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매봉산 팔각정
팔각정 앞의 시비
시화(詩畵)와 함께하는 둘레길 산책 [방재욱]
2020년 1월 발발해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COVID-19) ‘집콕’으로 답답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어보려 거의 매일
‘만보 걷기’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자주 걷는 길은 아파트 쪽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접하는 매봉산 둘레길이나 15분 정도
걸으면 닿는 양재천변 길입니다.
매봉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비탈진
산책길을 잇기 위해 인조목을 깔아
만든 길이 세 갈래 있습니다.
길이가 200M~300M 정도 되는 갈래길의
중간에 탁자와 의자가 놓인 휴식처에 이르면
난간에 걸려있는 시화(詩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산책 중 간간이 멈추어 읽고 있는 시들은
스마트폰에 담아와 집에서도
자주 열어보고 있습니다.
시는 문학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장르로
우리 마음의 만족감을 높여주며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지만,
시에 대한 관심이 별로 높지 않은
우리 사회 문화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 느낌은 전철을 타려 역에서 기다릴 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승강장 스크린 도어에
전시되어 있는 시들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도 다가옵니다.
이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시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인조목 갈래길의 휴식 공간에 걸려있는 시화
산책 중 시화 앞에 다가가 시를 읽을 때
대전에서 대학 재직 시절 산책을 하며
자주 접했던 유성천변 길의
시화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천변 산책길의 오른쪽 난간에
시화들이 걸려 있었는데,
평소 보지 못했던 풍광이라 호기심이 생겨
발걸음을 멈추고 시들을 읽어보곤 했습니다.
읽은 시들 중 오래전 저세상으로 떠나신
누님 생각을 하며 자주 접했던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란 시에 담긴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구절이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옵니다.
세 갈래 인조목 길의 휴식 공간에는
각각 4편씩
12편의 시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시를 읽어보시라는
마음으로 각 갈래길에 전시되어 있는
시들 중 한 편씩을 올려봅니다.
첫 번째 갈래길에는
‘花無十日紅이라지만(이성이)’, ‘풀꽃(나태주)’,
‘풍경달다(정호승)’, ‘생명의 강,
꽃들의 바람 - 홍매(박남권)’ 등
4편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그 중 상대방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려면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풀꽃’을 적어봅니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두 번째 갈래길에는
‘모래의 여정(시조시인 진길자)’, ‘山行(권용태)’,
‘산을 보며(이해인)’,
‘호미 메고 꽃 속에 들다(강희맹)’ 등
4편의 시화가 걸려있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산을 보며’는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밖 전경을
내다볼 때 계절에 따라 다른 색깔로
다가오는 매봉산 너머 대모산,
구룡산, 청계산 풍광에서 떠올려지는 시입니다.
산을 보며 <이해인>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 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생기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세 번째 갈래길에는
‘사랑의 미학(시조시인 김귀례)’, ‘솟대(한 경)’,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새로운 길(윤동주)’ 등
4편의 시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중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자주 읽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을 담아봅니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둘레길 아침 산책을 마치고
귀가해 샤워를 한 다음 책상 앞에 앉아
산책을 할 때마다 늘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지혜를 일깨워주는 시화들을 떠올리며,
머리와 가슴 속으로 가득 채워지는
행복감에 젖어들어 봅니다.
그리고 새아침과 함께한 시화들이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선사해주는 느낌으로 다가오며,
‘오늘’ 하루가 좋은 일들을 많이 맞이하는
행복한 날로 받아들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