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양산 사저 앞 ‘욕설 집회’와, 맞대응 성격으로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 ‘맞불 집회’가 결국 관련법 개정 등 법에 의한 해결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사저 주변에 문재인 비판 단체 시위로 인한 이지역 주민들의 피해 호소 현수막이 걸려져 있다.
문 퇴임 후 지난 한달여간 여야가 발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률(집시법) 개정안은 7건이다. 국민의힘 의원이 2건, 민주당 의원이 4건, 그리고 기본소득당 의원이 1건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안(구자근·박대출안)은 현직 대통령의 집무실 주변 집회를 막자는 내용이고, 민주당안(정청래·한병도·박광온·윤영찬안)은 사실상 전직 대통령의 사저 주변의 집회를 막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기본소득당(용혜인안)은 집회 예외지역을 아예 없애 어디서든 집회가 가능하게 하자는 입장이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21조)에 규정된 기본권이다. 다만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헌법 37조)이 있다. 현행 집시법(11조)은 이를 근거로 “국회의사당, 법원ㆍ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ㆍ대법원장ㆍ헌법재판소장ㆍ국무총리 공관에서 100m 이내”를 집회 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 관련 시설이더라도 집무실이나 사저(私邸)는 집회금지 구역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과 현재 거주하는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가 이에 해당한다. 현직이 아닌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역시 집회가 가능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러한 법 규정을 근거로 진행되는 ‘합법시위’는 점입가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은 퇴임 직후인 지난달 15일 페이스북에 “주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확성기 소음과 욕설이 함께하는 반지성이 작은 시골 마을 일요일의 평온과 자유를 깨고 있다”며 시위대를 직접 비판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엔 “시위자들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모욕을 자행했다”며 시위 단체를 고소했다. 고소장엔 “살인 및 방화 협박도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민주당은 이를 “양산 집회를 옹호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민주당의 집시법 개정안 4건 중 2건이 윤 대통령의 발언 바로 다음날인 지난 8일에 발의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서초동 윤석열 대통령 자택 건너편 인도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경남 양산 문재인 사저 앞 시위에 항의하는 '맞불 집회'를 하고 있다.
야당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도 지난 14일부터 윤 대통령의 서초동 자택 앞 맞불 집회로 사실상 '보복'을 시작했다. 이들은 연일 확성기와 북, 꽹가리 등을 동원한 욕설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아파트 입구엔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아기가 잠을 못 자고 울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악화하는 상황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양산 시위'에 제동을 걸었다. 한 총리는 지난 16일 양산에서 문재인을 예방한 뒤 “금도를 넘는 욕설과 불법시위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돼야 한다”며 공개 경고를 날렸다.
그러나 한 총리의 경고 와중에도 시위대는 “왜 보수 정권의 총리가 전 정부의 수장을 만나느냐”며 바닥에 드러누워 한 총리의 차량을 막아섰다. 특히 일부는 이런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후원을 해달라”는 노골적 영리행위를 벌이기도 했다.
16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사저 앞에 보수단체 시위자가 문재인을 예방하고 돌아가는 한덕수 국무총리 탑승 차량 행렬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과격한 시위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여야가 사실상 '전·현직 대통령 구하기'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17일 통화에서 “퇴직한 자연인인 전직 대통령과 그의 사저가 헌법에 규정된 공공복지와 국가안전 등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특히 개정안 중 ‘전·현 대통령 사저’ 등 특정한 장소를 명시해 집회를 금지시키는 방식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특정 장소가 아닌 비방이나 상업적 목적 등 성격에 따라 집회를 제한하는 방식의 입법은 시도해볼 여지가 있지만, 비방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은 “욕설집회와 맞불집회라는 참상에 대한 근본 원인을 제공한 주체는 팬덤을 활용해 상대에 대한 노골적 비방과 비난을 일삼아온 기존 정치권”이라며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 없이 사실상 전·현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집시법 개정이 어렵다면, 집회 소음 기준을 규정한 시행령을 우선 고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