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 갯가로
삼월 첫 주 목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어 글을 몇 줄 남기고 책을 펼쳐 읽음은 변함없는 일과다. 약차를 달이면서 아침밥을 일찍 지어 먹고도 등교는 미적댔다. 우체국 창구가 문이 열리길 기다려야 했다. 올봄 창녕의 사학재단에서 교장으로 취임하는 지기에게 보낼 우편물이 한 가지 있어서다. 내가 남겨가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인데 봉숭아와 맨드라미 씨앗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우체국 업무가 개시된 시각에 맞추어 꽃씨가 담긴 우편물을 발송하고 산야를 누비려고 길을 나섰다.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광장으로 갔다. 내가 속한 어느 모임의 단톡방에서 모 정당 대통령 후보가 오늘 오후 마산역 광장을 찾는다는 알림이 왔더라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예사로 넘겼다. 나는 번개시장 들머리서 김밥을 마련해 합포구 구산 갯가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면서 몇몇 손님들이 타고 내렸다. 버스는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으로 향했다. 현동은 도심을 벗어난 외곽이지만 최근 신도시가 형성된 아파트단지다. 예전의 낡고 작은 초등학교는 새로운 부지에 덩그런 건물이 들어서고 전에 없던 중학교는 인근 구산면 소재지에서 옮겨왔다. 고등학교까지는 신설하지 못해 해당 학생은 마산 관내 학교로 다니는 것으로 안다.
버스는 덕동 공영버스 차고지를 지난 유산삼거리에서 해안을 돌아 수정으로 향했다. 수정은 구산면 소재지로 인근 바다는 홍합 양식으로 유명하다. 아침나절 보건 진료소나 내과를 찾은 노인인지 승객이 몇 분 늘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한 할아버지가 올라 나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농어촌 버스를 타다보면 내 나이가 젊은이 축에 해당해 서서 가야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백령고개를 넘어 반동삼거리에 이르니 빈자리가 생겨났다. 로봇랜드를 지나 난포를 앞둔 소골에서 내렸다. 4호선 국도가 심리로 이어지는 교차로의 양지 바른 자리에 할머니 두 분이 쑥을 캐고 있었다. 아마 현지에 사는 원주민인 듯해 내가 곁으로 합류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쑥을 캐서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으로 삼지 싶었다. 나는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포장된 길을 따라 올랐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톨릭 마산교구의 교육원이 있어 도로가 생긴 곳이지만 평소에는 통행하는 차량이 없었다. 안민고갯길처럼 포장이 되어 있지만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정지역이었다. 볕바른 길섶에 쑥이 돋아 자랐지 싶었는데 누군가 먼저 다녀간 이가 있었던지 보이질 않았다. 대신에 보드라운 냉이가 있어 배낭에 넣어간 호미를 꺼내 캤더니 양이 제법 되었다.
찻길이 끝난 가톨릭 교육관을 비켜 봉화산 정상에 서서 주변을 조망했다. 우리나라 산 이름에서 가장 흔한 것이 봉화산이고 그 다음이 국사봉으로 안다. 합포 구산 봉화산은 거제 옥녀봉과 강망산 봉수대의 불빛과 연기를 받아 내륙으로 전했던 곳으로 진해만 바깥이 훤히 드러났다. 바다 건너는 지난날 내가 삼 년간 머물다 떠나온 거가대교와 거제지맥 산들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봉화산 정상에서 남긴 사진을 몇몇 지기에게 전하고 가져간 김밥으로 요기를 했다. 하산은 산등선 따라 난포로 가도 되겠으나 잘록한 산허리에서 옥계로 내려섰다. 옥계는 농사보다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은 어촌으로 예전엔 초등학교가 있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부두에는 중년 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어 무슨 고기를 잡는 어구냐고 여쭈니 대구를 잡았던 어망이라 했다.
옥계에서 낮은 언덕을 따라 오르니 합포만에 걸쳐진 마창대교가 아스라이 보였다. 찻길과 떨어진 언덕 아래 갯가는 물때가 썰물이라 어촌계 계원들이 어로 작업에 손길이 분주했다. 마을과 제법 떨어진 곳이라 차를 몰아 뒤늦게 찾아온 아낙들도 있었다. 부녀들은 바지락과 개조개를 캐러 왔다고 했다. 개조개는 일명 대합으로 이름과는 다르게 조개의 여왕으로 맛과 향이 아주 좋다. 2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