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하루 - 기도, 가르침, 치유, 경천애인
2021.1.13.연중 제1주간 수요일 히브2,14-18 마르1,29-39
회개하라 주어지는 날들입니다.
사랑하라 주어지는 날들입니다.
오늘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묵상 나눔으로 자유롭게 강론을 전개하고 싶습니다. 얼마전 주문한 좋은 영문서적이 외국으로부터 도착하여 책을 주문해준 도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책 좋아하기로는 조선시대의 이덕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도 유명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보면 참 행복하고 욕심도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배고픈 것도 잊습니다. 좋으신 하느님을 사랑하면 참 행복하고 욕심도 사라져 가난도 사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황님의 인터뷰 기사중 사랑에 대한 다음 대목도 잊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랑이다. 네가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사랑으로 할 때 그것들은 비상한 것들이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께 우리를 개방하면 성령은 우리 매일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추위였지만 올 겨울들어 역시 근래 보기 드문 멋진 눈이 3차례 왔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마음처럼 깨끗하고 하얀 눈이 풍성하게 내립니다. 좋은 꿈 꾸세요.”
뜻밖에 받은 메시지에 흰눈처럼 깨끗한 마음, 깨끗한 사랑, 깨끗한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오래 전 써놨던 ‘봄꿈’과 ‘푸른솔’ 이란 두편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창문밖 가난한 언덕
보랏빛 은은했던 제비꽃 그 자리에
샛노란 감동의 민들레꽃 그 자리에
하얀 눈 덮여있다
흰눈 덮인 하얀 땅
보랏빛 샛노란 빛 봄꿈을 꾸고 있겠지”-1998.1.22.
-“새하얀 사랑 흰눈 가슴 가득 안고 행복에 겨워
말문을 잃은 푸른솔
얼마나 그리던 하늘 사랑이더냐
전혀 춥지 않다
무겁지 않다
사랑에는 추위도 무게도 없는 법
가슴에 담았던 그리움 활짝 피어내니 새하얀 흰눈 사랑이구나
이런 하늘 사랑 추억이 있어
늘 푸른 솔이다.”-2001.2.11.
아주 오래전 시이지만 흰눈덮인 정경을 보니 그립게 떠오른 시입니다. 얼마전 읽은 어느 시인의 단상도 생각납니다.
“초봄이다. 안개비 내리는 토요일 낮이다. 하늘에서 오는 것 무조건 다 좋다. 비와 눈송이, 벼락과 천둥, 심지어 미세먼지까지. 그것들이 헬기에서 내려주는 구호 물품도 아닌데 살아갈 힘을 준다. 지금도 울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81-82쪽;김이듬)
하늘에서 오는 것들이 상징하는 바 하늘 사랑입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궁극의 위로와 치유는 하늘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라, 회개하라 주어지는 날들입니다. 회개하여 다시 흰눈 같은 깨끗한 하느님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라 주어지는 날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습니다.
“내가 인간의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1코린13,1-3).
사랑은 빛입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은 의미입니다. 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어둠이요 죽음이요 공허입니다. 식사 때 마다 저는 물론 예외없이 목격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참으로 몸 건강을 위해서는 하나하나 모두가 온정성과 온힘을 다하여 절제하며 음식을 챙겨 먹는 다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이처럼 제몸 챙기듯 사랑하라는 뜻임을 절절히 깨닫습니다. 이웃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웃 사랑에 앞선 하느님 사랑입니다. 토요일 끝기도때마다 듣는 신명기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신명6,4-7).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 사랑의 경외와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은 사자성어입니다. 경천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형적 모델이 바로 하느님의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주 예전 수도원을 방문한 개신교 신학대학장님이 수도원을 둘러 본후 화두처럼 부탁했던 강의 제목(-‘수도자의 하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루’입니다. 예수님의 평생을 요약한 하루같습니다. 일일일생,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올인했던 예수님이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날실과 씨줄처럼 하나의 천을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사랑의 활동으로 가득 찬 예수님의 하루가 아닙니까! 열병으로 고생하던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시니 곧장 예수님 일행을 섬기는 시중에 올인합니다. 새삼 주님과 이웃을 섬기라 있는 건강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이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 내십니다. 가르침 후에는 반드시 치유활동과 구마활동이 뒤를 잇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다음 구절입니다. 공성이불거입니다. 전광석화, 예수님의 집착에서의 이탈이 참 신속합니다. 바로 이런 점을 예수님께 필히 배워야 합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삶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하느님 사랑의 기도입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감미로운 유혹입니다. 이렇게 인기 충천할 때 군중들의 눈 먼 광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느님을 잊은 활동주의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 홀연히 외딴곳으로 물러나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의 기도로 자신을 충전시키며 사명을 새로이 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저에게 새벽시간(01:30-04:30), 기도하고 강론쓰는 외딴곳의 장소는 집무실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잠시 멈추어 자신을 추스르는 외딴곳의 기도처는 필수입니다. 멈춤과 흐름은 영적 삶의 리듬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하느님 안에서 머물러 휴식과 더불어 사명을 확인한 후 힘찬 복음 선포의 활동의 흐름에 자신을 맡깁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에 예수님의 구체적 사랑의 진면목이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겪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 주실 수가 있습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기에,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인 기도가 늘 삶의 중심에 늘 자리잡고 있었기에 유혹을 겪으셨어도 유혹에는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경천애인에 올인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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