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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外
안팎(안/밖)과 관련된 빠알리어
[ajjhatta-ajjhattika-ajjhattaṃ/bahi-bāhira-bahiddhā]
어떠한 언어체계도 문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언어습관은 있을 수 없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언어를 습득함에 어떤 규칙성을 찾으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법공부를 합니다.
물론 많은 예외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와 같이 언어습관이 그렇기 때문이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말로 시간을 표현하면 예를 들어 11:11를 어떻게 읽으시겠습니까?
1. 열한시 열한분, 2. 십일시 십일분. 3. 열한시 십일분. 4. 십일시 열한분.
일상적으로는 3번이 적절하고 軍에서는 2번으로도 쓸 수 있지만, 1번이나 4번으로는 읽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질문하면 그냥 습관입니다.
우리말에는 뚜렷하지 않지만 빠알리어가 속하는 인도-유로피언 언어체계에는
[性/數/格] 혹은 [稱/數/時/態/法]에 따라서 일정한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변하는 것을 [변사]라고 한다면 변화하지 않는 [불변사]도 있다고 합니다.
흔히들 [불변사]를 <부사>로 설명하지만 <부사>를 포함하여
변하지 않은 단어를 모두 [불변사]라고 할 수 있고
실제 빠알리 단어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같은 단어인데 <접두사> 혹은 <형용사>처럼 쓰이거나
[변사]가 아닌 [불변사]가 [처격]처럼 쓰일 수도 있지 싶습니다.
또한 <부사>로 이해하더라도 모두 [방향]을 나타내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변사[ajjhattika/bāhira]와 짝이 되는 불변사[ajjhattaṃ/bahiddhā]의 용례를 보면
<안으로/밖으로>라는 방향의 의미로 읽으면 적당한 경우와
<안에/밖에>라는 장소의 의미 즉 마치 형용사처럼 <안의/밖의>로 읽으면 적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즉 [ajjhattaṃ/bahiddhā]를 일괄적으로 <안으로/밖으로>라고 읽으면 오히려 이상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자료에도 나오지만
[imasmiñca saviññāṇake kāye bahiddhā ca sabbanimittesu]
여기서의 [bahiddhā]를 <안으로/밖으로>로 읽으면 이상하고
오히려 <밖의>라는 의미의 [형용사] 혹은 <밖에 (있는)> [장소 부사]로 읽으면 적당합니다.
또 다른 예는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無名에 덮이고 愛에 묶여서 이와 같이 이 身이 집기集起한 것이다.
바로 이 [집기한] 身과 밖으로 名色이라는 쌍이 있으며,
이 쌍을 緣하여 觸이 있고 六處들이 있으니,
어리석은 자는 六處들이나 六處들 중 일부에 접촉(觸)되어 樂・苦를 경험한다.
“avijjānīvaraṇassa, bhikkhave, bāl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
iti ayañceva kāyo bahiddhā ca nāmarūpaṃ, itthetaṃ dvayaṃ,
dvayaṃ paṭicca phasso saḷevāyatanāni {saḷāyatanāni (ka.)},
yehi phuṭṭho bālo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ayati etesaṃ vā aññatarena”.]
<이 [집기한] 身과 밖으로 名色>라고 읽을 수도 있지만
[이 [집기한] 身이 있고 그리고 밖에는 名色이 있다]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떠한 이치에 의해서 다섯 가지 장애가 열 가지 장애가 되는 이치가 있는가?
비구들이여, 내적인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는 무엇이든지 장애이고
외적인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도 무엇이든지 장애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의 장애라는
이러한 개요로 표현된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두 가지가 된다.
Yadapi, bhikkhave, ajjhattaṃ kāmacchando tadapi nīvaraṇaṃ,
yadapi bahiddhā kāmacchando tadapi nīvaraṇaṃ.
‘Kāmacchandanīvaraṇa’nti iti hidaṃ uddesaṃ gacchati.
Tadamināpetaṃ pariyāyena dvayaṃ hoti.]
[ajjhattaṃ kāmacchando]와 [bahiddhā kāmacchando]에서
[ajjhattaṃ/bahiddhā]은 [kāmacchando]를 수식하는 형용사처럼 쓰였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에 대한/을 대상으로 하는> [kāmacchando]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bahiddhā kāmacchando]은 5욕락 혹은 6경들에 대한 慾欲이라면
[ajjhattaṃ kāmacchando]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서 <dvaya>은 [두 가지]라는 의미이지 '겹친다'라는 의미의 [두 겹]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같은 경문에 이어서 나오는
[Yadapi, bhikkhave, uddhaccaṃ tadapi nīvaraṇaṃ, yadapi kukkuccaṃ tadapi nīvaraṇaṃ.
‘Uddhaccakukkuccanīvaraṇa’nti iti hidaṃ uddesaṃ gacchati.
Tadamināpetaṃ pariyāyena dvayaṃ hoti.]
[Uddhaccakukkucca]가 [두 가지]이지 [두 겹]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內外에 대해서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곳은 담마상가니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ma3-20-a/b/c]
20. (Ka) ajjhattā dhammā.
(Kha) bahiddhā dhammā.
(Ga) ajjhattabahiddhā dhammā.
담마상가니 1권 176쪽
20. Ajjhattattike
121) "안의 세 개 조(ma3-20)에서,
‘evaṃ pavattamānā mayaṃ attā’ti gahaṇaṃ,
'우리 자신은 이와 같이 존재한다.'라고 취하거나
‘gamissāmā’ti iminā viya adhippāyena attānaṃ adhikāraṃ katvā pavattāti ajjhattā.
'우리는 갈 것이다.'라는 이러한 취지로 자신들의 상황을 만들면서 일어나는 것이
'안의 법들(ajjhattā)이다.
‘Ajjhatta’-saddo panāyaṃ
여기서 안[內, ]이라는 단어는
gocarajjhatte ① 영역으로서의 안()과
niyakajjhatte ② 자기 것으로서의 안()과
ajjhattajjhatte ③ 안에 있는 것으로서의 안()과
visayajjhatteti ④ 대상으로서의 안()이라는
catūsu atthesu dissati. 네 가지 의미가 있다. (DhsA.46)]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 넷을 경의 예문을 들어서 설명한 뒤
‘‘Tenānanda, bhikkhunā tasmiṃyeva purimasmiṃ
samādhinimitte ajjhattameva cittaṃ saṇṭhapetabbaṃ’’(ma. ni. 3.188),
‘‘ajjhattarato samāhito’’ti ādīsu (dha. pa. 362) hi ayaṃ gocarajjhatte dissati.
‘‘Ajjhattaṃ sampasādanaṃ’’ (dī. ni. 1.228; dha. sa. 161),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ī’’ti ādīsu (dī. ni. 2.373) niyakajjhatte.
‘‘Cha ajjhattikāni āyatanānī’’ti ādīsu (ma. ni. 3.304) ajjhattajjhatte.
‘‘Ayaṃ kho panānanda, vihāro tathāgatena abhisambuddho
yadidaṃ sabbanimittānaṃ amanasikārā
ajjhattaṃ suññataṃ upasampajja viharatī’’ti ādīsu (ma. ni. 3.187) visayajjhatte; issariyaṭṭhāneti attho.
Phalasamāpatti hi buddhānaṃ issariyaṭṭhānaṃ nāma.
idha pana niyakajjhatte adhippeto.
여기서는 두 번째인 자기 것으로서의 안()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Ibid)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Tasmā attano santāne pavattā pāṭipuggalikā dhammā ajjhattā ti veditabbā.
"그러므로 자신의 흐름 안에서 전개되는 개개인에 속하는 법들이
'안의 법들'이라고 알아야 한다.
Tato bāhirabhūtā pana indriyabaddhā vā anindriyabaddhā vā bahiddhā nāma.
Tatiyapadaṃ tadubhayavasena vuttaṃ.
그 밖의 것은, 기능에 묶여있건 기능에 묶여있지 않건 '밖의 법들()'이다.
(본서 제2권 §1435의 주해 참조)
세 번째 구문은 이 두 가지를 통해서 말씀하셨다."(DhsA. 46)
담마상가니 2권 424쪽
1435. Anindriyabaddharūpañca nibbānañca ṭhapetvā,
sabbe dhammā siyā ajjhattā, siyā bahiddhā, siyā ajjhattabahiddhā.
Anindriyabaddharūpañca nibbānañca bahiddhā.
1435. 기능에 묶여있지 않은 물질374)과 열반을 제외하고,
모든 법들은 '안의 것(ma3-20-a)일 수 있고, 밖의 것(ma3-20-b)일 수 있고,
'안과 밖의 것'(ma3-20-c)일 수 있다.
기능에 묶여있지 않는 물질과 열반은 밖의 것이다. 375)
374) [맛지마 니까야 복주서]는 "기능에 묶여있는(indriya-baddha)'이란 것은
눈 등의 기능에 묶여있는 것을 말한다." (MAT.ii.393)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능에 묶여 있지 않는 물질(anindriyabaddha-rūpa)'이란
눈·귀·코·혀·몸의 기능을 하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1435. Ajjhattattike anindriyabaddharūpañca nibbānañca bahiddhāti
375) "기능에 묶여있지 않는 물질과 열반은 밖의 것이다
(anindriyabaddharūpañca nibbānañca bahiddhā)'라고 하였다.
idaṃ yathā indriyabaddhaṃ parapuggalasantāne bahiddhāti vuccamānampi
tassa attano santānapariyāpannattā niyakajjhattaṃ hoti,
기능에 묶여있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상속에 있으면 밖의 것(bahiddha)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의 흐름(상속)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자기 것으로서의 안(niyakajjhatta)이 된다.
evaṃ na kenaci pariyāyena ajjhattaṃ hotīti
이와 같이 [기능에 묶여있지 않는 물질과 열반은]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안의 것(ajjhatta)이 아니다.
niyakajjhattapariyāyassa abhāvena bahiddhāti vuttaṃ,
na niyakajjhattamattassa asambhavato.
이처럼 자기 것으로서의 안에 포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밖의 것이라고 하였나니
[이 둘은] 자기 것으로서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Niyakajjhattamattassa pana asambhavamattaṃ sandhāya ajjhattārammaṇattike bahiddhārammaṇatā vuttā.
안의 대상의 세 개 조(ma3-21)에서는 오직 자기 것으로서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만 때문에
밖의 대상을 가진 것이 됨을 설하였다." (DhaA. 423)
[bahis & bahir; the s(ḥ) is restored in doubling of cons.in compn like bahig-gata,
in bahiddhā and in lengthening of i as bahī] outside:1.(adv.) 2.(prep.)
bahiddhā,(adv.) [fr.bahi,cp.Vedic bahirdhā,formation in °dhā,
like ekadhā,sattadhā etc.of numerals] outside (adv & prep)
opp.ajjhatta-rūpa bāhirāni āyatanāni are distinguished fr.ajjhattikāni āyatanāni
*조사 'dhā'는 몇몇 형용사 뒤에 첨부되어 유사한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bahu(a. much, many) > bahudhā(adv. in many ways)
aneka(a. not one) > anekadhā(adv. in more than one way)
bāhira:[adj.] external; outer; foreign.(nt.)outside.(opp.abbhantara inside)
bāhirā:From outside
antara° inside & outside
ajjhatta:a. [adhi-atta,Sk. adhyātman] 自的,内的,個人的. personal; connected with the self.
ajjhattika,(adj.) [ajjhatta + ika],personal,inward opp. bāhira outward
ajjhattaṃ:[adv.] inwardly.
검색기준 [bahi], [bāhir], [ajjhatt]
참고자료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타는 [bahi-]
ajjhattaṃ 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안으로 색깔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ajjhattasaṃyojanañca, āvuso, puggalaṃ desessāmi bahiddhāsaṃyojanañca.
taṃ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ī”ti.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uṃ. āyasmā sāriputto etadavoca --
“도반들이여,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260)에 대해서 설하겠습니다.
잘 듣고 마음에 잡도리하십시오. 이제 설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260) “욕계 존재를 안이라 하고, 색계 존재와 무색계 존재를 밖이라 한다. 안이라 불리는 욕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안의 족쇄(ajjhatta-saṃyojana)'이다. 밖이라 불리는 색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밖의 족쇄(bahiddhā-saṃyojana)'이다. 혹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orambhāgiya)의 족쇄[下分結]가 안의 족쇄이고 다섯 가지 높은 단계(uddhambhāgiya)의 족쇄[上分結]가 밖의 족쇄이다. 여기서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낮은 것(oraṃ)이란 욕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낮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낮은 단계(orambhāgiya)이다. 높은 것(uddhaṃ)이란 색계와 무색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높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높은 단계 (uddhambhāgiya)라 한다.”(AA.ii.130)
열 가지 족쇄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족쇄 경」(A4:131) §1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katamo cāvuso, ajjhattasaṃyojano puggalo?
2.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idhāvuso,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ayaṃ vuccati, āvuso, ajjhattasaṃyojano puggal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261)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옵니다.
그는 이러한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안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261) 본경에 나타나는 계목의 단속에 관한 용어들은 본서 제2권 「계 경」(A4:12)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katamo c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3.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idhāvuso,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aññataraṃ santaṃ cetovimuttiṃ upasampajja viharati.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ayaṃ vuccat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가운데 하나262)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262) “여덟 가지 증득[等至, samāpatti] 가운데 하나인 제4선의 증득을 말한다. 이것은 [이 禪의 구성요소들과] 반대가 되는 오염원(paccanīka-kilesa)들을 고요하게 하였기 때문에 평화롭다(santa)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오염원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했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이라고 불린다.”(AA.ii.134)
“puna caparaṃ, āvuso, bhikkhu sīlavā hoti ... pe ...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kām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so bhav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so taṇhākkhayāya paṭipanno hoti.
so lobhakkhayāya paṭipanno hoti.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다시 어떤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존재를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갈애를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탐욕을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ayaṃ vuccat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n”ti.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라 불리는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siyā nu kho, bhante, bhikkhuno tathārūpo samādhipaṭilābho yathā
imasmiñca saviññāṇake kāye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āssu,
bahiddhā ca sabbanimittesu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āssu;
y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upasampajja viharato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a honti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upasampajja vihareyyā”ti?
“세존이시여, 비구가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삼매를 얻을 수 있으며,
'나'라는 생각과 '내 것' 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에 들어 머물 수 있습니까?”
imasmiñca saviññāṇake kāye
bahiddhā ca sabbanimittesu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pagataṃ mānasaṃ hoti vidhāsamatikkantaṃ santaṃ suvimuttaṃ.
[우리의] 마음은 [mānasaṃ]
①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과
② 밖의 모든 표상들에 대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을 제거하게 되고,
여러 가지 차별된 생각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되고 잘 해탈 su[vimutta’’n]하게 됩니까?”]
tasmiṃyeva viraje khette, vipulā hoti dakkhiṇā.
“bālā ca avijānantā, dummedhā assutāvino.
bahiddhā denti dānāni, na hi sante upāsare.
오직 때가 없는 분, 진정한 들판인
그분에게 보시한 것은 풍성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통찰지가 없고 듣지 못하여
밖의 다른 교단에 보시를 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assaddho hoti; dussīlo hoti; kotūhalamaṅgaliko hoti, maṅgalaṃ pacceti no kammaṃ;
ito ca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tatt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upāsako upāsakacaṇḍālo ca hoti
upāsakamalañca upāsakapatikuṭṭho ca.
믿음이 없고, 계행이 나쁘고, 예언을 하고,331) 요행을 믿고 업을 믿지 않으며,
외부에서332) 보시받을 만한 사람을 찾아333) 거기에 먼저 [보시 등을] 한다. 334)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자 신도는 천한 신도요.
때 묻은 신도요. 저열한 신도다.”
332) “'외부에서(ito ca bahiddhā)'란 이 교단(sāsana)의 밖에서, [즉 외도들 가운데서]란 뜻이다.” (Ibid)
na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idha ca pubbakāraṃ karoti.
외부에서 보시받을 만한 사람을 찾지 않고 이 [교법에] 먼저 [보시 등을] 한다.
idha:Here; hither; in this world
nāhaṃ, brāhmaṇa dhammika, ito bahiddhā evarūpiṃ khantiṃ vadāmi, yathāmaṃ sabrahmacārīsu.
tasmātiha, brāhmaṇa dhammika, evaṃ sikkhitabbaṃ —
‘na no samasabrahmacārīsu cittāni paduṭṭhāni bhavissantī’”ti.
evañhi te, brāhmaṇa dhammika, sikkhitabbanti.
담미까 바라문이여, 다른 외도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동료 수행자들을
[욕하고 비난하여] 자신의 공덕을 파버리는 것처럼
그만큼의 공덕을 파버린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ituṃ.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외도들 가운데서 보시받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tattha ca pubbakāraṃ karoti.
외도들 가운데 보시 받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거기에 먼저 [보시 등을] 한다.
na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idha ca pubbakāraṃ karoti.
“katamo ca, bhikkhave, dukkhassa vipāko?
idha, bhikkhave, ekacco yena dukk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yena vā pana dukkhena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bahiddhā pariyeṭṭhiṃ āpajjati —
‘ko ekapadaṃ dvipadaṃ jānāti imassa dukkhassa nirodhāyā’ti?
sammohavepakkaṃ vāhaṃ, bhikkhave, dukkhaṃ vadāmi pariyeṭṭhivepakkaṃ vā.
ayaṃ vuccati, bhikkhave, dukkhassa vipāko.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과보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얼이 빠진 어떤 사람은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 치며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는 이런저런 괴로움에 사로잡히고 얼이 빠져
'누가 이 괴로움을 소멸하는 한 구절로 된 주문이나 두 구절로 된 주문209)을 아는 자는 없는가?'
라고 밖에서 애써 구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은 어리석음이라는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요,
애써 구하는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과보라 한다.
aññena vā aññaṃ paṭicarissati, bahiddhā kathaṃ apanāmessati,
kopañca dosañca appaccayañca pātukarissati,
tuṇhībhūto maṅkubhūto pattakkhandho adhomukho
pajjhāyanto appaṭibhāno nisīdissati, seyyathāpi sarabho paribbājako.
그는 다른 것을 질문하고 지금의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꺼내어 이전의 얘기를 전환하거나,
혹은 분노와 성냄과 불만족을 드러내거나,
혹은 말이 없고 당혹하고 어깨가 축 처지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기가 꺾여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을 것이다.
idha, bhikkhave,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ā kāci vedan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ā dūre santike vā, sabbaṃ vedanaṃ —
‘netaṃ mama, nesohamasmsm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ā kāci saññ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ā dūre santike vā, sabbaṃ saññ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e keci saṅkhār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e dūre santike vā, sabbe saṅkhāre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yaṃ kiñci viññāṇ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viññāṇaṃ —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passa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dūre pātī ho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ye ca rūpe pamāṇiṃsu , ye ca ghosena anvagū.
chandarāgavasūpetā, nābhijānanti te janā .
“ajjhattañca na jānāti, bahiddhā ca na passati.
어떤 이는 외모로 [덕을] 재고
어떤 이는 명성에 따라가나니
욕심과 탐욕에 가려 상대를 알지 못하며,
안도 알지 못하고 밖도 보지 못하네.
samantāvaraṇo bālo, sa ve ghosena vuyhati.
“ajjhattañca na jānāti, bahiddhā ca vipassati.
온통 덮개에 싸인 어리석은 자 명성에 따라 좌우되리니
안은 알지 못하고 밖만 보누나.
bahiddhā phaladassāvī, sopi ghosena vuyhati.
밖의 결실만을 보는 자도 또한 명성을 따르네.
“ajjhattañca pajānāti, bahiddhā ca vipassati.
vinīvaraṇadassāvī, na so ghosena vuyhatī”ti.
덮개(장애)를 걷고 보는 자만이
안도 알고 밖도 보아서
명성에 따라 좌우되지 않으리.”
“taṃ kiṃ maññasi, sāḷha, bhabbo nu kho so puriso nadiṃ taritun”ti? “no hetaṃ, bhante”.
“taṃ kissa hetu”? “asu hi, bhante, sālalaṭṭhi bahiddhā suparikammakatā anto avisuddhā.
tassetaṃ pāṭikaṅkhaṃ — sālalaṭṭhi saṃsīdissati, puriso anayabyasanaṃ āpajjissatī”ti.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하여. 그 사람은 [이런 야자나무로] 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
“건널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4.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세존이시여, 참으로 이 야자나무 줄기는 외부는 아주 잘 다듬어졌지만
내부는 깨끗하게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자나무 줄기는 가라앉을 것이고 그 사람은 재앙을 자초할 것이다.'라고 기대됩니다.”
atha kho icchānaṅgalakā brāhmaṇagahapatikā tassā rattiyā accayena pahūtaṃ
khādanīyaṃ bhojanīyaṃ ādāya yena icchānaṅgalavanasaṇḍo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aṃsu uccāsaddamahāsaddā.
그때 잇차낭갈라의 바라문 장자들은 그 밤이 지나자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여
잇차낭갈라의 깊은 숲 속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문밖에 서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atha kho āyasmā mahāmoggallāno taṃ puggalaṃ bāhāyaṃ gahetvā
bahidvārakoṭṭhakā nikkhāmetvā sūcighaṭikaṃ da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러자 목갈라나 존자는 그 사람의 팔을 붙잡아 바깥문의 현관으로 끌어낸 뒤
빗장을 잠그고는 세존께 다가갔다.
atha kho mahāpajāpatī gotamī sūnehi pādehi rajokiṇṇena gattena
dukkhī dummanā assumukhī rudamānā bahidvārakoṭṭhake aṭṭhāsi.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발이 퉁퉁 부어올랐고, 사지는 온통먼지투성이였으며,
슬픔과 비탄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면서 문밖에 서있었다.
‘mā me guyhamantā bahiddhā sambhedaṃ agamaṃsū’ti.
evaṃ kho, bhikkhave, mahācoro ekacārī hoti.
'나의 비밀스런 일이 [알려져] 밖에서 분쟁이 일지 않기를'이라고 생각해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대도는 혼자 다닌다.
rañño antepure abbhantarā guyhamantā bahiddhā sambhedaṃ gacchanti.
왕의 내전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간다.
evarūpaṃ ce tumhe, bhikkhave, vivādamūl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samanupasseyyātha.
tatra tumhe, bhikkhave, tasseva pāpakassa vivādamūlassa pahānāya vāyameyyātha.
evarūpaṃ ce tumhe, bhikkhave, vivādamūl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na samanupasseyyātha,
tatra tumhe, bhikkhave, tasseva pāpakassa vivādamūlassa āyatiṃ anavassavāya paṭipajjeyyātha.
evametassa pāpakassa vivādamūlassa pahānaṃ hoti.
evametassa pāpakassa vivādamūlassa āyatiṃ anavassavo hoti.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보게 되면
그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런 분쟁의 뿌리를 안에서든 밖에서는 보지 않으면
거기서 그대들은 그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가 미래에 싹트지 못하도록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이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는 제거된다.
이와 같이하여 이런 사악한 분쟁의 뿌리는 미래에 싹트지 못한다.
bhabbo ajjhattabahiddh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itun”ti.
…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물 수 있다.
ajjhattaṃ saṃkhittaṃ vā cittaṃ ‘ajjhattaṃ me saṃ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안으로 마음이 위축되어 있으면 '나의 마음은 안으로 위축되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bahiddhā vikkhittaṃ vā cittaṃ ‘bahiddhā me vik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밖으로 마음이 산란해져 있으면
'나의 마음은 밖으로 산란해져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343)
343) “'안으로 위축되어 있다(ajjhattaṃ saṃkhittaṃ)'는 것은 해태와 혼침(thina-middha)에 빠져있다는 뜻이고, '밖으로 산란해져 있다.(bahiddha vikkhittaṃ)'는 것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kāma-guṇa)에 대해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AA.iv.25)
“itthī, bhikkhave, ajjhattaṃ itthindriyaṃ manasi karoti —
itthikuttaṃ itthākappaṃ itthividhaṃ itthicchandaṃ itthissaraṃ itthālaṅkāraṃ.
sā tattha rajjati tatrābhiramati.
2. “비구들이여, 여기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한다.375)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375) “'여자의 기능(itthindriya)'이란 자신에게 있는 여자의 상태(여자됨, itthi-bhāva)를 말한다. '여자의 행위(itthi-kutta)'란 여자의 행실(itthikiriya)을 말하고, '여자의 외관(itthākappa)'이란 복장 등 외관을 뜻하고, ‘여자의 의욕(itthi-chanda)'이란 여자의 성향, 의욕을 뜻하고, '여자의 장식(itthālaṅkāra)'이란 치장하는 장신구를 뜻한다.”(AA.iv.32)
sā tattha rattā tatrābhiratā bahiddhā purisindriyaṃ manasi karoti —
purisakuttaṃ purisākappaṃ purisavidhaṃ purisacchandaṃ purisassaraṃ purisālaṅkāraṃ.
sā tattha rajjati tatrābhiramati.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남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sā tattha rattā tatrābhiratā bahiddhā saṃyogaṃ ākaṅkhati.
yañcassā saṃyogapaccayā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tañca ākaṅkhati.
itthatte, bhikkhave, abhiratā sattā purisesu saṃyogaṃ gatā.
evaṃ kho, bhikkhave, itthī itthattaṃ nātivattati.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구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구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남자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puriso, bhikkhave, ajjhattaṃ purisindriyaṃ manasi karoti —
purisakuttaṃ purisākappaṃ purisavidhaṃ purisacchandaṃ purisassaraṃ purisālaṅkāraṃ.
so tattha rajjati tatrābhiramati.
so tattha ratto tatrābhirato bahiddhā itthindriyaṃ manasi karoti —
itthikuttaṃ itthākappaṃ itthividhaṃ itthicchandaṃ itthissaraṃ itthālaṅkāraṃ.
so tattha rajjati tatrābhiramati.
so tattha ratto tatrābhirato bahiddhā saṃyogaṃ ākaṅkhati.
yañcassa saṃyogapaccayā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tañca ākaṅkhati.
purisatte, bhikkhave, abhiratā sattā itthīsu saṃyogaṃ gatā.
evaṃ kho, bhikkhave, puriso purisattaṃ nātivattati.
evaṃ kho, bhikkhave, saṃyogo hoti.
3. “비구들이여, 여기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여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한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고 그것을 기뻐하여, 밖으로 속박을 갈구한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는 갈구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고 집착하여 여자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 묶인다.”
“kathañca, bhikkhave, visaṃyogo hoti?
itthī, bhikkhave, ajjhattaṃ itthindriyaṃ na manasi karoti —
itthikuttaṃ itthākappaṃ itthividhaṃ itthicchandaṃ itthissaraṃ itthālaṅkāraṃ.
sā tattha na rajjati, sā tatra nābhiramati.
sā tattha arattā tatra anabhiratā bahiddhā purisindriyaṃ na manasi karoti —
purisakuttaṃ purisākappaṃ purisavidhaṃ purisacchandaṃ purisassaraṃ purisālaṅkāraṃ.
sā tattha na rajjati, tatra nābhiramati.
sā tattha arattā tatra anabhiratā bahiddhā saṃyogaṃ nākaṅkhati.
yañcassā saṃyogapaccayā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tañca nākaṅkhati.
itthatte, bhikkhave, anabhiratā sattā purisesu visaṃyogaṃ gatā.
evaṃ kho, bhikkhave, itthī itthattaṃ ativattati.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여자는 안으로 여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남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녀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남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여자는 여자의 성을 넘어선다.”
“puriso, bhikkhave, ajjhattaṃ purisindriyaṃ na manasi karoti —
purisakuttaṃ purisākappaṃ purisavidhaṃ purisacchandaṃ purisassaraṃ purisālaṅkāraṃ.
so tattha na rajjati, so tatra nābhiramati.
so tattha aratto tatra anabhirato bahiddhā itthindriyaṃ na manasi karoti —
itthikuttaṃ itthākappaṃ itthividhaṃ itthicchandaṃ itthissaraṃ itthālaṅkāraṃ.
so tattha na rajjati, tatra nābhiramati.
so tattha aratto tatra anabhirato bahiddhā saṃyogaṃ nākaṅkhati.
yañcassa saṃyogapaccayā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tañca nākaṅkhati.
purisatte, bhikkhave, anabhiratā sattā itthīsu visaṃyogaṃ gatā.
evaṃ kho, bhikkhave, puriso purisattaṃ ativattati.
evaṃ kho, bhikkhave, visaṃyogo hoti.
ayaṃ kho, bhikkhave, saṃyogo visaṃyogo dhammapariyāyo”ti.
5. “비구들이여, 여기 남자는 안으로 남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남자의 행위와
남자의 외관과 남자의 자만과 남자의 의욕과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여자의 기능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여자의 행위와 여자의 외관과 여자의 자만과 여자의 의욕과 여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장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매혹되지 않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아, 밖으로 속박을 갈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속박으로 인해 생긴 행복과 기쁨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그는 갈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남자의 성을 기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여자의 속박에 묶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남자는 남자의 성을 넘어선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속박에서 벗어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속박과 속박에서 벗어남에 관한 법문이다.”
“no ce te evaṃ viharato taṃ middhaṃ pahīyetha,
tato tvaṃ, moggallāna, pacchāpuresaññī caṅkamaṃ adhiṭṭhaheyyāsi
antogatehi indriyehi abahigatena mānasena.
ṭhānaṃ kho panetaṃ vijjati yaṃ te evaṃ viharato taṃ middhaṃ pahīyetha.
8. “목갈라나여,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머물러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대는 감각기능들을 안으로 돌이켜 마음이 밖으로 향하지 않도록 한 채,
앞과 뒤를 똑바로 인식하면서 경행에 마음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대가 그렇게 머물 때 혼침이 제거될 수도 있다.”
tamenaṃ evaṃ jānanti —
‘samaṇadūsīvāyaṃ samaṇapalāpo samaṇakāraṇḍavo’ti .
tamenaṃ iti viditvā bahiddhā nāsenti. taṃ kissa hetu? mā aññe bhaddake bhikkhū dūsesī”ti!
이렇게 알면 그를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