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잣집 지키는 할머니들...
며느리 엄명에 할머니들 죽을 고생.
딱지사서 거주자행세는 시어머니 시켜...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즈음,
구룡마을 판잣집 실내온도는 40도가 훌쩍 넘는 찜질방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구룡마을 판잣집들은 얇은 합판위에 루핑을 얹고
누수를 막기 위해 비닐을 씌운 탓에 내려쬐는 여름태양의 열기가
고스란히 실내로 유입되고 창문이 없는 탓에 바람이 들어오지 못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실내온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구룡마을에는 60세가 넘는 독거노인들이 200여명이나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을이 생겨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노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구룡마을 들어와 산지 몇 년 되지 않는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O지구 O-OO호에 사는 김 모 할머니(72세)는 2년전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송파구 가락동에 혼자 살고 있던 김 할머니는 2년 전
추석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대치동에 살고 있는 큰 며느리한테
전화 한통을 받았다.
“어머니 며칠간 개포동에 가셔서 집을 좀 지켜 주셔 야겠어요”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큰 아들네 집은 20억 정도 되는
강남요지의 중대형 아파트다.
그러나 그 집을 장만한 것은 오랫동안 강남 복부인 며느리가
부동산 투기를 하여 벌은 돈으로 장만한 것이고 강남에 아파트를
두 채 더 갖고 있다.
“어머니.. 구룡마을에 집을 하나 샀는데 개발이 되면
아파트를 한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거주를 하지 않으면 아파트를 받을 수 없다하니
어머님께서 잠깐 잠깐 들리셔서 사람이 사는 것 같이
해주셔 야겠어요”
김 할머니는 사람 사는데 어디인들 대수냐 싶어 생활비를 주는
큰 며느리의 부탁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흔쾌히 응락을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조금은 불편해요. 곧 아파트를 짓는다하니
오래는 안 걸릴 꺼 예요”
“불편하면 얼마나 불편 하겠니 가 있겠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파트를 지을 때까지만 있으면 되고 잡다한 살림이나
지낼만한 여러 가지는 며느리가 챙겨주겠지 하며 길을 나선
김 할머니는 마을에 입주할 때부터 석연치 않은 일을 겪기 시작했다.
보통 이사를 하게 되면 살림을 트럭에 싣고 이삿짐 쎈타 장정들이
짐을 날라 주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택시를 타고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무슨 007 작전하듯이 마을입구 대 도로변에
50대 아주머니와 큰며느리가 만나 김 할머니를 인계하고
달랑 이불 한 채와 벼개 하나만 택시에 싣고 도둑이사 하듯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안내를 한 그 아주머니는 여러 가지 주문이 많았다.
누가 와서 물으면
남편이 사업하다 망해서 병들어 죽고 혼자 지내다가
돈이 없어 들어오게 되었다느니 자식도 없이 혼자 산다느니,
홀몸으로 병이 들어 고혈압, 당뇨에 고생을 하여 힘들어 죽겠다느니
하는 만들어진 거짓정보를 알려주고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강 안내를 하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후 2년..
난생 처음 빈민 연습에 나선 김 할머니는 실제 빈민이 되어갔다.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너무 가난하고, 너무 무서운 세월이었다.
더위나 추위는 그렇다 해도 젊은 시절인 50~60년대에나 겪었던
재래식 화장실 이용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었다.
아침이면 공동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줄을 서는 것이
가장 싫었다.
그래도 며느리는 10억 가까이 되는 아파트 한 채가 그런 고생하지 않고
어떻게 생기겠느냐면서 수시로 위로의 말은 해주지만
내 재산을 불리는 것은 아니기에 건성으로 듣기가 일쑤였다.
무엇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빈민생활이 끝났으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 안내 아주머니가 급하게 찾아왔다.
“할머니. 구청직원이라고 찾아와 물으면 5년 전 부터 살았다고
말 하세요”
“안 그러면 집 뺏기고 쫓겨나니까 알아서하세요” 하면서
휭 가버리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며느리가 사준 휴대폰 1번을 꾸욱 누르니 며느리가 받는다.
“어머니 제 말 잘 들으세요.
구청에서 조사 다니며 빈집은 다 철거한다니
집에 꼭 계셔야 해요.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안돼요”
그리고 안내 아주머니가 한말을 똑 같이 주문을 했다.
그 후 가을쯤 마을전체가 온통 난리가 난 듯 소란했다.
구청에서 빈집에 철망을 치고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출입금지 표지판을 붙여 놓았다.
“아... 그랬었구나”
그제 서야 김 할머니는 집을 꼭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20여 미터 떨어진 O-OO호 할머니는
김 할머니 하고 처지가 비슷했다.
김 할머니는 큰 아들과 며느리가 가끔씩 식당에 가서
밥도 사주고 찜질방에도 데려다 주고 용돈도 주고 하지만
그 할머니는 휴대폰이 없어 김 할머니 휴대폰으로 아들이나
며느리와 통화를 하는데 통화내용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돈이 다 떨어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둥
이불이 두꺼워 여름 홑이불이 필요하다는 둥
생수를 먹어야 배탈이 나지 않을 텐데 하는 기초생활에 필요한
최소의 요청들을 죄지은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 내 며느리는 참 좋은 사람이구나...”
그 할머니는 같은 처지의 대리거주 할머니들이 구룡마을에
많이 살고 있다 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배당 받을 때까지는 체념하고
빈민으로 살 수 밖에 없다 했다.
김 할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구룡마을이 개발 되어
마을에서 나가 빈민이 아닌 원래의 모습대로 살고 싶다한다.
큰 아들네가 잘 사는 중산층이고 부족함이 없는 처지인데
빈민 연습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큰 며느리의 아파트 한 채 벌기 작전에
소모품이 된 처지가 못마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아직도 60년대식 공중 화장실 앞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줄을 서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기 때문이고
다섯 평 밖에 안 되는 집안의 구조 탓에 목욕을 할 수도 없고
푹푹 찌는 40도가 넘는 판잣집안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구룡산 숲속에서 할머니들끼리 모여 며느리 흉보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더더욱 싫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에는 아파트 한 채를 배당받기 위해
물 딱지를 수천만원씩 주고 사서 늙으신 시어머니를
살인적인 더위와 온몸이 오그라드는 추위 속 판잣집에 처박고
죽을 고생을 시키는 복부인들의 투기전략이 성공하여
거주자에게 준다는 아파트 한 채를 받을지는
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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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글에 다녀갑니다. 사람마다 삶이 힘들고 고달픈게 인생길인가 봅니다. ㄳ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일은 없어져야 할낀데 ~~~
쩝쩝~~아직도 그런달동네가 만타지요~인생길 누구나 험하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고생이 행복이라 생각하고 사는게 제일 편해요~좋은글 주심에 ㄳ를 드립니다. 좋은7월한달 되시고 행복하시길 빌께요~~~
모모수계님도 행복한 7월되세요 ~~~
좀 씁씁하네요...칠월에는 좋은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행복한일만요 ~~~
씁쓸한 우리네 단면의 이야기네요~~
왜 먹고 살만큼 살면서 그렇게 재물에 욕심을 내는것일까요..
그러게요 ^&^
감동적인글에 맘함께 동요하고 갑니다. 예전에 우리네 삶에일부분 같아요` 좋은글 ㄳ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
가슴이 찡하네요비록 삶은 힘들지만 어쩜니까....잘하고살아야지좋은글 감사드려요^^
열심이살아가야지요 ~~~
살인적인 더위와 온몸이 오그라드는 추위 속 판잣집....처절한 아픔입니다...어~~휴~~
며느리는 부자인디늙으니 고생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