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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아무리 찻집처럼 보여도 일단은 술을 취급하고 있어서 말이야…. 미성년자 고용은 힘든데….”
“이전에 고용한 종업원도 결국은 17살이었잖아요?”
“아, 그 애도 일단은 낮에만 일하는 처자였고, 또 뭐랄까…. 그 볼륨감이라는게 있어서 어른입니다하고 적당히 둘러대면 괜찮은 아이였달까…. 그에 비해서 우리 조수 아가씨는 너무 가슴이….”
“가. 슴. 이?”
“아, 아하하하하. 가슴이 문제는 아닙니다만 키가….”
“키. 가?”
“아, 아하하하하하하하.”
할 말을 잃은 점장이 속으로 외쳤다. 어쩌라고! 해결사의 조수만 아니었다면 진작 쥐어박았을 것이다.
그렇게 까지 좁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사 사무소만큼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미 온 도시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곳 사람들은 보통 해결사 사무소를 ‘소굴’이라고 부르며 얽히기를 꺼린다.
“어쨌든 안 된다니까. 아가씨, 우리 사정도 생각해줘요. 안 그래도 쓸데없는 종업원이 한명 늘었단 말이야. 이 이상 종업원을 늘렸다간 정말 장부에 쌓이는 건 적자 밖에 없어요.”
확실히 그렇다. 그 해결사가 자기 가게에서 일을 한다. 해결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기분이 나빠져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러면 금세 나쁜 소문이 퍼지고, 가게도 끝장이다. 분명 그를 고용한 ‘건너편의 술집’도 금방 망해버리겠지.
“알았어요. 예전에 도와드린 적이 있어서 혹시나 싶었는데…. 다른 곳을 찾아 봐야죠.”
소녀는 정말 서운한 듯 얼굴을 푹 숙였다. 점장도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주방에 들어가 레토르트 음식 몇 팩을 봉투에 담아서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라도 가져가요. 정말 미안해요.”
“아,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매정한 것 아닌가도 싶다. 그도 그런 것이 해결사가 없었다면 이 가게는 이미 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몇 초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소녀 쪽에서 거북했는지 먼저 자리를 뜰 생각인 것 같았다. 소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장님, 저번에 광고 내셨던 알바 면접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순간, 입구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두통이 몰려온다. 애써 웃고 있는 점장이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해서….”
점장은 무리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소녀도 이 쯤 되면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 받았겠지. 점장은 그리 생각하고 종업원을 불렀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어이, 아가씨, 이건 가져가야지!”
점장이 외쳤지만 소용은 없었다. 꽤 상처 받은 것일까, 점장이 건네 준 최대한의 호의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웃끼린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소년이 한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숙인다. 소년이 일하려는 곳은 지하에 위치한 작은 바였다.
“그건 그렇고, 설마 자네가 아르바이트를 찾다니. 별 일 이로군.”
“뭐, 그렇죠. 요새는 일도 안 들어오고요.”
“하하하, 이 마을도 평화로워졌다는 이야기 아니겠어?”
중년 남성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소년 쪽을 보니 그렇게 유쾌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해결사쪽의 상황이 안 좋다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긴 했다. 몇몇 사람들은 꼴좋다고 비웃었지만 사건들의 전말을 알고 있는 남자는 안쓰러울 뿐이었다. 소년이 단지 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가 맡아왔던 의뢰들 모두 꽤 깊은 사정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자네 애인은 뭐라고 하던가?”
“애인이라니. 조수일 뿐입니다.”
소년이 정색을 하며 반론했다.
“뭐, 두 명 밖에 없는 직장인데 금방 친해지지 않겠어?”
“애초에 성격도 안 맞고, 서로 얼굴 마주치면 으르렁 거리기 바쁜 사이인데 사랑이 싹튼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기의 미스터리겠지요.”
소년은 진심으로 질린 것 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정도로 부정하면 오히려 놀리는 쪽이 재미있다. 남자는 카운터 아래에 숨겨두었던 보드카를 집어 들어 뚜껑을 연다.
“세간에는 같이 산다는 소문도 있던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황할 질문에 소년은 무덤덤하게 답한다.
“그건…. 녀석이 살 집이 없다고 하기에 같이 사는 것 뿐 입니다. 일단 사무소 식구니까요.”
“책임감 있는 남자네? 여자들은 듬직한 남자를 좋아하지.”
“아, 정말…. 계속 놀릴겁니까, 마스터?”
“하하. 재미있어서 그만. 얼른 준비하고 일 시작하지.”
“예.”
소년은 피식 웃고는 옆에 있는 행주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첫 출근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마스터에게도 면목 없겠지. 소년의 얼굴에는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그 때였다.
“소장님,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꽤 불편한 표정의 소녀가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하는 중이라고….”
“알바 찾는다는 소리는 없었잖아요?”
“내가 그걸 꼭 너한테 말해야 하겠냐?”
소녀가 소년의 전신을 눈으로 훑는다. 완벽한 바텐더 복장.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소장님이 밤에 일하러 나가시면 저는 뭘 먹나요?”
“컵라면이라도 먹지 그래? 아니면 요리를 배우던가.”
“컵라면은 질리고, 요리는 칼을 써야 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 너 낱붙이 싫어했지.”
소년이 테이블을 닦으며 소녀를 올려보았다.
“그렇습니다. 싫습니다.”
“그럼 30분 카레라도 먹던가.”
“레토르트는 예전에 질리도록 먹어봐서 싫군요.”
“통조림은?”
“이하 동문입니다.”
소녀는 꽤 토라져 있었다. 소년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소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저도 여기에서 일을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따라놓은 보드카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꼬마아가씨는 안 돼. 여긴 술집이니까.”
“단속이 심하진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것도 그래. 그럼 홀 서빙을 부탁해.”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 재건은 혀를 찼다.
“신고 당할 거야? 꼬마가 술장사 도와준다고.”
“괜찮아, 괜찮아.”
한껏 달아오른 목으로 말하는 남자. 눈의 초점이 약간 흐리다.
“술집 주인 주제에 술은 워낙 약하단 말이야. 이봐, 그 이상 마시면 장사 못하잖아?”
“아, 그렇지.”
키득 웃는 남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카운터로 돌아갔다.
“어쨌든 집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지금부터 4시간 정도만 일하는 거니까, 12시 전에는 돌아갈 거야.”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고집은 적당히 부리고 돌아가서 있어. 알아서 뭐 좀 챙겨 먹던가 하고.”
말은 저렇게 해도, 실은 걱정하는 것이리라. 소녀가 기특해진 소년은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구 쓰다듬었다. 소녀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불쾌한 행위였다.
“그만하지 못하겠습니까.”
소녀가 잔뜩 토라진 눈으로 소년을 올려보았다. 감정하나 실리지 않은 기계음 같은 목소리였지만, 불쾌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알았으면 이제 정말 돌아가. 네가 계속 여기 있으면 일을 못하잖아? 아니면, 여기서 술이라도 마시던가.”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더러워진 걸레를 빨기 위해서였다. 그 뒷모습을 보며 소녀는 눈을 치켜세웠다. 어린이 취급하는 것이 영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정말 못 마실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겁니까?”
소녀는 남자가 마시다 남긴 보드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 그런 이유로 해고.”
점장이 해맑은 표정으로 소년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봉투에는 큼지막하게 퇴직금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
소년은 일을 시작한지 불과 2시간도 안되어 해고된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잔뜩 취해 사방에 토를 해대는 조수의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선처를….”
“만약에 저 아가씨가 이대로 얌전해진다면 고려해보지.”
“두말 할 것도 없다는 뜻이로군요.”
“유감이야.”
“아니요.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소년은 좀비처럼 사방을 기어 다니는 조수의 목덜미를 잡아 번쩍 들었다. 그는 조수의 원피스를 거칠게 벗겨냈다.
“…. 오늘은 영업 안하십니까?”
“임시 휴업이라는 것으로.”
“정말 면목 없습니다.”
소년은 속옷차림의 소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프릴이 많이 달린 원피스였지만 얇은 천으로 되어 있어 토사물에 촉촉하게 젖어선 속옷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 정말…. 여기 샤워실 같은 것은 없죠?”
“어, 샤워실은 없어. 화장실에 가면 호스 같은 게 있을 거야.”
“아,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소년은 축 늘어져 바둥바둥 거리는 소녀를 어깨에 들쳐 매고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는 이 광경을 정말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소녀를 마치 집안의 애완견 다루듯 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자면, 소년은 정말 소녀를 ‘식구 그 이상’으로는 보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말 별난 콤비야, 저 둘은.”
어짜피 휴업이니까 괜찮겠지. 점장은 바에 올려두었던 보드카에 손을 올렸다.
“아, 도대체 얼마나 술에 약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병 주변에 묻어 있는 토사물을 바라보며 점장은 매스꺼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괜찮아. 여기는 내가 어떻게든 치울게.”
“하지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이쪽도 언제나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있고, 또 언제 한번 신세질지도 모르니깐 말이야.”
남자는 괜찮다며 손을 여러 번 내저었다. 소년은 내키진 않았지만, 호의를 애써 거절 할 정도로 무르진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목례를 하고 빠르게 가계를 빠져 나왔다. 물론 그의 어깨에는 방금 빨아 축축한 체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매달려 있었다.
“너는…. 마시라고 한 내 잘못도 있긴 하지만, 오기가 생겨서 마신 너는 뭐냐?”
소년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평소엔 얌전하지만 묘한 곳에서 고집을 부린다. 논리적이고 냉정하지만, 자주 흥분하고 뒤끝도 산처럼 쌓아놓는다. 기계가 되다 만 사춘기 소녀 같은 느낌이다. 재건은 입을 다물고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도, 이 세계에 발을 딛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평범하게 사랑을 하며 살지는 않았을까? 어째서 마법에 손을 댄 것일까?
소년은 가까이서 달려오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그는 소녀를 뒷좌석에 적당이 던져놓고 그대로 들어가 앉았다.
“어디로 갈까요?”
묘한 2인조였지만 딱히 신경 쓰진 않는다. 택시기사는 반쯤은 피곤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물었다.
“구청동 중도나폴리 103동 입구까지.”
소년의 말은 짧았다. 그리고 똑같이 무미건조했다.
자신의 집에 들어서면 묘하게 몸이 나른해진다. 소년은 소녀를 거실에 대충 눕혀놓았다. 방은 2개 밖에 없고, 평수도 넓지 않은 자그마한 아파트이지만, 워낙 물건이 없는 탓에 오히려 넓어 보였다. 커튼 없는 자그마한 발코니는 그대로 밤하늘을 담아낸다. 이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달빛 하나만이 소년의 사방을 비춰주고 있다.
소년은 오랜만에 옛날 생각에 잠겼다. 그 빛나는 날들 속에는 자신과, 그의 연인과, 그의 가족들과,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 날들 속에는 언제나 태양이 있었다. 모든 것을 감싸는 따스한 햇살이 있었다.
“….”
소년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살풍경의 배경에 걸맞은 하나의 조각상. 그에게는 이미 추억을 가슴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하나의 보고서일 뿐이었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날들이 그리운 것일까. 소년은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감회란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수년간의 경험이 그에게 말해준다. 감정을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생존법이라고. 그렇다고 속삭이는 것은 언제나 그 자신이었다.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할 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긍정하지도 못한다. 그의 확신은 눈앞의 소녀에 의해서 재고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자신이 가진 어떤 감정을 부정당한다면 상당히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은 없지만,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시기는 있었다.
‘그래서, 자네 애인은….’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어쩌면 자신을 두드리는 이 묘한 감정을 스스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그 감정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라는 것인가. 역시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다. 또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사랑인가. 그리운 단어로군.”
소년은, 그 이후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치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니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축축해…."
완전한 여름이었지만, 여전히 서늘한 새벽바람에 소녀가 깨어났다. 옷이 전혀 마르지 않아서 더욱 추위를 타는 것이리라. 추위에 눅눅함이 더해져 이보다 불쾌할 수 없다. 더군다나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여름에 감기라도 걸리면 바보취급 받는다는 풍습이 이 나라에는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소녀는 이빨을 달달 떨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응?”
소녀의 옆에는 자신을 껴안고 곤히 잠들어 있는 소년이 있었다. 기분이 좋은 것 같은, 슬픈 것 같은 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광대의 모습.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
어제, 자신의 선배에게 들은 그의 단편적인 이야기. 그것에 대해 소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나온 결론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일단은 그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사정이 있었던 것이겠지. 자신의 임무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얽힌 악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이 사람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금의 자신이 가진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정하고 이곳으로 돌아온 것 아닌가.
소녀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지금 그의 모습은 소녀가 가진 모성본능을 자극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어차피….”
갑자기 소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에 놀라서 얼굴 주변을 매만진다. 그 때였다. 창가에서 전화가 울렸다.
“아, 저, 전화를 받아야….”
소녀는 빠르게 자신을 추스르고 전화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서로 어제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언제나 있었던 일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언의 화해와 함께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 왔다. 식사를 준비하는 소년, 그것을 기다리는 소녀.
“밥, 뭐 먹을 거야?”
“아직 쌀이 남아있었나요?”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오늘까지 먹을 양은 남겨 뒀을 텐데.”
“마지막 식사로군요.”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생활 능력이 이렇게도 없는 것일까. 한탄해도 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작정하고 자신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일거리도 없다. 협회의 일은 당분간 받지 않을 생각이다. 거기에다가 자신 때문에 소년이 애써 얻은 일자리마저도 날아가 버렸다.
“다 너 때문이니까 반성하고 있어.”
소년의 목소리에 별 다른 감정은 없었다. 거기에 남자에게 받은 기부 겸 퇴직금도 있다. 아껴서 쓴다면 한 10일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곰곰이 생각한다. 이대로 한국에 죽치고 있는 것 보다는 다른 나라로 가버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일단 소녀도, 소년도 외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협회에서 준비해 놓은 위조 신분증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아침의 제안도 있다.
“오히려 잘 됐습니다. 이로써 당신도, 저도 한가하군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소녀가 나온다. 그녀의 뒤로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김이 피어오른다.
“너, 덥지 않아?”
“불 앞에 있는 당신만큼 더울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확실히, 소년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의외로 더위를 잘 타기 때문인지, 불 앞에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년은 벌써부터 여름이 싫어지려 하고 있었다.
“아, 확실히…. 어쨌든 한여름에 더운물로 씻는 것은 피하도록 해. 보는 나까지 더워지잖아.”
“개인의 취향입니다.”
소녀는 딱 잘라 말했다. 좀체 이해 할 수 없는 취미라고 소년은 생각한다. 심지어 북극의 겨울이라고 해도 저렇게 펄펄 끓는 물로 샤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절대 사양이다.
소녀가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적당히 앉는다. 소녀는 상 위에 올려 진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물의 차가움이 목에서 위로 서서히 퍼진다. 약간은 열이 올라있던 얼굴도 서서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간다. 소녀가 티셔츠를 작게 펄럭이며 재건에게 말했다.
“저는 일단 영국으로 돌아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 협회 일인가?”
“아뇨. 할머니 댁에서 몇 달 머물 생각입니다.”
“할머니? 아, 영국에 네 할머니가 산다고 했었지?”
“예. 그래서 일단 허락을 맡고 싶습니다.”
“갔다 오는 게 어때?”
“아…. 감사합니다.”
소녀의 들뜬 목소리에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소년은 꽤 놀랐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소녀는 지금 활짝 웃고 있었다. 온화하고 화사한 웃음이었다.
“그렇게 좋아?”
“할머니와 만나는 것은 3년 만입니다. 당연히 기쁩니다.”
“그러냐? 잘됐네.”
자신의 입 꼬리도,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인물 프로필
No.1 노재건(23세, 남)
"아무 짝에 쓸모 없는 남자입니다만, 가끔가다 눈을 완전히 뜨고 있을 때면 조금 멋있기도 있습니다."
- 연비와 펠리스의 대화 中
사무실에서 죽치고 잠만자는 모습만 보면, 영락 없는 백수 건달.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무실에서 언제나 살짝 감긴 동태눈으로 지낸다. 연비는 나름 괜찮은 외모를 가꾸지 않는 그 점이 불만이다. 재산은 자신 명의의 집 한 채와 상가 2층의 작은 사무소 뿐. 그나마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으로 먹고, 소비하는 습관 때문이다. 얼마나 소비에 엄격하냐 하면, 미용실 갈 돈이 아까워서 집에 있는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손질 할 정도이다. 그 조차도 미용 가위가 아닌 음식용 가위. 하지만 연비가 오고 나서, 가끔은 인간다운 소비를 하는 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협회의 전 수사과 S급 에이전트. 입사 시절부터 S랭크에, 연수원을 거치지 않았지만 실력면에서는 타의 추정을 불허했기 때문에,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입사 이전이나, 입사 동기에 관해서는 불명. 또한 '카오스' 사건을 단신으로 해결 한 공로자로써 12장로회의 후임으로 임명되는가 했지만, 돌연 사퇴. 이후 프리터로 전향했다.
어쨌든, 당시에는 꽤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였다는 진술들과는 달리, 현재는 꽤 말수가 많고, 특히 연비에게는 나름 부드러운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방악무인하고 제멋대로인 점은 이 놀라운 변화의 부작용이지만.
No.2 화연비(16세, 여)
"그 철판 가슴과 땅딸막한 키만 언급하지 않으면 그녀가 먼저 무는 일은 없지. 성질 머리만 좀 고치면 귀여울 텐데 말이야."
-재건이 연비와 싸우고 난 뒤 하는 혼잣말 中
북한 평양 출신의 동양인 소녀. 외모만 보면 귀여운 일본인형과 판박이. 표정도 항상 무표정에 포커페이스이다. 언제나 검은색 생머리를 고수하고, 하얀 원피스만 종류별로 100벌 정도 있을 정도로 흑백 매니아며, 머리에 염색하는 것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보통이면 학교를 가야 할 나이지만, 요즘 청소년들과는 맞지 않는다며 자신의 의지로 등교 거부 중. 덕분에 현재 자신의 후원인을 자처하는 12장로회의 폴로 장로와 보호자인 할머니와는 마찰이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협회에서의 위치가 있기 때문에 강요하기도 힘든 시점이라 폴로 장로도 반쯤은 포기 한 상태이다. 할머니 쪽은 전혀 포기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녀는 북한의 어떤 마법사 가문의 출신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모종의 이유로 일부 가족들과 탈북해서 영국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그녀가 협회에 밝힌 전부이다. 그녀는 10살 무렵 부터 1년 가량 워킹 컴퍼니의 훈련병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컴퍼니에서 퇴사하고 협회에 정식으로 지원하게 된다. 연수원 시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입사 이후 갑작스럽게 S랭크 자격을 얻어낸 데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를 지켜 본 같은 동기들도 조차도 의문. 일각에서는 폴로 장로의 힘이 있었다는 설도 있고, '진리'를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12장로회 맴버들과 일부 지인들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는 재건을 협회에 돌아오도록 만들라는 임무에 지원, 한국에서 재건의 조수로써 일하고 있다.
항상 무뚝뚝하고 합리적인 그녀지만, 의외로 감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은근히 다혈질에, 묘하게 감성적인 점에서 그나마 소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재건을 '소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때는 완벽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몇 가지 빠진 점이라면, 그녀는 키와, 가슴에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으며, 무엇인가를 먹고 있을 때 그것을 뺐으면 두려움을 모르는 '귀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재건은 이 점을 취급시 주의사항이라고 부른다.
작가말.
안녕하세요. 노크라입니다. 오늘은 01/2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래 캐릭터 프로필 까지 잘 읽으셨나요?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불명이라고 명시 된 부분은 스토리의 핵심들이니 놓치지 마세요. 어쨌든 내일은 02/1편으로 여러분을 찾아 뵙겠네요. 우선 저번 글을 읽어주신 122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추천 꾹 눌러주신 한 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ㅜ.ㅜ
이야, 수다방에 친신 요청을 했더니 많은 분들이 응해 주셨더군요. 오즐님, 푸른하늘아래님, 운율님, 채 뉴님, 나비:NaBi님 감사드리구요, 사탕이, 카요, 템보, 이린이, 햇살이 정말 고마워 ㅋㅋ. (라는 글을 써서라도 필사적으로 분량을 늘리려는 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번 글에서는 이 소설의 분량에 대해서 이야기 해 드렸으니, 이번에는 이 소설의 설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은 현대 판타지라고 프롤로그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퇴마록과 비슷하죠.(물론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도, 재미 면에서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입니다만….) 동서양의 신화나 전설, 설화. 마법이나 무협등 장르 불문하고 다 다룰 생각입니다. 물론 한 사람이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써서 천하를 평정한다는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습니다. 제 세계관의 사람들은 한 우물 파는데도 벅찬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전판타지가 아닌 그냥 '판타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제 세계관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입니다. 이 부분은 조금 이야기가 길고 의견차가 있는 부분이니 또 다음에 다룰 기회가 있다면 이야기 하도록 하죠.
그나저나 조회수 100돌파라는 목표를 달성 했군요. 이젠 한동안이 이 수치를 유지하는게 목표입니다. 조회수가 꾸준하다는 것은 읽으시는 분들이 꾸준히 읽어주신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입소문이 퍼지겠지.) 이대로 태양마차 상편이 다 끝날 때 까지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항상 말씀 드리는 것이지만, 조언, 충고, 비판, 격려나 칭찬, 의문점들 모두 받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들이 제 글을 조금 더 풍성하고 알차게 만든다는 점 잊지 말아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ps. 01/1편만 보시고 프롤로그는 안 보신 분들은 프롤로그편도 보시는게 좋을 겁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그런가? 나도 확신이 안서네….
ps2. 아 깜빡하고 말씀드리는걸 잊어버렸네요. 씨앗방 연재때 약속했던 대로 외전 - 어떤 스토커의 크리스마스편도 착실히 진행중입니다. 제 글을 봐 주셨던 2분께 드리는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기분좋게 받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ㅇㅇ.
(물론 대규모 수정을 거쳐야겠죠.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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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여주도 남주랑 비슷할 수 있어요 ㅇㅇ. 그건 계속 읽다 보시면 아실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