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최순호 사진기자의
10년동안 카메라에 담아온 조선족 다큐멘타리 사진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야 했던 슬픈 과거.
“동무들아 잘있거라. 나는 간도로 비 나리는 그날을 못 잊겠노라.
기차는 달려 두만강 건너.
백설이 자욱한 북만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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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구어리 조선족사진전 초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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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어떨 때는 피로, 어떨 때는 눈물로 거대한 대륙과 싸워야 했다. 물설고 낯설은 대륙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전통과 역사를 개척했으며, 조선인에서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자치주를 건설하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왔다.
한중수교이후 새롭게 다가선 조국인 대한민국은 개혁개방이후 경제적 꿈을 이루는 새로운 탈출구였다.
하지만 급격하게 불어닥친 한국바람은 동북3성 조선족 사회의 붕괴를 가졌왔다.
한평생 벌 수 있는 돈을 한국에 가면 4-5년만에 벌 수 있다는 꿈이 피와 땀으로 건설한 대륙의 땅을 버리고 떠나게 하고 있다. 더욱이
농촌에서는 처녀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고, 도시로 다 떠나버려 농촌 총각들은 결혼을 하지 못해 마을에서 아이 울음이 멈춘 지 오래되었다.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아내와 남편은 몇 년이 지나도록 연락 한번 없고, 돌아온 남편과 아내는 떨어져 산지가 너무 오래되어 대부분 이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리언드림을 이루기 위해 전재산을 다 털어 비자수속을 하다 사기를 당해 목숨을 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조선족 동포들은
자신들에 대한 천대를 참지못해 한국인을 살해하는 비참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10만이 넘는 못사는 천덕꾸러기 중국동포인 조선족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아직도 한국에서의 경제적 꿈을 꾸고 있다.
이런 동포들의 중국과 한국에서의 삶을 10년동안 카메라에 담아온 다큐멘타리 사진을 모아 출판기념회와 전시회를 갖고자 합니다.
9월3일은 1952년 중화인민민주의공화국에서 조선인이 조선족이 된 조선족자치주 창립입니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한국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무시하고 천대받는 조선족 동포들을 껴안는 심정으로 한국인의 가슴에 조그만 돌맹이를 던져봅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개인전이지만 개인적인
전시회가 아니라 조선족 동포 전체의 전시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전시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먼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으로써 조선족의 일대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시대 강제로 이주를 해온 조선인들이 어떻게 정착해 마을을 이루며 살았는지, 항미원조라는 6.25와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어떻게 가치관이 변했는지, 코리언드림을 이루기 위해 주중 한국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한중수교이후 한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다루었다.
두 번째로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 동포들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농촌총각과 결혼해 사는 조선족 여인들의 삶, 식당에서 허드렛 일과
공사현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꿈을 키워가는 삶의 현장, 고국이라고 찾아왔지만 멸시와 천대를 받는 동포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사진으로
담았다.
중간부분에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아직도 배가 고파 두만강을 건너는 북한 동포들의 이야기도 다루었습니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 조선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구려, 발해 역사를 중국 북방민족의 역사로 바꾸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앞으로 조선족의 운명은 국가권력의 이권 속에서 다시 한번 어떻게 뒤틀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며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조선족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고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최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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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주는 할머니
충청북도 청주군, 옥천군 ,보은군에 살던 180 가구. 수백명의 사람들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정월 대보름에 청주역에서 북간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탄 기차는 완행이어서 3일 만에 함경북도 온성군에 있는 온성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현재 두만강
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양수진 정암촌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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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남매
조선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농촌지역을 떠나 도시로 가는 남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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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결혼
한국 결혼 수속을 알리는 광고문. 중국 조선족들이 집거하는 지역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고다. 광고문에 본 광고효과는
장기적이다는 문구가 이색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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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원섭
2003년12월11일 새벽, 영하의 추위 속에서 3시간 10분동안 119와 112에 필사적으로 전화를 하다 끝내 동사한 김원섭
동포의 장례식. 그는 환경미화원이 시신을 발견하기 55분 전까지 살아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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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대사관
1995년 중국 북경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국행 비자 수속 순서를 기다리는 조선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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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낮 두만강을 넘다
두만강 갈대밭에 숨어서 30분 정도를 기다리자 건너편 북한 국경수비대가 자리를 뜨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건너편의 갈대밭에
움직임이 일었다.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황급히 강가로 달려나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옷을 들고 순식간에
강을 건넜다. 10여초나 되었을까... 탈북자들이 밤이 아닌 대낮에도 두만강을 건너온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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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조선족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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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제적 자유와 희망과 꿈을 위해서...탈북하여...삶을 업그레드해보자......정말 눈물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