 있는 돌에 자신의 성인 '정'자를 따서 정석(丁石)이란 글을 새겼다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그는 저곳에 글자를 새겨 넣은 걸까요.
이렇게 정신 없이 구경하기에 바쁜 하루가 막을 내렸던 시각은 4시 30분쯤.
40분 출발하여 서울로 내달려 오니 채 10시가 되기 전 도착.
얼떨결에 다녀온 싱벙의 처음 여행이지만,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을 듯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활짝 핀 매화를 보고 싶을 거라는...
참 이자리를 빌어 처음 여행 잘 인솔해 주신 도도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파랑님 ...첫여행을 너무 멀리가셔서 조금 피곤하셨겠네요...이제 여행 시작하셨으니 자주뵐수 있기를....
네. 종종 여행에 참석하려구요. 닉은 짧고 쉬운 게 좋다 하셔서 '기발한'에서 '파랑'으로 바꿨습니다요. ^^
글읽으며 내내 웃음 지을수 있는 ㅎ 잘읽고 잘보았습니다^^*
정말 멋지네요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