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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부탁하셨던 조사 자료들입니다. 이전 조사를 나갔던 에이전트들은 섹터A 근방에서 따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한 백발의 중년 남성이 서류뭉치가 든 봉투를 연비에게 전달했다. 연비는 남성의 뒤에 따라와야 할 4명의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쏘아붙였다.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전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아니, 분명 전했습니다. 전하긴 했는데….”
남성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연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부장 승진을 목전에 둔 그는 이번 일이 혹여 자신의 발목을 잡을까 지금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보고가 올라가면 그야말로 끝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어이, 다들 이만 출발하자고.”
발람은 요청했던 인력이 오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부와 본사의 에이전트 간의 충돌은 언제나 있는 일이였다. 입사 7년차 정도 되면 이정도 상황에는 익숙해져 있는게 정상이다. 그는 뒤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재건과 화장실 안에 있는 피아를 향해 외쳤다. 연비는 기분이 나빴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보아하니 부탁했던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지?”
“지부의 에이전트들과 본사의 에이전트들의 마찰은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상관없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려 하다가 일을 그르치지만 않아줬으면 좋겠네.”
피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일행에 합류했다. 발람이 황당하다는 듯이 피아를 쳐다보았다.
“피아, 당신 혹시 머리모양 바꾸려고 화장실에서 10분 동안 있었던 건 아니지?”
“머리가 길면 움직이기가 불편한 걸. 이렇게 올려야 편해.”
확실히, 긴 생머리를 올려 묶으니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 피아는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그 선글라스는 또 뭐야.”
“요즘 유행이야. 몰라?”
발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 여기가 관광지인 줄 알아?”
“관광객처럼 보이는 것 아니었어?”
“그것도 정도가 있지….”
확실히, 재건이 보기에 피아는 완벽한 관광객이었다. 실제로 이집트에 도착한 후로 1시간. 그들은 지부에 들리기 이전에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었다. 그때 보여주었던 피아의 눈은 너무나도 눈부셔서 묘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는 것 같긴 해. 조금은 점잔은 선글라스를 껴야하려나….”
선글라스 자체가 문제라고, 재건은 생각했다.
그들은 근처 렌트카 매장에서 차를 한 대 빌렸다. 8명이 탈 수 있는 승합차. 디자인은 볼 품 없었지만, 꽤 튼실해 보이는 차였다.
“안에는 에어컨도 있고…. 기름도 충분히 준비 해 뒀으니 이젠 출발해도 상관없겠지.”
발람이 주유소에서 기름 2통을 들고 오면서 말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피아가 준 선글라스를 낀 발람은 넷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근데, 꼭 선글라스를 껴야하는 이유라도 있나?”
“껴야지. 관광객처럼 보여야 하니까.”
저쪽은 관광객이 아니라 마피아라 생각해. 재건은 목 너머로 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음료수 캔을 땄다. 한 여름의, 그것도 이집트의 이글거리는 태양. 그 따가운 볕이 그를 새까맣게 태울 것 같아 정말 질색이었다.
“당신은 덥지도 않나봐? 양복 땀 엄청 날 텐데?”
“조사과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다.”
나도 조사과 출신이거든. 재건이 나오려는 말을 음료수와 함께 집어삼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보여야 할 녀석이 하나 없었다.
“그것보다 발람. 연비는 어디 있는지 몰라?”
“미스 화는 지금 근처 매점에서 음료수와 통조림을 사고 있다.”
“우와, 정말 본격적이네….”
피아가 서류 뭉치로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의 발람과는 달리 피아는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컬러가 들어간 선글라스에 검은색 캡. 푸른색 계통의 셔츠를 허리춤에 묶은 그녀는 지금 완벽한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발람과 피아를 두고 바라보면, 어느 귀한 집 딸과 그를 수행하는 수행원 같은 분위기였다.
“그쪽도 본격적이네….”
피아가 더위에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재건을 노려보았다. 평소의 신경질적인 모습보다도 10배는 더 짜증나 보였다.
“그러는 그쪽은 조금이라도 패션에 신경 쓰는 게 어때?”
“이쪽이 편하니까 상관없어.”
재건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 말했다. 그는 위 아래로 각각 반팔 후드 티와 청바지. 색은 검은색으로 통일 한 모양이었다.
“기다리셨습니다.”
연비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연비는 하얀색 원피스에 밀짚모자. 하얀 샌들을 신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인다.
“아, 어서…. 너 지금 뭘 물고 있는 거야?”
“성마 이넝고새서 아아두다이으 바겨하 즈르 끄매도 새가하이 모해흐이다.”
그녀는 입에 쭈쭈바를 3개정도 물고 있었다.
“그, 미스 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설명을….”
“설마 이런 곳에서 ‘와라 굴다리’를 발견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피아가 놀라서 재건에게 물었다.
“알아듣는 거야?”
“이 가축을 1년 정도 길러보면 척하면 딱 이지.”
발람이 연비가 들고 있는 검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속의 내용물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큼지막하게 한글이 적혀 있었다.
“아, 재건. 혹시 이게 뭔지 알 수 있을까?”
“그거 ‘와라 굴다리’… 야!”
재건이 급속도로 내용물이 사라져 가는 3개의 쭈쭈바를 연비의 입에서 강제 제거 했다. 그러자 연비가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짓입니까.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입니다! 샤베트와 같이 적당한 얼음 알갱이를 유지하면서도 먹기에 가장 용이한 시점. 그래요, 천일재우입니다!”
“바보야, 시기적절이겠지! 그리고 너의 그 쭈쭈바 이론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어. 중요한건 네 녀석이 사온 것이 모두 ‘와라 굴다리’라는 거다, 이 멍청아.”
연비가 눈에 불을 켜며 재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재건을 정확히 응시하고 와라 굴다리의 효능을 설명했다. 그렇게 신념에 찬 얼굴은 재건이 연비와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와라 굴다리’에는 비타민 c, 칼슘, 칼슘, 칼슘, 칼슘, 철분,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당분, 수분….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만 하나만 있으면 우리는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됩니다.”
“너 방금 칼슘 4번 말했지? 그리고 비타민 c랑 탄수화물 이외에는 전혀 쓸모없는 거잖아. 그 이전에 왜 아이스크림에서 단백질섭취를 기대해야 하는 거냐?”
그녀는 단언했다. 지금의 그녀는 홈쇼핑 쇼호스트와도 억양과 모습이 흡사했다.
“그것 이 아이스크림이 만능이기 때문에.”
“그게 무X단물이냐.”
“바르면 상처나 기계의 고장도 낫습니다.”
재건이 이마에 손을 얹고 말했다. 황당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진지하게 받아치지 마라….”
한국어를 잘 모르는 피아와 발람은 멀리서 멍하니 둘의 싸움을 지켜 볼 뿐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둘의 싸움에서 자신들이 이해한 부분은, 저 악마의 아이스크림을 당장 환불 받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임무 내내 사막의 불쾌한 열기와 함께 저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아이스크림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들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분명 다단계의 늪에 빠져버린 불쌍한 중생들처럼 저 아이스크림 광신도를 미친듯이 퍼뜨리겠지. 그리고 온 유럽은 마치 흑사병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 마침내 세계최대의 아이스크림 교단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화는 조기에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 피아와 발람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다녀오지. 그대는 미스 화를 진정시켜주게.”
“당신, 지금 나를 사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거지?”
발람이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화사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연비의 가까이엔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이러한 결정은 그대보단 내가 신체능력이 뛰어나니, 이 상황을 조금 더 빨리 종결지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네.”
논리 정연한 것 처럼 보이지만, 결론은 자신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피아가 황당해하며 짜증스러운 얼굴로 연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발람이 뭔가 거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포켓 속에서 마법석을 꺼내 드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러한 연비의 행위를 모른 체하고 발람에게 말했다.
“그럼, 신속한 해결 부탁해.”
“알겠다.”
미안, 발람. 나도 죽고 싶지는 않아.
조만간 이 일대는 불바다가 되겠지. 피아는 빠르게 간이 결계를 펼쳤다.
맨 처음 당한 것은 역시 발람이었다. 그가 달리자마자 연비는 눈에서 기괴한 빛을 내며 마력석에서 마력을 끌어 모아 얼음 덩어리를 발람을 향해 날렸다. 그 거대한 것에 피할 겨를도 없이0 후두부를 강타 당하고 발람은 기절. 그 이후 같이 이 일을 공모했다는 죄로 피아에게도 한 덩어리가 직격코스로 날아갔다. 결계의 설치를 막 끝낸 피아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얼음 덩어리에 맞고 한 40m정도 날아가 근처 가로수에 머리를 박고 기절. 그리고 남은 건 재건과 연비의 대치상황. 그들의 피 튀기는 전쟁 뿐 이었다.
“야, 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재건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질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까지 만든 것인가. 그는 와라 굴다리의 성분표를 유심히 살폈다. 그곳에는 아주 조그마하게, 그래 한글 2002로 치면 0.0000000000000000000000001pt정도로 작게 ‘양귀비 추출물 3%’라고 적혀 있었다. 그게 원인이냐!!
“캬오오!”
연비의 이성의 끈이 끊어 졌음을 알리는 저 정체불명의 포효. 일단 저 상태에 돌입하면 어찌 막을 방도가 없다.
“아, 정말…. 그럼 이거나 먹고 얌전해 져라!‘
재건이 들고 있던 쭈쭈바 3개 중 하나를 공중에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연비. 그녀는 과감히 하나를 버리고 재건이 쥐고 있는 두 개를 향해 돌진했다.
저 상태에서 손익 계산까지 한 거야? 재건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머지 하나도 마저 던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 정말 최후의 순간, 쓰러진 발람이 쥐고 있는 쭈쭈바 봉지에 다가가기 전까지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필살기. 지금 그는 100원 동전을 넣고 비행기를 고르자마자 끝판 보스와 만나 폭탄 2개를 써버린 플레이어와 같은 심정이었다.
자 이제 어쩐다. 일단 연비는 저 쭈쭈바를 잡기 위해 자신의 체중을 감소시키고 하늘 높이 뛰겠지. 그럼 나는 가속마법을 쓰고 달려서 저 봉지를 집어야 한다. 단 4초. 4초 만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저 쭈쭈바가 내려오는 속력과 연비가 올라가는 속도를 봤을 때, 연비가 쭈쭈바를 집을 추정 시각은 2초 뒤. 그렇다면 남은 2초 만에 자신을 충분히 끝낼 수 있다. 평소의 그녀라면 불가능 하겠지만…. 저 괴물 같은 판단력과 순발력을 가진 귀축버전 연비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이 손에 쥐고 있는 필살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작전의 성패가 갈린다.
연비가 저 쭈쭈바를 하나 잡은 시점에서 나머지 하나를 던지면 연비는 망설이지 않고 나를 공격한다. 왜냐하면 먹다 남은 하나보단 새것이 잔뜩 든 봉지가 훨씬 이익이 크다. 둘 중 하나를 구할 수 없다면 연비는 분명 이득이 큰 쪽을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둘 다 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은 ‘둘 다 구할 수 없는’상황을 연출해야 되겠지.
그러기 위해선….
재건이 작전의 플롯을 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재건은 간단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주위에 모여 있던 마력이 천천히 발과 신체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는 목표물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이내 발의 언저리에 모였던 마력이 빛을 내면서 주위의 공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마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일반적인 대기보다 100배는 응축된 공기. 또한 몸 주위에 모였던 마력도 빛을 내며 천천히 사라졌다. 발아래와는 달리 재건의 몸에는 별 다른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흐읍!”
그가 숨을 삼키고 그대로 돌진했다. 발아래의 응축된 공기의 구슬이 폭발하면서 재건의 몸은 흡사 기차와도 같은 가속도를 얻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당연히 몸이 으스러졌겠지만, 재건은 방금 신체 강화를 해 두었기 때문에 조금의 고통만 느낄 뿐, 별다른 몸의 이상은 없었다.
재건이 달렸다. 앞으로 200m, 남은 시간 3초.
연비가 쭈쭈바를 잡았다. 남은 시간 2초.
귀축 연비가 고개를 돌리려 할 때였다. 그녀의 바로 밑에 쭈쭈바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 것을 잡고 1초 이내로 재건을 끝장낸다. 1초만 있으면 자신의 보물에 손을 대려는 건방진 인간을 처리 할 수 있다. 그녀의 코에서는 흡사 용의 콧김과도 같은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걸렸다! 재건은 몸을 돌렸다. 어차피 자신의 몸은 가속도 때문에 쭈쭈바 봉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 이 상태로 그녀를 향해 마법을 시전한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마력이 급속도로 모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조잡하긴 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재건의 손 위에 놓여 있었다.
“죽어라, 이 괴물아!”
그렇다고 그녀가 죽을 일은 없다. 애초에 그는 이 마법을 공격의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녀가 쏠 얼음덩어리를 막을 방도로 사용 한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주위의 수분을 냉각시켜 그것을 공격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쭈쭈바가 녹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 파해법은 간단하다. 불을 쏴서 얼음을 녹인다. 물론 수분 때문에 불 자체의 공격력도 급감하기는 하겠지만, 방어만이 목적이라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재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불과 얼음덩어리는 서로 충돌했고, 거대한 수증기와 함께 연비의 모습이 가려졌다. 이로써 그녀의 마법은 정확도를 잃었다. 모든 것이 재건의 예상대로 되어갔다. 목표지점에 도착한 재건은 발람이 쥐고 있던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는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무리한 탓인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쓰러져 있던 재건이 연비와 피아, 그리고 발람을 차례로 깨웠다. 불과 한 시간 전의 기억이 송두리째 날아간 그들은 서로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열사병 때문에 쓰러지신 겁니까? 정말, 다들 체력이 없으시군요.”
“그러는 너도 쓰러져 있었잖아.”
“아….”
재건이 목을 쥐어 잡고 좌우로 힘주어 움직였다. 두둑두둑. 뼈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런가…. 그런데 목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발람이 뒤통수를 누르며 말했다.
“나는 뒤통수가 아프군.”
피아 역시 뒤통수를 누르며 말했다. 정말 아픈 모양인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덕분에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콧등 아래로 조금 흘러 내렸다.
“나도 그래.”
그러자 연비도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마에는 한줄기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저는 배가 아픕니다만….”
모두 쓰러지면서 다친 걸까요. 연비는 그렇게 말하고 승합차에 탑승했다. 그때였다.
“아, 그런데 너. 사오라고 했던 음료수랑 통조림은 어떻게 했어?”
연비가 승합차에 발을 올리고 멈췄다. 연비는 재건을 향해 돌아보고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불행히도, 저도 잘 기억은 나지 않는군요. 아마 저 곳에는 음료수는 있지만 통조림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돌아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재건이 눈을 반쯤 감고 연비에게 말했다. 연비를 의심할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그럼 돈은?”
“돈은 발람씨가 가져가시면서 휘발유를 더 사자고 가져가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그때 쯤 세분이 쓰러지긴 하셨습니다만….”
“그랬던가? 전혀 기억이 없네.”
재건은 여전히 연비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연비가 그 눈빛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바로 지금 쓰는 말이었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지?”
“전혀. 결단코 없습니다.”
재건은 입을 다셨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다. 재건은 어쩔 수 없이 이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수상한데…. 뭐, 됐어. 가다가 들러서 사 놓죠.”
재건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발람이 그런 돈은 받은 적이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곧바로 수긍하고 다들 자동차에 짐을 실었다. 그러던 도중, 피아가 마지막에 연비를 바라보았다.
“너, 괜찮아? 입술이 파란데….”
“괜찮습니다. 조금 어지러울 뿐입니다.”
“얼굴도 조금은 창백한 것 같고….”
연비는 피아의 걱정이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걱정에 답했다.
“조금 몸이 안 좋은 것 뿐 입니다. 체력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에이전트로써 실격이군요.”
마법사니 뭐니 해도 아직 어린아이이다. 피아는 점점 더 연비가 걱정스러워졌다. 하지만 피아는 연비에게 다가가려다가, 그녀에게 풍기는 묘한 분위기에 움직이던 몸을 멈췄다. 그녀는 괜한 참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앞좌석에 올라탔다. 연비는 가만히 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사막. 이글이글 거리는 아지랑이가 약간은 음산하게 보일 뿐이었다.
연비는 피아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녀는 잠시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재건이 잠시 드는 현기증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구어어어어.”
승리를 확신했던 재건은 문득 자신의 등 뒤가 서늘한 것을 느꼈다. 그 연비가 바로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 그는 놀람보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무, 무슨! 어떻게….”
“설마내가아무생각없이당신의장단에맞춰춤을추고있었다고생각했던건가요?”
뒤에서 느껴지는 입김. 이보다 더 무서울 수 없는 기계음과 같은 억양.
“당신은두가지를간과하고있었습니다.첫째는저도당신과똑같은마법을쓸수있다는점.둘째는당신이하는생각을저도할수있다는점.”
“무, 무슨 의미야?”
“당신은저의공격을막으면그것으로끝이라고생각하셨겠지만저에게는그것이노림수였습니다.왜냐하면제가준비한퍼포먼스를가려줄아주좋은연막이었으니까요.저는당신이한것과똑같은수법으로당신에게다가갔습니다.”
재건이 등줄기의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솔직히 이정도 되면 입은 물론이고 다리가 풀릴법하지만, 필사적으로 버틴다.
“하,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4초정도 걸릴 텐데….”
“저는맨처음마법을통해저의체중을감소시켰습니다.그점을잊지않으셨으면좋겠군요.”
그런건가. 연비는 무게를 감소시켜 평소의 근력으로 3,4배의 점프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3,4배의 추진력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깨달았으면이제돌아가실시간이십니다.지옥과천국.어느쪽으로보내드릴까요?”
“이곳에 머물면 안 될까?”
그녀가 자신의 머리와 턱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고개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
“안. 돼.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광기어린 웃음. 그리고 자신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끝으로 재건의 의식은 날아가 버렸다.
후일 일명 ‘쭈쭈바 케이스’라고 명명된 이 참극이 끝난 것은 구석에서 남아있는 쭈쭈바를 다 먹고 연비가 정신을 차린 이후였다. 연비는 빠르게 증거를 인멸하고 자신의 복부를 스스로 가격해 기절했다.
그렇게 승합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승합차 내부는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칫, 다들 너무 예리하다니까.”
연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음산한 목소리를 바로 옆의 재건은 물론, 피아와 발람 역시 듣지 못했다.
작가말
안녕하세요. 시간을 맞추지 못한 노크라입니다. OTL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껜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저번화를 읽어주신 분들, 언제나 조언 주시는 실키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4초 전투씬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상황 자체는 본편 스토리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 화를 통해서 이 세계관에서의 마법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는 조금 이해하셨을려나요? 생각했던 것보단 쉽죠?(그건 나만의 생각.) 조금은 웃시면서 넘어가셨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 화가 이번 편에서의 마지막 쉬어가는 편입니다. 이후 이어질 모든 편들은 오로지 살인사건의 수사라는 하나의 소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아갈 생각입니다. 가끔가다 나오는 농담따먹기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 ㅋ!
그럼 언제나 하는 말씀 드리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충고, 조언, 격려나 칭찬, 의문점들 모두 접수 받습니다. 여러분의 의견 하나하나가 글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화 부터 확인해주세요!(야.)
그럼 이만 줄입니다. 이상! 노크라였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일부러 다시 들어오셔서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ㅋ.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