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진의 '다산 초당' 답사를 자주 갔다.
가난이란 ?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항상 가난에 쫓겨 배가 고프고 못 먹고 못 입고,못 배우고 살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 부모님은 1902 년 생이니, 일제강점기에 태어 나셔서 일제의 의하여 침탈을 당하고
사시고 인권을 유린당 하시고 배고품과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 온 세대이시다.
지금 생각하니, 논이라도 있는 3 마지가 소작으로 전락하여, 거기서 경작을 하면서 얼마씩
상환을 하여 소유권을 취득 한 걸로 안다. 기껏해야 선영산에 주거 생활을 얻쳐서 해야 하고
전기불도 없고, 산골의 농촌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의식의 전통에 사로 잡여 선산의
조상에 대하여 항상 걱정을 하고 ,어떻게 하여 선대의 비석(碑石)을 세울까?
내 어렷을적에 자고 나면 ,항상 선산의 조상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 인가? 이게
살아가는 일상 이었다. 선친은 기꺼 해야 나주 향교의 제관이나 문중일에 앞장 서시는 역활이
본인의 일로 생각 하시는 걸로 평생을 살아가시는 분이시다.
반면에 어머니는 오늘도 무엇을 하여 먹고 살것이며, 어떻게 하여 재산을 더 키울거인가?
고심을 하며,한시도 놀지를 않으시는 억척 같이 살아가시는 여장부이시다.
내가 살아 온 과거는 이렇게 어려운 농촌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하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 때 농촌에서 벼짚으로 지붕을 이었다. 그런데
여름철의 장마에 집이 새여 ,물을 방바닥에 바가지를 받쳐 놓고 비를 받아 내고 하였다.
그 모습에 시달린 나는 어떻게 든지 '검정기와집'을 마련하여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하여 부자로
살고 싶었다. 그게 나주의 배과수원을 하는 집들이 그렇게 잘 살았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 갈 것 같으니, 갖은 돈은 없지, 걱정이 되어서 "그냥
여기서 농사나 지어 먹으면서 살자고" 달레셨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전까지 마치고,막바로 서울로 상경하여 대학교 입시공부에 매진 하여
남산의 '시립남산 도서관'에 누나가 싸 주는 도시락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안에 농촌에서 뒤 떠려진 공부를 만회 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렸다.
농경사회에서 도시사회에로 탈출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 과정이 그렇게 만만한가?
돈이 있는가? 주거생활은 누나네 조카들과 함께 기거하고 ,식사는 둘째누나 해 주는 밥을 먹고
옷이라고는 '미군복'에 검정염색을한 상의를 걸쳐 입고 , 일년후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중국의 석학 '임어당 박사'의 초청 강의가 있었다.
강의 주제는 "Hurry, hurry up"
강의 내용은
"한국의 젊은이여! 한국의 젊은이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세상을 살것을 간곡히 ,그리고 선진국이며 부유한 나라의 젊은이는 재상의 아들로 비유"를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의 삶의 좌표를 제시한 것이다.
그 젊은 시절의 학창시절의 이 멋진 훌륭한 강의는 나의 평생의 죄우명으로 알고 세상을 살게 되었으며
가난의 대 물림을 할 뻔한 농촌을 탈출 하는데,가난을 물리 치는데 최선을 다한 삶 이었다.
항상 나의 손에는 책을 놓은 적이 없으며, 어떻게 하여 가난을 물리 칠 것인가? 고민하며 삶아간 삶이다.
첫댓글 결국 그원하신더바를 이루셨으니 오늘날 아렇게
은퇴후애도 후지양성위해 애쓰시니 성공한 인생이고 말고요 ㅎㅎ
지존 삶방의 방장님 ....
저는 절대 성공한 삶이라고 전혀 생각하지않습니다
나는 결코 자랑을 하기위한 글도 결코 아님니다
'이렇게 살아왔노라'하는 반추를해보는 추억의 산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부모님그리고 누나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산은 남김이 별로 없지만, 공부를 할수있는 머리를 주셨으며 ,아들이라고 교육을 시켜주신 고마움을
늘 잊지를 못하고 한세상을 살아감니다 그리고 우리집에 와서 고생한 아내를 잊을수가 없으며
저의 직업은 저 섬마을 선생님 ....
서울시공직으로 마무리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그 고민,
다 내려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 에서 리더들을 잘 만난 거.
향후 어떻게 지켜내느냐 가 관건이겠지요,
이 척박한 22만평방킬로 6천만 인구 로..
제발! 저보다 젊은이 들이 인지해야 할텐데~
감사합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추억의 옛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날의 젊은 실업자가 6십만명이라고 하는데 ....
젊은이들이 결혼을 않하고 ,아이도 않낳고, 걱정입니다
짧은 글 속에 함축 된 삶의 모습.
'항상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첨으로 만장봉님의 글에 댓글을 달면서..
I respect you very much!
라고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에 머리를 숙입니다 다 지나간 추억의 한 페이지입니다
만장봉님의 글을 읽다보니 가난 탈출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단련하고. 인내하며 사셨는지 그 느낌이 전해오네요.
지금은 여유있으실 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가난이 자랑은 아니니 ,탈출은 해야 되지않느냐?
노력은 많이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사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직생활도 무사히 마치셨겠지요
재능기부도 하시면서 알차게 사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 왔다고 한번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임어당 박사의 초청 강의가 만장봉님의 인생에 큰 좌표가 되었군요.
불굴의 의지를 가지시고 실천의 삶을 사신 추억글은 언제나 새롭고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베리꽃 방장님 ....
그 한번의 강의는 명강의 였으며,세계적으로 훌륭한 석학이었습니다
역시 틀리던군요 ,내평생 살아가면서 그때의 강의를 명심하면서 열심히 세상을 살았습니다
다지나 간 추억의 한페이지 입니다 뭐 존경까지야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