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외 4편
-『장한철 표해록』에 들다
오승철
납읍천 도끼돌에 꿈이라도 벼렸을까
1770년 12월 25일, 못 가둔 그 꿈 하나
기어이 조천바다에 돛배 한 척 띄운다
믿을 걸 믿어야지 뱃길을 믿으라고?
소안도도 유구열도도 들락들락 들락키면
몇 명 또 바다에 묻고 만가 없이 가는 눈발
파도가 싣고 왔지, 청산도에 왜 왔겠나
꿈속에서 물 한모금 건네던 무녀의 딸
하룻밤 동백 한송이 피워놓고 돌아선다
그리움도 장원급제도 수평선 너머의 일
나도 야성의 바다, 그 꿈 포기 못했는데
단애를 퉁퉁 치면서 애월에 달이 뜬다
육박나무
수목원 가는 길에 군복무늬 나무를 본다
태풍도 넘겨놓고 4‧3 번(幡)도 섰는데
신새벽 6‧25전쟁 아버질 또 불러낸다
목총 들고 핫둘핫둘 사격은 고작 다섯 발
LST 함정 같은 제주항 주정공장
한가위 보름달마저 가지 말라 붙든다
칠십년 만에 대신 받은 <6‧25참전용사증>
팔씨름, 팔씨름만은 져본 적이 없다는
아버지 이두박근이 꿈틀대는 것을 본다
위미리 동백
간밤에 동백 지듯 섬 몇 개 내린 바다
인생은 일사부재리, 고향에 왜 왔냐며
한 때의 선거판처럼 낯 붉히며 피는 동백
광해우光海雨
누가 온 포구라고? 뱃고동도 없었다고?
한 무리 흰 갈매기 파닥이는 행원리 바다
저렇게 뜯긴 바다로 누가 건너 왔다고?
살아선 어등포구, 죽어선 화북포구
광해란 그 사내도 봄꿈 한 번 꿨던 게지
탱자울 술잔도 하나 벽을 치는 달도 하나
억울한 일 있으면 이 섬에 오지 말자
칠월도 초하룻날 끝내 뱉지 못한 그 말
시 몇 줄 섬에 남기고 혼자 가는 쏘내기야
물매화가 돌아왔다
예순을 넘어서야 철 드는 것 같다며
이 일 저 일 실눈 뜨고 쳐다보는 아내야
내 옷의 먼지 한 톨도 털어내는, 아내야
마을까지 흘러든 따라비오름 억새물결
그 물결을 거슬러 물매화가 돌아왔다
상아빛 브로치 달고 물매화가 돌아왔다
웅덩이가 없으면 오름이라 아니한다
이승에서 말 못할 첫사랑 있었는지
아직도 못 눅인 능선, 물매화가 돌아왔다
<시조 21> 202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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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외 4편 - 오승철
개밥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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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 23:4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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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시조위에서 오래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