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 주일설교 중에서]
지난주일 새벽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보도를 보면서,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이 가지게 될 고통과 상실감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것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저는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십여년 동안을 어머니가 큰 집에 계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기르던 강아지가 죽은지 3년이 지난 지금도 현관문을 열면 뛰어나와서 꼬리를 칠 것 같기도 한데. 졸지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이야 어떻겠습니까?
대체 할로윈데이가 무엇이길래 할로윈데이도 아닌 날에 그런 참사가 일어날 정도로 열광을 하는가?
할로윈데이의 기원은 켈트족의 Samhain축제와 천주교의 성인 대축일의 두 가지로 보지만, 그 두 가지 기원은 연결된 것입니다.
기원전 700년경에 알프스 일대에 살던 켈트족의 설날 - 한 해의 첫날은 11월 1일입니다. 이날에 저승문이 열려서 죽은 자의 영혼과 악마들이 이승으로 올라온다고 켈트족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악령과 악마들이 올라와서 사람들을 해치지 말라고 10월 31일에 미리 제사를 지냈는데, 그것을 Samhain 축제라고 합니다. 그날에는 악령과 악마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고 다녔습니다. 호박에 구멍을 뚫어서 촛불을 켜놓는 것은 악마들에게 겁을 줘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켈트족이 기원전 500년경부터 아일랜드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기원이고, 두 번째 기원은 천주교의 성인 대축일입니다.
천주교에서는 5월13일을 성인 대축일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천주교가 아일랜드에 전파된 후 835년경에 교황 그레고리오 4세가 5월 13일이었던 천주교의 성인 대축일을 아일랜드의 삼하인 축제일인 11월1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즉 10월 31일에 축제를 열게 했습니다. 성인 대축일을 영어로 All Hallows Day라고 하는데, 할로윈데이라는 말은 켈트족의 Samhain 축제가 아니라 천주교의 All Hallows Day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일랜드 켈트족의 축제인 삼하인 축제를 천주교가 받아들여서 할로윈데이로 만든 것입니다. 문제는 귀신을 달래는 삼하인 축제를 천주교식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이름만 할로윈데이로 했을 뿐 그 내용인 귀신을 달래는 제삿날은 그대로 놔둔 것입니다. 오히려 귀신을 달래는 축제를 기독교 정통 행사인 것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인들이 대규모로 미국에 이민하면서 할로윈데이가 미국 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분장하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과 과자를 얻어가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신앙적인 면을 떠나서,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할로윈데이가 정통 할로윈데이인가 하는 것을 살펴봅니다.
우리나라의 할로윈데이를 말하기 전에 먼저 밸런타인데이부터 알아보겠습니다.
3세기 로마에서는 젊은 남녀가 결혼하려면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성 발렌타인이 황제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다가 순교했습니다. 그 후 496년에 교황 겔라시우스 1세가 2월14일을 성 발렌타인 축일로 정해서 지키기 시작했고, 서양에서는 이날을 밸런타인데이라고 해서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1936년 2월 12일에 일본의 모조로프 제과라는 과자 회사가 ‘당신의 발렌타인에게 초콜릿 선물을’이라는 영어 광고를 낸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일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일본 제과 회사의 장삿속에 놀아나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변모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에 과자 회사가 장삿속으로 이것을 도입한 것입니다.
2018년에 벨기에의 세계적인 초콜릿회사인 고디바의 일본회사는 밸런타인데이에 의리 초콜릿을 없애자는 광고를 했습니다. 의리 초콜릿이란 일본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여성 사원이 남성 사원에게 의무적으로 초콜릿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의리 초콜릿으로 판매되는 양이 엄청난데도 초콜릿 회사가 그런 초콜릿을 주지 말자고 앞장서서 광고한 것은 그런 행위들이 밸런타인데이의 본뜻을 너무 훼손하고 있으며 의리 초콜릿이 가져오는 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밸런타인데이가 이렇게 일본으로 들어가서 전혀 다른 풍습으로 바뀐 것을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할로윈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할로윈데이는 악마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입니다. 그날은 집에만 있거나, 외출하려면 무서운 모습으로 분장을 해서 악마들이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게 했던 것인데, 일본에서 이것을 수입해서는 자기들 나름대로 코스프레 – 여러 캐릭터로 변장하는 놀이 즉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것만 받아들여서 변형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인들과 장사꾼들에게 놀아나서 정통의 밸런타인데이나 할로윈데이가 아닌 일본산 밸런타인데이, 일본산 할로윈데이를 수입한 것입니다.
어쨌든 할로윈데이는 귀신을 달랜다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반기독교적인 행사를 천주교가 받아들인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행사입니다.
왜 젊은이들은 할로윈데이를 무슨 축제로 알고 길거리로 뛰쳐나오는가?
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 받은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개념 없는 유치원 운영자나 교사들이 할로윈데이의 본뜻은 모르고 일본 것을 흉내 내서 행사로 치른 것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 그런 행사에 비싼 의상을 사 입혀서 참여시키지 않으면 자기 아이들이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을 내는 엄마들, 거기에다 장사꾼들의 장삿속 행사, 이런 것이 지금의 할로윈데이를 축제로 알고 날뛰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선교원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수리수리 마수리’라고 하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수리수리마하수리 ...’라는 것은 불교에서 불경을 외우기 전에 입으로 지은 업보를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한 입으로 불경을 외워야 한다는 淨口業眞言이라는 주문입니다. 마술과는 상관없는 불교의 주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더니 그 교사가 놀라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비판의식도 지식도 개념도 없는 어린이 상대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뭔가를 달라고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월 대보름에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제웅을 달라고 하면 짚으로 만들어서 뱃속에 돈을 넣은 인형을 줍니다. 그것을 받아서 돈은 꺼내고 짚인형은 모아서 마을 가운데 광장이나 밭 가운데에서 쥐불을 놓고 태웁니다.
제웅이라는 것은 신라 민요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이 변한 이름입니다.
“셔블 ᄇᆞᆯ긔ᄃᆞ래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아 자리보곤 가ᄅᆞ리 네히여라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대 내해다마ᄅᆞᆫ 아사ᄂᆞᆯ 엇디ᄒᆞ릿고“
셔블은 서울이라는 말입니다. 당시의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셔벌 – 셔블 – 서울로 변했습니다.
처용이라는 사람이 정월 대보름 달밝은 밤에 서라벌에서 밤새워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자려고 하는데, 부인이 누워있는 이불 밑으로 발이 네 개가 보였습니다. 둘은 부인의 발이지만 둘은 누구 발인가? 원래 내 발 두 개가 거기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여기 있으니 아! 이를 어찌하나? 그 발 두 개는 천연두를 퍼뜨리는 역신이 처용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처용의 부인을 속여서 동침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용은 밖으로 나와 아픈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습니다.
그 후로부터 처용-제웅을 달래기 위해서 생긴 풍습이 제웅받기입니다. 사실은 처용을 도와서 역신을 쫓아내기 위한 풍습인데,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라진 풍습입니다.
정월대보름에는 이외에도
아침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서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내가 그해 여름에 겪을 더위가 그 사람에게 떠넘겨진다는 더위팔기,
술을 한 잔 마시면 한 해 동안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 마시기,
잣이나 호두 같은 견과를 깨물어서 깨뜨려 먹으면 그 한 해에 부스럼이 없다는 부럼 깨물기,
예전에는 비타민B가 부족해서 각기병에 걸린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겠지만, 개천이나 강에 걸쳐있는 다리를 밟고 건너면 각기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다리밟기 등등
그 외에도 지금은 대부분 잊혀지고 사라져버린 수십 가지나 되는 세시 풍습이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을 하거나 일본 여행에 관한 동영상을 보면 일본인들이 전통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을마다 수백 년씩 이어져 오는 마쓰리라고 하는 축제가 있습니다. 일본 사가현 사가시에 갔더니 시장 한복판에 마쓰리용 가마가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쓰는 가마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한복판에 놓아두어서 누구나 자기 마을의 전통 행사를 생각하게 하고, 다음 해의 마쓰리를 기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일본인들이 전통을 지키는 것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보존하는 정신은 들여오지 않고, 일본인들이 장삿속으로 변형시킨 서양 놀이만 들여와서는 마치 그것을 해야 현대인이고 깨인 사람인 줄로 착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