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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 월에....
寶海/ 유 희 민
(제5장)
* 천재 화가, 한국을 떠나다. *
“성님. 이집 주인이 전라도 사람 맞는 갑소. 반찬을 본께 그라그만...
반찬들이 본께 딱 간이 맞게 생겨브렀소.”
정말 그랬다. 식당의 유명세만큼이나 밑반찬부터가 정갈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뒤이어 가져온 육회 역시 보기부터가 달랐다.
계란의 노른자와 그리고 배를 채 썰듯 잘라서 함께 나온 쇠고기를
서빙 하는 아가씨가 먹기 좋게 비벼 주고 갔다.
우선 참기를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세 사람은 소주를 마실 생각도 하지 않고 모두 육회를 한입 먹어 보았다.
음식에 있어서는 역시 쌍식이 형님이 탁월한 식견이 있었다.
“육회가 무쟈게 싱싱하다이....
허기사 이정도 싱싱한 재료만 쓴께 밤 되믄 재료가 없다고 그럴만 하겄다.
본께 대충 쇠고기 썰어 온 게 아니다. 이런 날고기는 잘못 먹으믄 아다리 될수도 있는디...
이정도 되면 쇠주 안 마셔도 아다리 될 일은 없겄다. 그래도 쇠주 한잔씩 하자이...”
“뭔 고기가 살살 녹아 블라 그라요이?”
항상 그렇듯 세 사람은 서로가 술을 부어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신의 술을 자기 앞에 놓인 잔에 부어서 마셨다. 자작 하는 주법이야
쌍식이 형님의 전유물적 행동 이지만 함께 있는 우리도 쌍식이 형님과 함께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그와 행동을 같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처럼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에겐 오히려 훨씬 좋은 음주 수법이라고 해도 좋았다.
더 마시라는 강요도 그리고 많이 마신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최소한 음주문화에 있어서는 쌍식이 형님은
외국 사람들처럼 좀 다른 선진 주법이라 할 수 있었다.
육회 접시가 바닥을 보일 즈음에 비빔밥이 나왔다.
처음 먹어본 쌍식이 형님과 김대석 부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점심때 마시는 소주 한 병은 적당한 수준의 반주 였다.
한병 더 마시려는 김대석 부장을 쌍식이 형님이 저지 했다.
여전히 쌍식이 형님은 자기 직분에 충실 했다.
“아그야 대가리. 이따가 밤에 마시자.
뭔 일요일도 아니고 평일 날 대낮에 너무 빨아도 그것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께 ...”
했었다.
김대석 부장 역시 ‘그라까?’ 하는 수긍하는 자세로 더 마시는걸 참았다.
그들의 관계가 항상 부러운 건 주군과 가신의 모습과 친구의 모습을 동시에 유지 하면서
순응하는 그들만의 관계 때문 이였다.
김대석 부장은 나와 쌍식이 형님을 사무실에 데려다 주고
그는 현장 직원들을 보기 위해 다른 곳으로 차를 몰고 갔다.
전시회가 하루만을 남겨둔 8월 30일에 호텔에 있는 김우석의 삐삐 연락이 왔다.
그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나는 사무실에 보관 해 두었던 달러를 작은 가방에 담고
그리고 그의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챙겨 들고 그를 만나러 호텔로 갔다.
그리고 입구 쪽에서 나에게 인사하는 충무팀 경원들을 손으로 불렀다.
이제 더 이상 그를 감시 하거나 경호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제 철수를 명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제 모든 업무가 종료 되었다고 말해 주고 그곳에서 철수 할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짐을 챙기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갔고
나는 호텔 로비에서 잠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그리고 김우석의 방으로 갔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피하기 위해, 잠시 시차를 두기 위해 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우석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갔다.
노크소리와 동시에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처음 호텔로 그를 옮기고 비디오테이프를 주었을 때 모습 보다는 많이 살이 쪄 있는 모습이었고
항상 그렇듯 그의 방안은 정갈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건 김우석, 그만의 성격 탓도 있었다. 방안에는 여러 가지 많은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인자 언제 갈랑가 몰라도 좀 있으믄 한국을 뜰것인디....
그림 다 뽄뜨고 나서 인자 쓸데없는 화방 도구는 모두 버리고 갈라고
어젯밤부터 쪼까씩 정리를 했소. 또 살라믄 돈이기는 헌디...
그란다고 저런 것을 챙겨 가꼬 미국 까지 가기는 좀 넘사 스런께 다 버려 블라고 그라요. 아 그라고...”
손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놀라웠다. 그곳에는 젊음 모습의 나의 어머니가 예쁜 한복을 입고 누워 계셨다.
비녀를 꼽고 그리고 한복 고름을 만지며 한발을 내 딛듯 걷는 모습의 우와 하고
단아한 전통적인 한국미녀의 그림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그곳에 있었다.
얼굴의 형태가 마치 내가 어려서 봐왔던 그 모습의 어머니인 형상으로 그곳에 누워 계신 듯 했다.
“이런 그림은 원래 좀 젊게 그리는디....
얼굴 형태가 비슷한가 모르것소이? 욕심 같으믄 표구 까지 해가꼬 주고 싶은디...
며칠 안남기고 쓸데없이 책잡히기 싫어서 호텔 밖으로 안 나갔소.
액자를 좀 비싼 걸로 하쇼이. 불당 같은데 보믄 탱화 만들어 걸어 놓은 것 멩키로 좀 크고
비싼 걸로 해가꼬 벽 한쪽을 완전히 저 그림 하나로만 장식을 해야 할 것이요.
옆에 뭔 걸거친거 있으믄 그림이 베려븐께 꼭 그렇게 하쇼이.
북쪽의 있는 화가들이 저런 그림을 많이 그린다고 하든디....
내가 몽유도원도 그리고 나서 동양화로는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심혈을 다해서 그린 그림이요. 그림이 맘에 들랑가 모르겄소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림의 한쪽에 놓인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고
어떻게 저런 그림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그는 천재 였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챙겨 들고 그걸 품속에 갈무리 할 때 그가 한마디 더 했다.
“나중에 기자 아저씨도 애 낳고 그랄 것인디... 미술 학원에 보내믄....
그것이 뭔 애기들을 나중에 환쟁이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물을 관심 있게 유심히 보는 버릇을 들일라고 보내는 것이제...
그림 그것도 짜잔해 보여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요. 소질도 좀 있어야 하고
그라고 지가 좋아해야 되는디...
솔직히 말해서 내 스승님 하고 나하고 비교를 한다고
그라믄 나는 소질도 좀 있긴 해도 좆 빠지게 연습을 해서
그라고 스승 남농 선생님은 걍 그림을 즐겨 브렀다고 봐야제.
아무리 쐬빠지게 연습한다고 그래도 그림 그리는 작업을 재미로,
그라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한티는 못 당하요. 벌써 붓이 지나간 자리를 보믄 거침이 없어븐께.
그림을 접지 말고 그냥 신문지 하고 같이 말아서 가져가쇼.
그라고 저 참에 말한 몽유도원도는 내가 따로 신문지로 말아 놨응께 갈 때 가져 가쇼.
두 개를 뽑아 놨응께 알아서 하쇼.”
나는 몽유도원도를 따로 펼쳐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이미 그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림의 회수를 위해서보다는
이제 그를 보내야 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말없이 품안에서 그의 여권과 그리고 항공 티켓,
그리고 가방에서 달러 10만 불을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미국에 어머니 전화 번호 아시죠?”
“예.”
“지금 전화 하세요.”
“......”
“오늘밤 비행기입니다.
알라스카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갑니다.
오늘밤 9시 40분 비행기입니다. 어머님께서 미국에 오래 사셨기 때문에 아마
이곳 출발 시간만 이야기 하면 알아서 마중 나오실 겁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아마 도착 시간을 알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전화 하세요.”
“......”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머니 그림을 그려 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미국에서 쓰실 수 있게 정착금은 좀 준비 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도 이정도면 상당기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장사를 하셔도 좋고 어떻게 쓰셔도 좋습니다. 이제 가셔서 결혼도 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
“일단 오늘 오후 까지 호텔 경비를 계산 해 놓겠습니다.
나중에 어떤 여성분이 우석이 아저씨를 모시러 올 겁니다.
아마 늦지 않게 올 건데 오면 그때 함께 공항에 가시면 됩니다.
그분도 저희 직원입니다.
우석이 아저씨가 너무 달러를 많이 들고 나가시기 때문에 공항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나갈 수 있게 우리 직원이 도와 줄 겁니다.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되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
“왜? 믿어 지지 않아요? 꿈이 아니니까...
미국에 전화 하세요. 그 전화비 까지 내가 계산을 해야 하니까. 지금 전화 하세요.”
“진짜요? 오늘 뜨는 것이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밤입니다. 전화 하세요. 지금.”
“알았소이. 지금 엄니가 자고 있을 틴디... ”
그는 담배를 빼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뿌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호텔에서 가끔 전화를 했었던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교환에게 미국에 전화를 신청하고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며 그의 식구들과 통화를 했다.
처음에 좀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통화를 하다가 동생들이 전화를 받았는지
좀 명랑하게 웃으며 한국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어머니를 꼭 모시고
공항에 나오라는 당부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냉장고문을 열어 그 안에 있는 맥주 두 개를 빼서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이별주라믄 이별주고, 송별식이라믄 송별식인디...
내가 기자 아저씨 때문에 가리 늦게 팔자가 피는 갑소.
언젠가 점쟁이가 나한테 그랬는디... ‘7년 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올해는 귀인을 만난다’ 그랬었소...
그 귀인이 바로 기자 양반인 것을 인자 알겄네요.
내가 해 준 것이라고는 멩탕 그림 한 장 그려 드린 것 밖에 없는디...
마무리로 맥주 한잔 합시다. 고맙소.
그동안 이름도 없는 환쟁이 뒤치다꺼리 한다고 욕 봤고... ”
“우석이 아저씨도 수고 많았습니다.”
“나사 뭐 한 것이 있겄소? 첨에는 그냥 팔자려니 하고 있다가 나중에
호텔에 몇일 있다본께 이것이 장난이 아니다 싶어서 좀 신경 쓴거 밖에...”
그는 탁자에 있는 맥주를 하나 터서 날 주고 자기도 하나를 가져가 캔을 열었다.
그리고 건배하자는 모습으로 손을 허공으로 올렸다.
나도 우석이의 건배 제의에 캔 맥주를 들어 허공에 들어 올리고 몇 모금을 마셨다.
그러나 우석이는 단숨에 한 캔을 다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악수로 모든 걸 마무리 했다.
그는 나의 손을 힘 있게 잡으며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현 했다.
이제 내가 이방을 나가면 우석이라는 사람의 기억을 영원히 지워야 했다.
그게 오히려 먼 훗날을 위해 더 유익할지 몰랐다.
나는 우석이와 악수를 끝으로 어머니의 그림과 그리고 몽유도원도 모작이 담겨져 있을
신문 두루마리를 각각 챙겨 들고 그리고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호텔 로비로 내려와 그동안 우석이와 충무팀 직원들이 머물렀던
숙박비를 현금으로 계산 했다.
그리고 공중전화로 가서 114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한중사가 처리 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남겼다.
호텔에 직접 와서 우석이를 데려갈 것과 많은 달러가 있어서 검색대를 통과 할 때
문제가 발생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펴 줄 것을 요청 했다.
홀가분했다. 세상에 많은 천재 화가가 있겠지만
목포 유달산의 높이가 228미터가 아닌 219미터라는 달중이의 말을 더 믿는 기삼이처럼
난 세상에서 가장 모작에 뛰어난 천재를 김우석이로 믿게 되었다.
그런 그를 나는 지금 미국으로 갈수 있게 했다. 모작의 천재,
그 천재 화가는 애국이라는 큰 명제를 수행하고 사랑하는 부모 곁으로 떠나는 것이다.
나는 그의 미국행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며 호텔을 나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이슬이 바람을 만나니 서리가 된다는 "한로" ..날씨가 많이 차겁네요~~ 하늘은 높아지고 마음은 공허하게 느껴지는 가을!! 10월도 어느새 중순으로 접어 들어갑니다 보람찬 하루 되세요~~
햇살이 맑아 눈부쉽니다..일년을 꼬박 그림에만 매달리다 한 풀 꺽여 물러나 앉으니 정말 공허하기 이를데없습니다..성과나 결과에 연연하지말길 제 스스로 다짐하면서 가을이 주는 이 허전함을 맘껏 받아들여야 할까봅니다..글 감사히보았습니다 파도사랑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