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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 월에....
寶海/ 유 희 민
(제4장)
* 천재 화가, 한국을 떠나다.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쌍식이 형님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달중이가 마지막 날 나타난다고 했제?”
“예.”
“잘은 몰라도 뭔가 그림이 좀 보일락 한다... 그래... 여그서 달중이 아는 사람은 나하고,
대가리 밖에 없는디... 그날 달중이가 온다 그라믄 그것은
분명히 나하고 달중이 하고 한조(組)가 되는 것이 맞것다.
우쭈꼬 할랑가 몰라도... 그래... 달중이가 하는 일을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분명 한갑다.
이정도 되믄 우상이 니는 뭔 그림이 안 떠오르냐?”
“..... 전혀.... 워낙에 기발한 천재들이라....
우리가 아무리 지레 짐작으로 작전을 구상 한다 해도 그들의 수준은 분명 아닐 겁니다.
형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뭔가 있기는 하지만... 전혀 짐작은 못하겠네요.”
“그라믄 그라제... 코피리 성님이 그라고 달중이 걱정을 해쌌고 했으믄 뭔가 보였응께 안그랬겄냐?
알았다. 그라믄 당일날은 내가 직접 탑차 안으로 들어가서 호송을 할란다.
그라고 내가 씹할, 죽는 한이 있어도 17번 박스는 내 탑차에 실어 블란다.
쪽바리들 지랄해도 여그가 한국땅이여. 좆만한 새끼들 지랄하믄 호송차 전부를 철수 해블란다.
공항 가가꼬 비행기에 실어 주는것 까지는 우리가 맡아서 해야 한다고 들이 대야 쓰겄다.”
“예. 일단 그렇게 협조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
바로 코앞에서 이야기 하는 쌍식이 형님의 이야기 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리는 듯 했고
기독교인들이 자주 한다는 그 주기도문이 왜 생각나는지 몰랐다.
끝까지 외우지도 못하는 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그 구절이 또 생각났다. 꼭 성취 되어야 한다는 나의 바램 이였을까?
주문처럼 그 구절이 자꾸 생각났다. 쌍식이 형님의 이야기 소리는 마치
스테레오 사운드처럼 다른 한쪽에서 들려 왔고 주기도문을 생각 하는 나의 생각이
각각의 소리로 들려 왔다.
그리고 또다른 소리, 그건 전화가 왔다는 비서의 좀 큰 목소리 였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김대석 부장이였다.
“사장님-. 지금 사람을 델꼬 가께라.
내가 소개를 받고 이야기를 한께 못 믿겠다고 사장님을 직접 봐야 쓰겄다 안하요?
우짜까라?”
“예. 그럼 모시고 오세요.”
“예. 그라믄 내가 지금 싸게 갈랑께 사무실에 있으쇼이.”
전화를 끊고 돌아 서자 쌍식이 형님이 묻는다.
“뭣을 벌써 사람을 찾았어?”
“그런 것 같은데요?”
“허기사 대가리 저놈이 니 부탁 이고 한께 또 명동 가서 아그들을 좀 닦달 했는갑다.
그 새끼 들어오믄 또 곱게 안 넘어 가겄네.”
내가 조용히 웃었다.
이상하게 김대석 부장은 나를 좋아 했다.
그리고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하면 쌍식이 형님의 추상같은 명령도 무시할 정도 였다.
그의 말처럼 ‘아 성님이 몇 대 쎄리믄 맞아블제.’ 했었다.
쌍식이 형님의 ‘그 새끼 들어오면 또 곱게 안 넘어 가겄네’ 하는 소리는
혹시 김대석 부장이 어떤 보상 차원에서 또 술을 사 달라고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었다.
한참을 쌍식이 형님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김대석 부장이 들어 왔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은 전혀 김대석 부장의 스타일이 아닌,
전혀 건달기가 없어 보이는 샌님 같아 보였다.
두꺼운 안경과 정장으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신사 였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에 선 자세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암달러를 바꾸는 처지인 나로서는 간단히 악수만을 하고 명함을 주지는 않았다.
그의 명함을 쳐다보면서 난 조금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준 명함에는 모 은행의 과장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 이였다.
나는 비서에게 차를 준비 하도록 해 놓고 그에게 앉기를 권했다.
“은행에 근무 하세요?”
“예.”
“좀 의외입니다. 은행 직원이 직접 이렇게 암달러를 환전해 주신다는 게 좀....”
“그렇습니까? 요새 기업들이 밖으로 송금해야 할 자금이 많지만 박대통령 시절부터
외화가 들어오는 건 얼마든지 들고 올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는 건 좀 많이 간섭을 해 놔서...
많은 기업인들이 편법을 쓸 수밖에 없어서 관행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은행 측에서도 정상적인 환율보다 좀 비싸게 바꿔 주니까 서로가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인들은 자유롭게 외화를 바꿀 수 있고, 저희는 저희의 이익을 추구 할 수 있으니까요.”
딴에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국 같은 약소국과는 신용장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직접 현금을 들고 나가서 물건을 구매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던 시절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했다.
그의 계산은 평소의 환율보다 10원 정도를 더 비싸게 계산 하였고
자기가 지정한 구좌에 돈이 입금 되는 게 확인 되면 달러를
사무실로 직접 가져 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적어준 은행 구좌 번호와 계산된 액수를 받아서
경리를 시켜 은행에 송금 하도록 지시 하고 경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은행 간부다웠다.
경리가 사무실에 돌아오기도 전에 자기가 소속된 은행에 연락 하여 입금 된걸 확인 하였고
10만 불을 충무팀 사무실로 가져 오게 지시를 했다.
사무실 여직원이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은행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와 달러를 내 놓았다.
달러라는 돈은 참 편리한 돈 이였다. 9천만 원이 넘는 돈이 달랑 10개의 돈다발 이였을 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방에 넣어서 움직일 수 있는 크기이기도 했다.
돈을 세 다발씩 묶어서 옆으로 펼친다 해도 책 세권정도의 크기일 뿐이었다.
이로서 우석이를 미국에 보낼 준비는 끝마친 상황이 되었다.
어제든 나머지 몇 장의 그림이 완성되면 그를 미련 없이 미국에 보내면 그만 이였다.
은행 직원들은 언제든지 달러가 더 필요하면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아야 우상아이-. 인자 밥이나 묵으로 가자.
대가리 눈구멍 쳐다본께 뭘 쳐 멕여도 멕여야 쓸랑갑다.
씨벌넘이 그런 것도 일 이라고 티를 낼라 그라네...
그라고 또 밥 때도 된것 같다. 대가리 뭐 쳐 묵으까?”
“... 좀 뻘쭘하요이? 이것이 밤에 뭉쳐 브러야 쓴디.... 낮에 뭣을 묵겄소.... 암꺼나 묵읍시다.
사장님 좋아 하시는걸로 암꺼나...”
“그럴까요? 그러면.... 국회 의사당 뒤에 전주 사람이 하는 비빔밥집 갈까요?
전번에 가보니까 잘 하던데...”
“그라까? 아야 대가리 내려 가서 차 빼가고 와라.”
“걍 같이 나가믄 되요. 그랄줄 알고 걍 밑에 길가에다 뻐떼놨소.... 우째도 같이 갈것 같은께.”
“썩을놈이 아조 작정을 했그만... 우상아이 그라믄 가보자.”
셋이 사무실을 나와서 여의도의 ‘임실집’ 이라는 비빕밥 집으로 갔을때
그 식당에는 벌써 많은 국회의원들, 그리고 유명 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비빕밥에 들어가는 콩나물 재료를 잔뿌리가 없는 임실산 서목태(쥐눈이 콩)을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식당 이름이다.
그래서 인지 콩나물과 고추장, 그리고 전주비빔밥에만 볼 수 있는
싱싱한 육회와 달걀노른자 그리고 각종 나물의 조합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집의 메뉴는 딱 두 가지 뿐 이였다. 비빔밥과 그리고 간단히 술을 마실 수 있는 육회뿐이었다.
임실집의 육회 또한 유명해서 많은 손님이 먹곤 했는데 육회를 하는 재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점심때조차 먹기가 쉽지 않아서 더욱 유명 했다.
“아따. 뭔 비빔밥 집에 이라고 사람이 많냐?”
“예. 이집이 좀 유명 합니다. 육회에 간단히 소주 한잔 하셔야 할 겁니다.
이집 육회가 기름기 없는 소의 우둔살로 한다는데 밤 되면 구경 할 수도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라까? 메뉴도 또 그것밖에 없응께... 그라믄 간단히 한잔 찌끄러 보자.
아야 대가리 니가 가서 육회 대(大)자로 하나 시키고 비빔밥도 시게 시키고 온나.
너무 인상 쓰지 말고이?”
“음석이 늦게 나오믄 모르까 뭔 인상 쓸 일이 있겄소?
그라고 나물 몇 개 섞어 주는디 뭔 시간이 걸릴랍디요?”
“허기사 비빔밥 이라는 것이 그렇게 조리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음석은 아닌께이.”
그러나 음식을 시키기도 전에 서빙 하는 아가씨가 와서 탁자에 반찬들을 놓으며 주문을 받았다.
육회 하나와 그리고 소주 3병, 그리고 비빔밥을 세 개 시켰다.
비빔밥이 대한민국의 대표 음식 이기는 했지만 특별히 전라도 전주의 비빔밥은
목포에서 느꼈던 그런 감회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빔밥에 함께 먹기는 다소 많다 싶은 여러 종류의 밑반찬 이였다.
그걸 본 김대석 부장은 또 몇 마디 했다.
첫댓글 행복한 시간 되세요...!!!
안녕하신지요 파도사랑님..요며칠 동안 어딜 다녀왔습니다..글이 궁금하던차에 아주 속 시원히 연달아 읽을 수 있으니..ㅎㅎ 허기가 채워지는듯합니다..그리고 건강은 되찾으셨어 흔쾌하신지도..요..글..감사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