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 나선 산책
삼월 첫날이다. 백 년 전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를 불렀던 날을 기린 삼일절이다. 그해 그날 이후 전국 각지 일제의 강압통치에 항거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지역 창녕 영산과 마산 진동에선 그해 삼월 일본 경찰의 총에 희생된 선열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함안 군북과 김해 장유 장터에서도 무도한 일본의 통치에 애국선열은 죽음으로 맞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나는 창원 근교의 산과 들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선열들의 남긴 자취에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했다. 독립운동의 현장을 기린 기념비나 사당에는 혼백을 위패로 모셔 놓았다. 독립운동가의 무덤은 국가의 지원을 받은 빗돌이 세워졌고 동구 밖에 안내판이 있었다. 요새는 순국 독립운동가의 아호를 딴 도로명도 생겨났다. 한국전쟁 때 산화한 국군 장병보다 더 거룩한 현충 시설이었다.
날이 가고 달과 해가 바뀜은 사계절이 순환하면서 한 해를 보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번 삼월부터는 내 생애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교직에서 퇴직해 백수의 길로 들었다. 그동안 교직에 몸담아 묶어 있던 몸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걸림이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흔히 퇴직 이후를 인생 이모작이라고 한다만 나는 그에 대비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황야를 나선 기분이다.
새벽녘 몇 줄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날이 밝아오기 이전부터 가느다란 빗방울이 들었다. 무척 오랜만에 내리는 비였는데 양이 적어 감질날 정도였다.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에 해당하는 는개였다. 는개의 어원은 ‘늘어진 안개’로 안개 방울이 굵어지면 아래로 늘어져 거미줄 같은 줄이 되어 지상으로 하강하면서 비가 된 것이다. 비라고 하기 뭐해 안개에다 붙였다.
는개보다 더 가늘게 내리는 비로 ‘먼지잼’도 있다. 는개처럼 비라고 하기가 어려워 비라 하지 않은 것이 먼지잼이다.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땅으로 데리고 내려와 잠재움을 의미한다. 그 뜻의 풀이를 그대로 줄여 만든 이름이다. 먼지잼은 빗방울이 는개처럼 아주 작기도 하지만 공중의 먼지만 겨우 재워 놓고 곧장 그쳐 버리는 비다. 어쩌면 삼일절 아침나절 내린 비는 먼지잼이었다.
아침나절 소일거리로 작년 여름 고향에서 보내온 마늘을 마저 깠다. 지난 일월 어느 날 그 마늘을 까다가 양이 많아 일부를 남겨 놓았더랬다. 맨손으로 깠더니 손톱 밑이 아려와 한꺼번에 다 깔 수 없었다. 저온 창고 저장이 아닌 아파트 베란다에 보관 중인 마늘이 해를 넘겨도 곯지 않고 있음이 다행이었다. 마늘쪽에서 촉이 터 파릇한 싹이 자라 나와도 먹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다.
마늘을 깐 다음 이른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먼지만 재워 놓고 날이 개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용호동 주택지 골목을 걸었다. 집집마다 대문에 태극기가 내걸려 있어 주민들의 민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수 년 전부터 국경일에 태극기를 걸지 않음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 베란다의 태극기를 게양하는 꽂이가 낡아 깃봉을 꽂을 수가 없어서다.
용호동을 지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의집 부근으로 향했다. 주택지 담장에 노랗게 핀 영춘화가 눈길을 끌었다. 봄날에 매화처럼 일찍 피어, 그 이름만큼이나 봄을 맞이해주는 꽃이었다. 퇴촌동 유허지 고목 느티나무는 왼새끼줄을 두르고 있었다. 지난 정월대보름날에 동신제를 지낸 흔적인 듯했다. 창원의집으로 가니 토담 담벼락에 붙어 자라는 홍매화는 절정이라 벌들이 윙윙거렸다.
봉곡동 어느 집을 지나니 뜰에 심어둔 복수초와 수선화가 아름다웠다. 아마 화원에서 사서 심어둔 꽃인 듯했다. 골목 끝에 꽃집이 나왔는데 아까 그 집에 심어둔 꽃을 판 가게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이 궁금했던 한 꽃은 이메리스였다. 한들공원에서 봉림사지 오르는 분재원으로 가 꽃이 저무는 운룡매를 살펴봤다. 그루터기 주변 볕바른 자리엔 냉이가 좁쌀 같은 꽃을 피워 있었다. 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