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에너지 전문가 마이클 슈나이더, 국회 강연회서 "80기 수출 터무니없어" 지적
"기술과 산업기반 강한 한국이 왜 과거 유물 원전에 갇혀 있나"
» 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만난 마이클 슈나이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을 계기로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해 세계 신규 원전 건설 시장의 20%를 차지해 3대 원전 수출 강국으로 성장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 ‘원전수출’은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 회의 참석차 방한한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마이클 슈나이더를 3일 만나 그 전망을 물었다.
“에너지 전문가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예측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시장이 필요한데 내가 보기엔 그런 시장은 없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수출처럼 재원조달 없이 건설을 시작한 예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돈을 끌어오기가 몹시 어려울 겁니다. 갈수록 줄어드는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80기를 수출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계획입니다. 화성이나 달에 원전을 팔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는 이날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세계 핵산업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 녹색당, 진보신당,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등이 함께 주최한 자리였다.
» '세계 핵산업에 미래는 있는가' 강연회가 3일 국회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 등의 주최로 열렸다.
그는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이후 세계 핵산업계의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핵산업계의 쇠퇴는 이미 두드러진 현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이 국제 에너지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기의 11%, 일차 에너지의 5%, 최종 에너지의 2%에 지나지 않으며 감소 추세에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에서 원자력 전기생산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은 1993년이었고 원자력 발전량이 최대였던 때는 2006년이었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경향은 원전의 노후화이다. 전 세계 429기 원전의 평균 나이는 27살이다. 그는 “1985년 생산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며 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0살 이상은 155기, 40살 이상도 29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원전은 고리1호기로 34살이다.
이처럼 쇠퇴하는 핵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중국, 인도, 한국 등 신흥공업국들이다. 현재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 59기 가운데 중국이 26기, 러시아, 10기, 인도 7기, 한국 3기 등이 4분의 3을 차지한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6~7년으로 안정적이던 원전 건설기간이 대중의 반대와 소송 등으로 안전규제가 강화되면서 10년 이상 걸리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산업 자체가 불안정해졌다”고 설명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미국에서 1972년 이래 유일하게 건설에 들어간 원전 ‘와츠 바-2’이다. 1970년 건설이 시작된 이래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43년째 건설중이며 2015년 상업운전에 들어갈 계획이다. 추가 건설비만 40억~45억 달러에 이른다고 슈나이더는 밝혔다.
이런 지체는 고스란히 비용 증가로 이어져, 원자력은 “알면 알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 이상한 기술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태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단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주요 원자력발전 회사들의 주가 동향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원자력이 시장에서 점점 낮게 평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정부가 8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영 원전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원전 건설회사인 아레바의 주가가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지속적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그는 “유일한 예외는 영국의 에스에스이인데, 이 회사는 얼마 전 원자력 부문에서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를 보아도, 아레바는 정크 등급 바로 위인 BBB-에 랭크돼 있다. 상위에 있는 이디에프, 한전 등은 정부가 보증하는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등급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는 프랑스의 비엔피-파리바 은행이 신규 원전 건설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원자력 산업계는 공사 기간 연장과 예상 증가의 위험이 크고, 정치적 위험이 크며, 대중의 수용성이 확실하지 않고 (투자자의) 명성에 금이 갈 수 있으며, 무엇보다 경제성이란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핵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태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고 있다. 그는 “중국은 이 분야에 2009년 391억 달러, 2010년 544억 달러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했고 지난해에도 455억 달러를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발전국이지만 지난해 재생에너지 분야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481억 달러를 투자했다. 슈나이더는 “미국, 중국에 이어 독일, 이탈리아, 인도, 영국, 일본 등이 이 분야에서 맹렬히 뛰고 있는데 한국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독일에서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원자력을 처음으로 넘어섰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새로운 원전 건설을 모두 동결한 중국에서는 지난해 풍력발전량이 원자력의 77%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는 사회당과 녹색당 연정인 올랑드 정부가 2025년까지 75%에 이르는 원자력 의존도를 50%로 낮추기로 하고, 이달 중 국가에너지정책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는 “현 정부가 원전 2기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중요한 신호를 이미 보냈다”고 말했다. 또 일본도 국민의 반발이 워낙 커 이를 무릅쓰고 후쿠시마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22년까지 탈핵을 선언한 독일과 지난 20년간 세계 원자력 산업을 이끈 일본이 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에너지 효율 시스템, 지능형 전력망 등 기술 수준이 높고 산업 기반이 튼튼한 한국이 과거의 유물인 원전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이클 슈나이더는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유럽의회, 프랑스 독일, 벨기에 정부에 에너지정책을 자문하고 있으며 1997년 일본의 저명한 반핵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와 함께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 생활 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2012 세계 핵산업 동향 보고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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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출신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인 마이클 슈나이더가 3일 오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세계 핵산업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 김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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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탈핵'을 모색하는 마당에 2030년까지 80개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한국이 국제적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독일 출신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인 마이클 슈나이더는 3일 "수출 시장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다 팔려는 건가, 달로 가야 하나 화성으로 가나"라며 한국 정부의 원전 수출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전 세계가 '출구전략' 모색하는데 한국은 원전 르네상스?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회장 김제남 통합진보당 의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슈나이더는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고 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는 등 원전 관련 기업들이 위기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지난 2009년 말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한 뒤 3년만인 지난 7월 본공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슈나이더는 "자금 조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첫 삽을 떴다는 것도 놀랍다"면서 "그만큼 이미 따낸 계약에 대해서도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세계 핵산업 동향보고서 대표 저자로 유럽의회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정부 등에서 에너지 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슈나이더는 세계 핵 산업 후퇴 이유를 후쿠시마 사태 이후 안전 조치 등 원전 건설비용 증가와 재생에너지산업 발전에서 찾았다. 실제 2007년을 기준으로 주요 원전 관련 주요 기업들의 주가를 분석해 본 결과 지난해 말 원전에서 발을 빼겠다고 발표한 영국 SSE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도쿄전력(TEPCO)이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가총액 96%를 잃은 것은 물론 이 사건과 직접 관련 없었던 세계 원전 건설 1위 기업인 프랑스 아레바(AREVA) 주가 역시 88% 떨어졌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다른 나라 기업 주가도 2/3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슈나이더는 "독일 EDF나 한전 등은 국가가 보증해 S&P 신용등급 A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레바는 BBB-로 정크(투자부적격)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누가 돈을 투자해 원전을 건설하려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실제 프랑스 BNP파리바 은행은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원자력포럼에서 "원전 건설 프로젝트는 대부분 정부나 대형 공사가 재정을 제공하는데 여론 등 다른 에너지 자산들에 비해 높은 정치적 리스크와 맞닥뜨리고 있다"면서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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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출신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인 마이클 슈나이더가 3일 오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세계 핵산업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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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산업의 미래는 신규 건설 아닌 안전 관리와 폐로 기술"슈나이더는 "원전 강국인 독일과 일본의 탈핵 결정이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재생에너지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여서 앞으로 원전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한국은 2011년 원자력 발전량에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한 반면 재생에너지 투자에서 세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2011년까지 3년간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에서 미국이 481억 달러로 1위, 중국이 455억 달러로 2위, 독일이 306억 달러로 3위를 달리는 반면 한국은 3억3300만 달러로 15위에 그쳤다. 슈나이더는 "전 세계에서 2012년 가동을 시작한 신규 원전은 단 2기에 불과했는데 모두 한국 원전이었다"면서 "핵 산업의 미래는 신규 건설이 아니라 발전소와 핵폐기물의 안전 관리, 폐로 기술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아울러 슈나이더는 지난 10일 벨기에 도엘(Doel) 원전 3호기 압력용기에서 발생한 균열을 상기시키며 "80년대 후반 가동 뒤부터 많은 균열이 있었지만 그동안 검사 방법론이 제대로 안 돼 미세한 균열을 검사할 수 없었다"면서 "검사 기술상 문제라면 모든 낡은 원자로가 해당될 수 있고 고리 1호기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