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진산인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
내가 66 년도에 서울에 올라가니,전차가 도로의 한 가운데 다니고 있었다.
요금은 2 원 5십전,뻐스는 3 원,택시는 시발이라는 택시가 대중교통의 역활을 하였으며 ...
도로의 한중앙에 있던 '전철'은 지하로 들어가 '지하철로'....
지금은 지하철 1 호선을 중심으로 해서 2호선 , 3호선이 , 상계동의 수재민 촌의 4호선
연이어 5호선 ,6호선, 지금은 충청도의 천안까지, 강원도의 춘천까지 .....
편안하고 유유자적 하게 시외도 놀 려 갈 수가 있다. 지하철이 런던이 제일 시초로 발전을하고
그리고 일본의 '도쿄'가 이미 일제강점기에도 발전을 하였는데,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비하여
그렇게 뒤떨어진 수준이 아닌거 같다.
내가 서울을 막 올라 가서는 산동네의 슬럼가나 수재민의 이주 촌 등은 수도물이 공동수도로
물지게로 물을 길러다 먹었다. 예를 들어 마포 동화동 산8 번지 꼭대기 촌, 상계동의 수재민
집단 이주촌, 경기도 시흥군에 집단 이주한 시흥2동 수재민 촌 ,상계동의 노원마을,철도마을
며칠전 신문을 보니 노원구 중계본동의 104번지가 마지막 아프트 촌으로 변모 될 것 이라는
보도가 신문에 나왔다.
본인이 마포 고지대에서 살았는데, 머얼리 당인리 발전소가 바라 보이고,여의도는 미루나무로
주위가 이루어 있으며,가끔 모래가 하늘로 날으고, 헬리콥터가 지상에서 이륙을 하기도 하고...
내가 막 서울에 올라 갔을때는 한강이 여름철에 홍수로 인해 서부 이촌동의 제방 밑에 주거를
천막을 치고 생활을 한 세대들의 홍수 피해로 말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로 피난을 하고 ,마포구
망원동의 물이 한강으로 빠져 나 간 수문으로 역류되어 저 지대의 피해가 말이 아니었다.
송파구의 저 지대의 물의 피해는 연중 행사였다.. 나는 한강의 홍수가 늘어 나면 ,한강가로 물 구경을
가고 하였으며, 때로는 돼지나 가구가 떠 내려 오기도 하였다. 지금은 강원도의 청평땜이나 많은 땜을
만들어 수문을 조절하여 한강의 물의 수해가 없도록 하였으며, 한강의 개발로 이제는 한강이
서울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여름철의 홍수 피해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노원구의 수재민들의 집단 이주촌이나, 시흥 2동의 수재민 촌도 ,아니면 산동네의 슬럼가의
마을도 말금한 아파트 촌이 되었다. 그 야 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모를 하였다.
또한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고민거리가 쓰레기 문제이다. 본인이 현직에 있을때에는 '김포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반입을 받아 주지 않아 애로 사항이 많았다. 작금의 김포 쓰레기 매립장은 공원이
되어 시민들이 휴식공간이 되어 오고 있다. 그안에 분리수거를 하여 태울 수 있는 있는 물건은
쓰레기 소각장으로 직행하고 ,음식물은 음식물대로 버릴 곳으로 수거를 하여 버린다.
본인이 현직에 있을때에는 사무실에서의 공문의 기안을 수기로 하여 시행하였으며 ,나중에는 타자로
아가씨를 채용하여 공문을 발송하기도 하였으나,지금은 행정 전산화로 모든 정보와 사무가 전산 정보화로
신속한 행정의 써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일선 동사무소의 난방도 '나무를 소각하여 태우는 난로'을 이용
하는데,지금은 '스팀 난로' 여름철에는 시원한 에워컨을 사용하여 쾌적한 시민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
우리 공무원은 얼마나 '친절 교육'을 받는지 ? 정말 피가 마를정도로 교육과 훈련을 받은다.
뻐스의 전용차선을 서울시가 맨 처음으로 시행하여 그 효과가 좋으니,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게 되고
청계천의 고가 도로는 헐리고 그 지저분한 청계천의 거리는 맑은 물이 북악산에서 흐르고 비원등을 경유하여
한강으로 흐른다. 그리고 아현동 고가 다리도 다 헐리고, 도로 위에 있는 전신주도 다 지하로 들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살기 좋은 서울인가? 본인이 여기 고향의 나주나 화순에 와 보니 불편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회의 저변층에서 고생을하는 세대들이나, 노인층에게 얼마나 배려하고 장애인들의
삶에 지원을하고 보살 피는지 ? 우리들은 피부로 못 느끼지만 ....
워낙 조선사회로부터 신분계급에서 오는 불평등,친일세력등의 부의 불편등으로 인하여 이사회의
부의 편중으로 , 사회 저변층들 하고 괴리가 생겨서 그렇지 ......
해방 이후의 자유당 독재,군사문화의 등장으로 민주화의 길이 늦어서 그렇지,지금은 학교 앞의 탱크와
대학생들의 시위가 살아지고....
이제는 살기 좋은 민주주의 국가로 경제성장과 남북통일을 바라보는 살기 좋은 나라도 변모를 하고 있는것
같다. 해방이후의 세대로써 나주의 촌놈이 어렵살이 호남선의 무임승차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변화
의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서 함께 일을 하였다는 긍지로,지금은 노후에 고향에서 나의 삶을 보내고 있지만
항상 한양을 그리워하고, 나의 삶이 헛 되지 않았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기억력 짱이십니다. 우찌 그걸 다 ....ㅎㅎ
나주로 귀향하신 것 같습니다.
나주..살지 좋죠?
감사합니다
서울시 공무원을 평생을 했는데요
그리고 고향의 화순으로 귀향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50년 전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
미국에서 온 어떤 선교사가
그 당시 서울에 와서
그들의 가난을 보고
너무너무 울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서울의 발전상 만큼이나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함께
발전했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교육수준의 발달로 ,이제는 어디를 가나 시민들의 수준이 높습니다
여기 전라도에 내려와보니, 내가 서울 올라가기 전에 모습같은 것을 많이 봅니다
농촌의 나이가 많은 세대들은 .....
아직도 한글도 모르는 세대가 있으니 ...ㅎㅎ
상계동 중계동이
제 이웃사촌이지요.
요즘 그 쪽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올라가고 있어요.
마지막 남은 땅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맞아요.
만장봉님이 그리워하시는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노원구..
저도 같이 그리워하게 되겠지요.
먼 훗날엔.
베리꽃 방장님....
노원구에서 15년을 근무하면서 ,정년을하였으니 ,주말이면 맨날 수락산,도봉산 불암산....
정말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만장봉의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졸업 후 입사차 상경한 지가 어언 40년.
사진그림들이 80년 초반 조금씩 보이기도..
산 만 열씨미~
불수사도북
그러고 보니 5산 모두 강북 그지역 이네요.
소쇄원 죽녹원 까지는 가 보았는데..
그 어느 날 , 지나는 길손이 되어 .
저도 노원구에서 살면서 그인근 산들을 다니면서 ....
나의 보람있는 삶을 살았고, 건강도 아주 좋아 정년까지 ....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그리운 서울 .....
인왕산도 올라가고 ,어디를 가나 즐거운 서울이지요
정들었던 서울을 떠나서 ,이곳에서 보내고 있으니....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바라보는듯 합니다
장마때 저도 양화대교로 구경가곤 했죠
예전에는 제2한강교로 불리어 졌었지요
온갖것들이 떠내려갔던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한강의 홍수때 물구경을 갔지요
다 지나간 추억의 산물들.....
지금은 한강의 유람선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