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650)
제19장 백사자 9회
“자, 이리 와 앉아. 우리 둘이서 오늘 저녁에 한 잔 하자구. 취해서 혀가 꼬부라지도록 말이야”
“하하하...”
춘매는 기분이 좋아서 웃으며 그 잔을 받는다. 그리고 의자에 궁둥이를 내려 반금련과 동석을 한다.
마님과 몸종이 한 탁자에서 단둘이 잔을 주고 받으며 술을 마시다니, 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반금련은 이번 일이 충격적이었고, 무사히 결말이 나자 춘매가 더없이 고마웠던 것이다.
춘매는 아직 술이 약했다. 두 잔을 마시자 눈 언저리가 발그레 복사꽃처럼 피어올랐다. 한결 윤기가 도는 듯한 두 눈을 반질거리면서 서슴없이 입을 연다.
“마님, 고양이하고 연애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좋지, 색다른 맛이 있다구”
반금련도 주기가 꽤나 오른 터이라 조금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예사로 대답한다.
“어떻게 하는데요? 연애를...”
“연애를 어떻게 하다니, 그걸 모른단 말이야 그런 춘매는 아직 숫처녀란 말인가?”
“그럼 진짜로 남자와 관계를 하듯이 고양이와 그런단 말이에요?”
구체적으로 묻자 반금련은 좀 난처한 듯 대답을 안한다.
“고양이와 사람이 그렇게 될까...”
춘매는 미심쩍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그러자 반금련은 술잔을 들어 홀짝 한 모금 마시고는 상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어때, 춘매도 한번 고양이하고 자보겠어? 오늘밤에 말이야, 내가 백사자를 빌려줄테니까”
이번에는 춘매가 대답을 안 한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런 표정으로 망설인다.
“데리고 자보면 고양이와의 연애가 어떤 것인지 알 게 아니겠어”
“.......”
“생각이 있어. 없어”
“글쎄요...”
“글쎄요라니, 생각이 없지는 않다 그거지. 좋아,, 빌려주지, 한 번 같이 자보라구. 기분이 어떤가”
그날 밤 이슥해서 반금련은 고양이를 춘매의 방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자기는 방문에 살짝 붙어 서서 안을 엿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야웅야웅... 하고 칭얼거리는 듯한 소리만이 들리다가 조금 뒤에는,
“아이구 가만 있어. 급하기도 하네. 옷을 벗어야 할 게 아니야” 하는 춘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반금련은 바짝 귀를 곤두세운다.
잠시 후, 뭣이 어떻게 되었는지 냅다 그만 춘매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다.
“아이구 싫어! 나 몰라...”
“야웅 야아우웅...”
“아이고머니, 저리 비켜! 석 꺼져! 이것아! 이것아!”
사정없이 고양이를 두들기는 기척이 들린다. 그리고 내팽개치는 듯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며 방문에 와서 부딪는 소리가 난다.
반금련은 약간 놀라며 얼른 방문을 열어젖힌다. 고양이가 후닥닥 뛰어나온다.
“아니, 왜 그래?”
반금련이 방안을 들여다보며 춘매에게 묻는다.
“싫다구요. 뭐 그런 게 다 있어. 글쎄 자꾸 물잖아요”
“좋아서 그러는 거라구”
“싫어요, 싫어. 아이 징그러워”
춘매는 몹시 불쾌한 듯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흔든다.
“하하하... 궁합이 안 맞는 모양이지”
반금련은 방문을 쾅! 닫아주고, 고양이를 안아 올린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자기의 침실로 향한다.
심한 감기에 걸렸던 관가는 다행히도 폐렴으로 번지는 일 없이 차츰 좋아지더니 마침내 완쾌가 되었다. 이병아와 서문경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모인 여의와 수춘이도 무척 좋아했다. 오월랑을 비롯한 네 부인들도 집안의 한 가지 걱정을 덜었다는 듯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반금련은 맹옥루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자 무표정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다행이네요”
속으로는 기대가 빗나가서 몹시 실망스러웠다. 폐렴으로 번져서 깨끗이 뒈져 버리기를 은근히 바랐었는데 말이다.
반금련은 심사가 날로 꼬여만 갔다. 도무지 자기에게는 사는 재미라는 것이 찾아와 주질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서문경은 자기 방에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고, 아마도 그의 입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눈길도 어쩐지 전과는 다른 것만 같았다.
한번은 반금련이 고양이를 안고 맹옥루한테 놀러 가는데, 회랑에서 마주친 이교아가 묘하게 히죽이 웃으며 고양이를 유별나게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자네는 외롭지 않아서 좋겠어”
반금련은 귀밑이 화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반금련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없애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백사자를 없애다니,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이야. 안 되지, 안 돼”
반금련은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흔들었다.
남들이 알았다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없앤다고 해서 고양이와의 연애를 한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남들이야 뭐라든 까짓것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하고 반금련은 마음을 더욱 도사려 먹으며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물기까지 했다.
욕심같아서는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싶었다.
반금련은 처음에는 고양이보다도 개를 사서 키울까 하고 생각했었다. 고양이보다 개 쪽이 훨씬 데리고 즐기는 맛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개를 방안에서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아지 때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택했던 것이다.
집안사람들이 알게 된 것 같아서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고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삼가기로 했다. 그래도 염치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모(歲暮)가 다가왔다. 반금련은 새해의 선물로 고양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 자기와 애정이 통하는 상대는 고양이뿐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득 그녀는 사랑하는 나의 백사자에게 옷을 한 벌 해 입히면 어떨까 싶었다.
자기에게는 이제 백사자가 짐승이 아니라 애인인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같이 잘 때면 침상에서 백사자가 입고 있는 옷을 자기가 벗겨 주고...
“히히히... 그거 재미있겠는데...”
金甁梅
첫댓글 수간이라
수천년이 지난 얘기가
이럴 수가 있다니 의외입니다.
점입가경 포복졸도할 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