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승산에서 본 물푸레나무 꽃,
오월의 산을 오르면
여러 종류의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길가에 수줍은 듯 아무렇게나 피어서
지나는 길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양지꽃이나 딸기꽃, 그리고 산철쭉과 찔레꽃들도 있지만,
오월의 꽃 중의 꽃은 물푸레나무 꽃이다.
학명은 Fraxinus rhynchophylla HANCE.이다.
높이 30m, 지름 50㎝에 달하는 키가 큰 나무로
소지는 회갈색이고 털이 없다.
무늬가 아름다워서 기구재나 가구재로 좋고,
도리깨나 농기구로 쓰이는 나무,
그 나무를 두고 오규원 시인은
<한 잎의 여자>라는 시 한 편을 남겼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숨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낭창낭창 휘어지는 물푸레나무의 그 한 잎으로
형상화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아련한 고향의 누이 같기도 하고
실패한 첫사랑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리다.
두승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물푸레나무의 꽃,
지금도 그 향기가 호남평야에 퍼져나가고 있을까?
2020년 5월 4일 월요일,
출처: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