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SNS 규제와 금지 사이 / 김준혁
최근 몇몇 국가에서 청소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을 법으로 제한하는 사례가 들려오면서, 국내에서도 논쟁이 슬슬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회를 밝히자면 반가운데, 5년 전부터 관련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선 청소년 SNS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무조건 외국에서 법을 만들었으니,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는 명확히 정리하고 가자. 첫째, 청소년 SNS 규제를 해도 되는가? 둘째, 청소년 SNS 규제를 시행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는가?
두 가지 논의에 대해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규제는 있어야 한다. 아마 여기에서 물음표를 떠올리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규제 여부 자체가 논의사항 아닌가?
왜 규제가 있어야 하는지, 관련된 문제를 차근차근 정리해 보자.
우울과 불안 그리고 사이버불링과 포모
먼저, 과학적 증거다. 청소년의 SNS 사용은 우울·불안 증상과 작지만 유의한 양의 관련을 보인다는 근거가 축적되어 있다. 2024년 메타분석은 98개 연구, 10만 명 이상의 자료를 종합해 일반 SNS 사용이 우울·불안과 약하게 관련되고, 문제적 SNS 사용이 우울·불안·수면 문제 및 낮은 안녕감과 관련됨을 보였다[1]. 물론, 이것이 무조건 임상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SNS를 사용하는 모든 청소년에게 정신과적 질환이 발생한다는 것은 아니며, 그 효과는 작다[2].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히 SNS와 청소년 정신 건강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다요인에 걸친 영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SNS는 청소년이 이런 플랫폼을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위험 요인일 수도 있고, 보호 기작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요인은 주로 수면 방해, 사회적 비교, 사이버불링,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SNS 기반 건강 정보 오용이다[3, 4]. 특히 취약한 집단은 십 대 여성으로, 이들은 신체 이미지와 관련하여 불가능한 이상이나 강박에 노출될 수 있다[5-7].
즉, SNS는 청소년기의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청소년 정신건강과 작지만 유의한 부정적 관련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련성은 단순히 사용 시간만으로 설명되기보다는, SNS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온라인 경험에 노출되는지, 그리고 개인이 기존에 어떠한 취약성이나 보호요인을 가졌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된다[8]. 최근에는 SNS 사용과 청소년 자살 위험의 관계를 다룬 연구도 발표되었는데, 이 역시 일방향적이거나 단순한 인과관계로 규정하기 어렵고, 위험을 증폭시키는 경로와 예방적·보호적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고 보고하였다[3].
정리하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다. 첫째, 청소년의 SNS 사용은 우울과 불안의 약한 증가 또는 높은 증상 수준과 관련된다. 둘째, 문제가 되는 SNS 사용은 우울, 불안, 수면 장애와 연관되어 있다. 셋째, SNS 사용이 무조건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복잡한 요소가 관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굳이 법을 만들거나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들을 위하여, 다음의 논의로 넘어가 보자.
‘나’의 자리에 ‘우리’를 놓는 한국인
규제의 윤리와 관련하여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나는 낡은 다리 앞에 서 있다. 나는 그 다리가 망가졌으며, 심지어 누군가 건너려 한다면 다리가 무너져 그 사람이 분명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옆을 누가 지나쳐 다리를 건너려 한다. 나는 그 사람을 막아야 하는가?
우리는 보통 ‘막아야지, 그걸 왜 놓아둬?’라고 생각하지만 서구에선 조금 생각이 달랐다. 자유주의 윤리의 전통적인 답은 이것이다. 내가 타인의 행동을 제한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를 막아선 안 된다. 단, 나는 그에게 저 다리가 망가졌으며 당신이 건너면 무조건 죽을 것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게 문화권의 차이라서 그렇긴 할 텐데, 사실 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다. 서구에선 저 상황을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본다. 아무리 타인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만큼 타인의 자유도 중요하다. 따라서, 그가 이 모든 것을 알고 그럼에도 자유의지로 행한다면 나 개인으로선 그를 제한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이 문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집단의 관점에서 본다. 저 이야기의 ‘나’에 우리는 보통 ‘우리’를 놓고 생각한다. 사회 일반으로서 ‘우리’는 저 사람이 자신을 해하는 일을 막아야 하며, 그것은 심지어 타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구 또한 집단이 개인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하여 어느 정도 행위의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술과 담배를 제한하거나 조절하는 정책을 편다. 더 극명한 사례로는 자동차 안전벨트나 오토바이 헬멧 강제가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 모두 다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할 수 있다.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 모든 위험을 고려하고 알고 있지만,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자신을 너무 속박하는 것 같아서 죽는 것보다 싫다고 말한다면, 그를 안전벨트에 묶어 놓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려면 어떤 행위가 정말로 개인의 선택이기만 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다른 압력이나 타인의 간섭이 없이, 정말 자유로운 선택을 성인이 내린다면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한 경향성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청소년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물론 모든 선택이 다 온전히 ‘자유롭다’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나, 적어도 ‘더 자유롭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첫째, 개인이 사회경제적 압력이나 주변의 강제 속에 놓인 경우다. 둘째,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않은 경우다. 예컨대 누군가 “나는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하니 말리지 말라”라고 말할 때, 사실 그가 경제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또한, 누군가 “나는 자유롭게 앞으로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다”라고 말할 때, 그가 인지 능력에 문제 또는 왜곡이 있는 경우 그를 단식 투쟁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즉, 사회로서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할 필요가 있음을 계속 배우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자유’일 경우, 그가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때다. 그리고 어떤 행동이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며 그가 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닐 경우, 사회는 그것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 SNS는 정확히 여기에 들어간다. 앞의 논문이 보인 것은 전체적인 경향일 뿐, 극단적인 사례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데도 전체적 경향으로 우울함이나 불안이 증가한다면, 극단적인 경우엔 피해를 볼 수 있는 취약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청소년의 경우, 물론 연령차에 따라 다양하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으나, 아직 우리는 청소년이 성인과 같이 온전히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기엔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성인보다 또래 집단의 압력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청소년 SNS 사용은 가능한 해악과 외부 압력에 의한 행위라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따라서, 해당 행동에 대해 사회가 제한을 가하는 것은 타당하다.
규제는 금지가 아니다
따라서, 논의는 규제나 제한 여부에 있어선 안 된다. 지금 논의해야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규제할 것인가다. SNS가 술·담배와 같이 청소년에게 전면 금지해야 할 대상과 같은 수준에 놓여 있지 않다면, 그에 맞는 규제 방식이나 접근을 검토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게임 셧다운제’라는 실패 사례를 가지고 있다.
외국이 청소년의 SNS 계정 생성을 막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일부 타당한 접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계정을 만들지 못하면, SNS를 보는 것은 못 막더라도 SNS 계정을 통한 직접 대화가 만들어 내는 추가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방식이 그것인가? 예컨대 정말 ‘콘텐츠’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계정 생성을 막는 것은 완전한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다.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해당 서비스들은 게시물이나 동영상을 사용자에게 노출하니까.
이제 시작인 논의에서 무엇이 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나는 이에 대해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여 규제의 방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은 그 테두리를 만들고, 실제 내용은 당사자가 직접 검토하거나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여러 영역에서 해결책으로 도출된 바 있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만이 스스로 그 대상이 가진 문제와 위험을 깨닫고, 그를 제어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SNS 규제 논의의 핵심은 청소년을 온라인 세계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이 이미 살아가고 있는 그 세계를 어떻게 더 안전하고, 덜 해로우며,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에 놓인다. 규제와 금지는 동일하지 않다. 어른들이 그들의 선택을 대신 빼앗는 것은 SNS의 반대편에서 동일하게 강제를 행사하는 일이기에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사회와 규제는 청소년이 타인의 압력과 플랫폼의 설계에 휩쓸리지 않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참고문헌
1. Ahmed O, Walsh EI, Dawel A, et al. Social media use, mental health and sleep: A systematic review with meta-analyses. J Affect Disord. 2024;367:701-712.
2. Odgers CL, Jensen M. Adolescent mental health in the digital age: facts, fears, and future directions. J Child Psychol Psychiatry. 2020;61(3):336-348.
3. Jaycox LH, Murphy ER, Zehr JL. Social Media and Suicide Risk in Youth. JAMA Netw Open. 2024;7(10):e2441499.
4. Weigle PE, Shafi RMA. Social Media and Youth Mental Health. Curr Psychiatry Rep. 2024;26(1):1-8.
5. Conte G, Di Iorio G, Esposito D, et al. Scrolling through adolescence: a systematic review of the impact of TikTok on adolescent mental health. Eur Child Adolesc Psychiatry. 2025;34(5):1511-1527.
6. Vincente-Benito I, Ramírez-Durán MDV. Influence of Social Media Use on Body Image and Well-Being Among Adolescents and Young Adults: A Systematic Review. J Psychosoc Nurs Ment Health Serv. 2023;61(12):11-18.
7. Choukas-Bradley S, Roberts SR, Maheux AJ, et al. The Perfect Storm: A Developmental-Sociocultural Framework for the Role of Social Media in Adolescent Girls' Body Image Concerns and Mental Health. Clin Child Fam Psychol Rev. 2022;25(4):681-701.
8. Nagata JM, Lee CM, Hur JO, et al. What we know about screen time and social media in early adolescence: a review of findings from the 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Study. Curr Opin Pediatr. 2025;37(4):357-364.
김준혁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수정 2026-06-30 09:16 등록 2026-06-30 09:00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65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