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희생과 봉사 정신 ‘상록수’
나보다 남을 위한 희생… 타인의 삶을 늘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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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라는 이름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훌륭한 농촌 지도자에게 시상하는 ‘상록수 상’이 있고, 동티모르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한 우리 군부대 이름도 ‘상록수 부대’였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상록수’의 의미는 일 년 내내 잎이 푸른 나무를 뜻하기도 하지만, 자기희생과 봉사 정신을 바탕으로 타인을 언제나 푸르게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상록’이 이런 의미를 띤 데는 일제 강점기 큰 인기를 끈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역할이 크다.
심훈의 ‘상록수’ 일제 강점기 큰 인기
심훈은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심훈은 필명으로 본명은 심대섭이다. 경성 제일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기미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복역한 뒤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한때 중국 항저우 치장 대학에서 연극 문학을 전공했다. 1923년에 귀국한 그는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를 조직, 연극 활동에 관여한 것을 비롯해 영화 시나리오 집필, 각색, 감독, 소설가 등으로 활약했다.
1932년 심훈은 아버지의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했고, 4년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했다.
기미 독립운동 이후 일제는 잠시 문화정책을 펴다가 6·10 만세운동, 광주 학생의거, 만주사변 등이 일어나자 다시 무단정치로 돌아섰다. 그래서 우리 선각자들은 ‘브나르도 운동’을 통해 겨우 민족운동의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브나르도 운동’이란 1870년 러시아에서 청년 귀족과 학생들이 중심이 돼 농민을 주체로 삼아 사회개혁을 이루려고 한 계몽운동을 말한다. 러시아 말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운동조차 일본 제국주의의 제지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 운동을 더는 전개할 수 없게 되자 동아일보는 소설을 통해서라도 이 운동의 정신을 지속하려고 했다. 그래서 창간 15주년을 맞아 장편소설을 현상 모집하면서 농어촌을 배경으로 하고 진취적인 젊은이를 작중인물로 삼을 것 등 ‘브나르도 운동’에 걸맞은 조건을 은밀히 내걸었다. 심훈은 이 현상 모집에 응모했고, 이 소설 응모에 당선된 작품이 바로 농촌계몽 소설 ‘상록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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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 향해 정진해 가는 두 인물 묘사
소설 속 주인공 박동혁은 수원 고등농림학교 학생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인 서해안에 내려가서 농촌계몽 운동을 벌인다. 한편 여자 신학교 학생인 여주인공 채영신은 기독교 여자청년회 회원으로 청석골이라는 시골로 내려가 부녀회를 조직하고 마을 예배당을 빌려 어린이를 위한 한글 강습소를 운영한다. 박동혁과 채영신은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보고회 겸 위로회에서 만난 뒤 동지가 된다. 두 사람은 계몽운동이 자리가 잡히고 난 3년 뒤쯤 결혼하자는 약속도 한다.
박동혁은 농부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 ‘농우회(農友會)’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전근대적인 마을을 근대적인 마을로 만들기 위해 농촌개량 사업에 몰두한다. 지주의 아들인 강기천은 박동혁의 이런 계몽운동을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20평 정도의 농우회관이 건립되고, 강기천의 훼방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박동혁의 동생이 마을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 형인 박동혁이 구속된다.
채영신은 채영신대로 눈뜬장님과 다를 바 없는 시골 사람들에게 글을 깨우쳐 주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 처음에는 마을 예배당을 빌려 야학을 열지만, 장소가 비좁은 데다 여러모로 불편하자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녀 앞에도 온갖 시련과 고난이 가로놓여 있다. 채영신은 새 건물을 지으려고 어느 재력가에게 기부금을 간청한 일이 말썽이 돼 기부금 강요라는 죄목으로 주재소에 갇힌다. 뒷날 기독교계의 추천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뒤 채영신은 청석골로 다시 돌아와 농촌계몽 운동을 계속하지만, 곧 병에 걸려 박동혁을 애타게 부르다가 숨을 거두고 만다.
‘브나르도 운동’ 내포된 농촌계몽 소설
일제 강점기는 자신은 물론 가족을 돌보기에도 무척 힘든 시기였다. 모든 것이 여유로울 때는 남을 돕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내가 어려울 때도 남을 돕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록수’의 두 주인공은 나보다는 남, 개인보다는 사회를 더욱 아끼고 사랑한다. 헌신적인 희생과 봉사, 온갖 역경과 고난을 꿋꿋이 견뎌내는 불굴의 인내,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선(共同善)을 향해 정진해 가는 모습은 두 인물 사이의 애틋한 사랑 못지않게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김욱동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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