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정국 경색 불가피
입력 : 2023.04.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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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이후 첫 거부권 행사
“전형적 포퓰리즘” 법안 비판
민주당 “농민 심장에 비수”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국민의 66.5%가 찬성한 ‘쌀값 정상화법’의 공포를 거부하며 국민의 뜻을 거슬렀다”며 강력 반발하며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국 경색 속에 정부·여당과 야당의 강 대 강 대치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양곡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을 심의·의결한 뒤 이를 재가했다.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7년 만이다. 여야의 극단적인 대립 구조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본회의에 직회부 된 후 국회를 통과한 최초의 법안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번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법안 처리 이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며 “관계부처와 여당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제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농식품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쌀 수급을 안정시키고 농가 소득 향상과 농업 발전에 관한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거부권 행사 배경에 대해 “농민·농촌을 위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고심과 결단”이라며 “농가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제안해온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게 명약관화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강력 반발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윤 대통령이 농민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며 “민주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맞서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정치는 입법부 권한을 심각히 침해하고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재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법안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재의결 시 해당 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재적 의원(299명) 중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기 때문에 재의결될 가능성은 낮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