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방금 꺼낸 오뎅을 입안에 집어 넣고 우물거린다.
친구 1 - 한국에선 지금 오뎅바가 유행이야. 이런거 못먹어봤지?
친구 2 - 국물이 죽여주거든, 이거랑 원래는 정종을 먹어야 제맛인데.
남자 - (오뎅을 우물거리며) 안 비싸면 한 병 시켜봐.
친구 1,2 - (동시에) 돈없어, 소주마셔.
그 때 친구형 K, 오뎅바에 들어온다.
친구형k - 핫하하, NEO 돌아왔구나!
남자 - 예 형. 오랜만이에요. 형은 머리가 더 빠졌네?
친구형k - (버럭) 자식이 오자마자 첨 한다는 얘기가!
남자 - 형 정종 좀 사주세요.
친구형 K - 머리 많은 시키한테 사달라 그래. 어? 근데 너 영국에서 돈 못 벌어왔냐?
남자 - 엥?
친구형 K - 그럼 영어는? 해봐, 잘하냐 이제?
남자 - No, I can't
친구형 K - 칸트라니, 철학자 말하는거냐?
남자 - 영국에선 캐앤, 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카안t 라고 발음해요. -_-;;
친구형 K - (외면하며 종업원에게) 여기 소주 한병 더 주세요.
남자 - 형, 정종...
친구형 K - 소주마셔!
# 2 일주일 뒤, 방배동 그 오뎅바.
남자, 친구들과 친구형 K에게 질타 당하고 있다.
친구 1 - 맨날 우리만 술 사란 법은 없잖아.
친구 2 - 영국가서 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고 영어도 못하고!
친구형 K - 븅따까리야!
# 3 이주일 뒤, 홍대 앞 피시방
남자, 이런저런 구인정보들을 보고 있다.
어느 구인 싸이트에서 괜찮은 항목을 발견하고 전화기를 꺼내든다.
남자 - 여보세요? 구인광고보구 전화드렸는데요.
구인업체 - 아? 네...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남자 - 서른은 조금 넘었고, 마흔은 아직...
구인업체 - 아앗! 이럴수가. 저희는 사장님이 아직 20대라, 서른 넘은 사람은 좀...
남자 - (흔쾌히) 그런 거라면 전 상관없어요.
구인업체 - (더 흔쾌히) 헉! 우린 상관있어요.
# 4 삼주일 뒤, 방배동 오뎅바.
남자, 혼자서 오뎅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남자가 한국에 돌아와서 산 중고 5만원 짜리 완전흑백, 기스만땅, 4화음, 꼬질꼬질 폰이다.
남자 - 여보세요?
친구 2 - 뭐하냐?
남자 - 글쎄, 인생이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
친구 2 - 소주마시고 있구나.
남자 - -_-;;;;;
친구 2 - 혼자야?
남자 - 나와. 같이 한 잔 빨자. 혼자 마시는 술은 쓰구나.
친구 2 - 야근이야. 시간이 없다. 경기가 안 좋아서 눈치껏 야근해야 돼.
남자 - 그럼 일해, 왜 저나질이야?
친구 2 - 알았어, 끊어.
그 때 친구형 K 지나가다 남자를 발견하고 오뎅바에 불쑥 들어온다.
친구형 K - (뒤에서 목을 꺾는 자세를 취한다) 혼자 뭐해?
남자 - 어? 형...
친구형 K - 혼자 소주나 마시고 있고. 짜식.
남자 - 혀엉...
친구형 K - 여기 정종 차가운 것 두 잔 주세요.
남자 - (눈을 잠깐 반짝인다.) 앗 정종이다.
친구형 K -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국에 돌아오니 엿같지?
남자 - (반짝이던 눈을 거두며) 후우, 이만저만 엿같은게 아니에요.
친구형 K - 그러게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왜 돌아왔어?
남자 -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으니까....
친구형 K - 븅쉰.
남자 - (서빙되어 온 정종을 홀짝, 마시며) 아 이거 맛있네요.
친구형 K - 그래도 낯선 나라가서 안 죽고 살아서 돌아온게 어디냐, 인생은 원래가 개떡 같은 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뭔가 할 일을 찾아봐.
남자 - 아니, 형? 그런 훈계조의 말투를?
친구형 K - 내가 얼마나 딴 나라 나가고 싶었는지 알아? 내가 나갔으면 뭔가 해 갖고 돌 아왔겠다. 이 빌어먹을 한국에서 똥깐 같은 회사 다니면서 수직관계성의 사회에
질식해가면서 사는 게 이게 뭐냐.
남자 - 아니, 형. 그런 우울조의 말투를?
친구형 K - 네 나이에 뭔가 시작하려면 힘들겠지만 잘 찾아보면 할 일이 있을거야.
아직 기회는 있어. 만약 기회가 없다면, 다시 나가면 되잖아. 너무 좌절하지
말라구. 인생 뭐있어?
남자 - 네. 형....
# 5 한달 뒤, 홍대 앞 피시방
남자, 여행사 싸이트에서 이런저런 할인항공권들을 검색하다, 졸라 싼 항공권을 발견한다.
남자 - 오오! 이거 싸닷!
(전화기를 꺼내 예약문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한다.)
(침묵)
남자, 아무리 싸도 그 돈조차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어깨가 가늘게 신음하듯 떨린다.
# 6 한달 2일 뒤, 종로 P 어학원
남자, 카운터에서 돈을 지불하고 있다. 지갑속에 있는 십만원을 만지작 거리며 십만원이 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다.
여직원 - 기초 영문법 신청하시는 거에요?
남자 - 네. 얼마에요?
여직원 - 8만 2천원입니다.
남자 - (기뻐한다) 앗싸.
여직원 - 교재는 따로 구입하세요. 12,000원 이에요.
남자 - (약간 덜 기뻐한다) 감솨.
# 7. 그날 저녁, 방배동 오뎅 바.
친구 1 - 바보같은 놈, 영국 갔다와서 또 영어 학원 다니냐?
친구 2 - 외국인 회화반도 아니고 영문법이래며? 푸하하하하.
남자 - (소리친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 시작한다!
친구 1,2 - 시끄러워!
남자,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가슴속에 새롭게 불타는 의지를 확인한다.
새로 시작한다, 라는 멘트가 밀고 온 자신감이 온 몸에 퍼진다.
그러나 순간, 1년 반 동안의 영국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영사된다.
학원도 안가고 일만하고 일한 돈은 이래저래 놀고 먹는데 다 쓰고, 공부하고 싶던
문학은 아예 접근도 못해보고, 2존에서 3존으로 3존에서 6존으로 몰락해가다 귀국을 결심하며 불끈 돌아오던 비행기 속. 맛없던 BA기내식, 개같던 날씨.
생존만을 위해 살 게 아니라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갔던 영국에서 생존에 급급하다 돌아온 쓸쓸한 모습위로 투영되는 안개같은 서늘함.
새롭게 불타던 의지가 그 서늘한 안개에 덮여 녹아내리려는 찰나,
친구 1,2 - 어쨌거나, 뭔가 한다는 게 어디냐! 자, 천재시인! 마시자!
남자 - (술잔을 맞부딪혀 주며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낸다) 마시자!
남자, 몸 속으로 들어가는 술의 쓴 맛이 달콤하게 의식의 상처를 치유하는 느낌에 사로잡히며, 귀국 2달 째에는 이런 모습이 아닐거라고 불끈 다짐한다.
힘든 현실인데 재밌게 잘 쓰셨네요. 코미디의 진수... 기초 영문법으로 기초 다지고 나면 그동안 영국서 쌓으셨던 영어실력이 금새 배로 든든해져서 다가올거예요.음... 정종이나 소주는 말고(술은 써서 싫음) 오뎅은 먹고 싶다...오뎅국에 밥말아서 잘 익은 김치랑 먹고 싶다...스~~읍
그 비싸고 귀한 양주(?)와 오뎅을 그리 자주 드시니 한국 생활 그리 지루 하진 않겠네요^^ 대기는 만성이라 누가 그랬던것 같은디......모든일 잘풀리실 겁니다.. 겨울 남자시니 만으로 따지면 그리 연로 하신 편도 아니신듯^^ ......힘 내세요....(웨스트 페리)
첫댓글 여전하신듯..^^" 잘하실겁니다.
와아, 그렇게 자신을 모르세요? 전 님이 대단히 멋진 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다음 글을 기대할께요. 아자~
포장마차의 음유시인이네욤...울나라...취업에 나이제한은 정말...늙는 것도 서러운데 증말...그래도 힘내십시요.
헉, 우린 상관있어요.-_-;;;한국가셨네요. 한국도 좀 엿먹이겠지만...괜찮을거예요. 그래도 내나라잖아요. 힘내세욧!
힘든결정을 하셨네여. 나름대로 고충도 많았다구 생각이 들어요. 그래두 내나라니깐..아무리 취업문이 힘들다구 해두 잘 극복하시리라 믿어요^^ 방배동에 사세여?? 저두 방배동에 약 10년넘게 살았었는데*^^* 오뎅바라^^ 말만 들어두 참 정겹네여^^ 잘 이겨내시리라 믿어요 홧팅~!!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거죠~!! 홧팅
힘내세요~~ 오뎅바~ 허.. 그거 울동네는 옛날부터 있었는뎅.. 뜨끈한 정종이랑.. 허거.. 먹구싶당.. 흠냐..
힘내세요.
ㅇ ㅏ..정말 열심히 살다가야겠습니다. 전 한국 가면..-_ -;; 휴..친구녀석들 괜히 두려워지네.. 힘내시구요!!!
한국서 인상깊게 본 연극의 장면들이 투영되는 군요...이글..연극으로 만들어도 좋을듯 싶습니다..
ㅇ1ㅇㅑ.. 저두 한국가면 오뎅바가봐야겠네요^^
역시 15번님의 글은 대단해요~~~~~~
기운내세요~ 뜬금없지만 갑자기 술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이..ㅋㅋ 농담이구요~ 담번 글엔.. 펄펄 흐르는 열정을 다시 찾은 얘기로 올려주시길^^
힘든 현실인데 재밌게 잘 쓰셨네요. 코미디의 진수... 기초 영문법으로 기초 다지고 나면 그동안 영국서 쌓으셨던 영어실력이 금새 배로 든든해져서 다가올거예요.음... 정종이나 소주는 말고(술은 써서 싫음) 오뎅은 먹고 싶다...오뎅국에 밥말아서 잘 익은 김치랑 먹고 싶다...스~~읍
힘내세요~!! 상품 강추~!!
와글 정말 잘쓰시네요.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그리구요 힘내세요. 한국이좀 깐깐하죠-.-? 화이팅^.^**
그 비싸고 귀한 양주(?)와 오뎅을 그리 자주 드시니 한국 생활 그리 지루 하진 않겠네요^^ 대기는 만성이라 누가 그랬던것 같은디......모든일 잘풀리실 겁니다.. 겨울 남자시니 만으로 따지면 그리 연로 하신 편도 아니신듯^^ ......힘 내세요....(웨스트 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