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딸만 8인 집안의 7째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가족 구성원에서 알 수 있다 시피 저의 어린 시절이 그리 유복하지 만은 안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린 시절을 항상 미소 속에서 추억할 수 있는 이유는 가난함이 두렵지 않았던 가족의 단란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큰언니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공간을 때로는 아빠처럼 또 때로는 엄마처럼 우리의 부모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큰언니는 우리에게는 각자 해야 할 책임과 역할 분담을 나누어주었고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여기서 전 책임감과 협동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배운 이 두 가지 덕목이 지금의 제가 있게 한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큰언니가 시집가면서 저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한 말입니다. 언니는 “나는 여태까지 너희를 생각하지 않고 한 행동은 단 한 번도 없었다.”란 말을 하며 울었고 그 눈물의 의미는 지금도 저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저희 집의 살림이 조금씩 나아졌고 살림이 나아지게 되면서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셨습니다. 그 때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던지, 학교가 끝나고 나면 집안에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부리나케 집에 달려와 엄마가 집에 있는 모습을 확인하곤 하던 저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가입하게 된 '모의국회'란 소모임은 저에게 우리나라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포괄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특히 '통일을 위한 남북 조정위원회'란 주제 하에 남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합의과정을 연극으로 보여준 15회 모의국회에선 문화부에 속하여 남북의 문화에 대해 직접 원고를 쓰고 연극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활 내내 참가했던 환활(농활+환경활동)은 저에게 시골의 생활과 농민들의 애환을 알게 해 주었고 더불어 환경인식도 심어주었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99년 이후에 참가하게 된 '세월 문화재단‘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문화 유적을 답사하며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런 역사인식과 환경인식이 그 이후 캐나다에서의 어학연수 기간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문화 충돌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좀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 나라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대학시절 동안의 많은 아르바이트의 경험이나 사회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저에겐 그보다 더한 문화인식의 기회와 역사인식의 기회, 그리고 도시와 시골 생활의 문화 차이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사람의 문화 차이까지도 인식하고 그들의 문화를 충돌이나 충격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경험이 다른 어떤 사회생활이나 직장경험보다도 더 귀중한 저만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2) 성격, 장단점, 생활신조
"자신이 최고라고 믿는 것은 오만이지만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야망이다."
이 말은 홍정욱의 7막 7장에 나와 있는 말이며 저의 좌우명입니다. 한때는 최고가 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은 아집과 오만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둘러보려 하지 않지만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금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겸손하며 자신의 일만을 묵묵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력했을 때 그 결과는 항상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언제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야망을 가지고 항상 겸손함 속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생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인생관이 저에게 도전정신 또한 심어주었습니다. 전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도전하고 직접 부딪혔을 때 그리고 ‘내가 해냈어’란 쾌감과 함께 ‘에이 별거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을 회복했을 때의 느낌을 알기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도전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과 같은 거창한 도전이 아닐지라도 학원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혼자의 힘으로 편입에 성공했을 때, 대학생이 되어서 관광이 아닌 배움을 위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 없이 혼자 떠났던 해외여행들은 나에게 있어 무한한 두려움인 동시에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전정신이 제가 새로운 것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3) 지원동기, 장래포부
고객이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몇 개나 될까? 란 원초적인 질문을 했을 때 ‘온세통신’은 저에게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믿고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몇 되지 않는 기업 중에 하나입니다. 어학연수과정에서 실제로 제가 겪은 어려움은 언어소통의 문제점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사소한 문제들이었는데 한국과의 연락도 그중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pc방을 외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메일 사용이 용이치 않아 가족, 친구들과의 연락은 거의 전화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태에서 처음 이용한 것이 한국통신의 국제전화 서비스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비싼 요금은 항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기에 캐나다에서 해외 전화 카드를 구입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런 카드들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고 연결 또한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겪은 후에 사용한 온세통신의 선불 국제 전화 카드는 저렴한 가격과 높은 통화 품질 서비스로 그 이전에 사용하였던 어떤 다른 해외 전화 서비스보다 높은 만족을 안겨주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저는 거의 모든 통신서비스를 한국통신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세통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학연수 기간 동안 사용했던 온세통신의 서비스는 너무나 큰 만족을 주었고 이후 저에게 추천받아 온세통신의 선불카드를 사용한 다른 친구들의 반응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온세통신은 저에게 그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귀사의 이미지는 저에게 있어 귀사의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싶은 열망을 가져왔습니다.
기업의 이미지는 다른 어떤 수단보다도 기업에서 제공하는 상품의 서비스 질에 의하여 좌우되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업이 이미지 광고에 투자를 하여도 그에 맞는 서비스와 상품의 질이 뒤따르지 않으면 소비자에 의해서 결국 외면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사는 통신업계에서 후발주자로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낮은 단가에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광고 이미지가 아닌 실 제품 서비스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귀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귀사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알기에 그 누구보다도 귀사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온세통신이 후발주자인 만큼 다른 통신업체보다 브랜드 파워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귀사의 좋은 서비스로 편안한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모르기 때문에 편리한 귀사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좇은 서비스를 누리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귀사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데 제가 일조하고 싶습니다.
첫댓글1. 전체평가 : 내용을 알차게 꾸미셨네요.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 이 정도 분량의 자소서를 받는 기업은 없는 걸로 압니다. 많아야 한 분야에 500자입니다. 문장이 상당히 깁니다. 좀더 짧게 끊어 쓰셔야 합니다. 저, 제, 전 등 자신을 자칭하는 단어가 무분별하게 많이 쓰여져 있습니다.
지나친 구어체는 아니지만 문어체에 중심을 잡고 쓰십시요. 예를 들어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은 극히 소수입니다. 저에게 온세통신은 이름만으로 제품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학연수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단문으로 직접 풀어가십시요.
첫댓글 1. 전체평가 : 내용을 알차게 꾸미셨네요.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 이 정도 분량의 자소서를 받는 기업은 없는 걸로 압니다. 많아야 한 분야에 500자입니다. 문장이 상당히 깁니다. 좀더 짧게 끊어 쓰셔야 합니다. 저, 제, 전 등 자신을 자칭하는 단어가 무분별하게 많이 쓰여져 있습니다.
지나친 구어체는 아니지만 문어체에 중심을 잡고 쓰십시요. 예를 들어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은 극히 소수입니다. 저에게 온세통신은 이름만으로 제품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학연수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단문으로 직접 풀어가십시요.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어떻게 말표현을 해야 할 지 몰랐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줄여쓰세요..설마 이렇게 넣곘다는 얘기는 아니시죠?? 이렇게 넣으시면 인사담당자가 보지도 않을겁니다!!
접속사너무많음. 문장 너무김. 눈아픔.
이게 처음이라구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자소서 중 one of the best입니다. 꼭 읽어 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보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분량이 많지만 그 내용이 정말 폭 빠지게 합니다. 구웃~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