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다음카페 밀리토리네 히데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불리는 구병모 작가의 소설,
'아가미'를 소개하기 위한 글입니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께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소설 속 인물은 제 마음대로 캐스팅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실제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의 나열로,
상당 부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아이의 피부는 정오의 햇빛을 받아 곳곳이 불규칙하게 반짝거렸는데, 그건 훗날 이 아이가 제대로 된 비늘과 함께 철갑상어의 옆구리에 수놓인 금빛 바늘땀 같은 줄무늬를 갖게 되리라는 예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가미를 가진 존재, 곤
.

그는 곤을 '고기새끼' 라고 불렀다. 어쩌다 기분이 좋을 때나 '금붕어'였는데 그럴 때는 부르는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곤의 아가미를 처음 발견한 인간, 강하
곤은 자신의 이름이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으며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나,
자신을 주워온 노인이 그렇게 부르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애초에 함께 지내는 강하는
그런 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적도 없었다.
사실 강하는 입이 거칠고 곤을 대할 때도 꽤 난폭한 편이라 곤은 강하를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곤은 이틀 걸러 한 번씩 밟혀 도마 위 활어처럼 퍼덕거리고
수시로 지느러미가 찢기며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도
그가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그에게로 가서 미늘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마리 금붕어가 되었고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강하는 곤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어투나 태도와 달리
종종, 다른 면을 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오지랖만 안 떨었어도 이런 일 없지.
하지만 한밤중에 굳이 기어나가 이 애새끼를 주워 온 게 누군데.
그래놓고 이제 와서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보내자고?"
"너야말로 있는 대로 귀찮다는 티를 냈으면서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귀찮은 건 맞는데 내버리자고는 안 했어."
어떤 날은 곤을 감쌌고,

강하는 낮은 수온에서도 충분히 견디는 물고기를 굳이 읍내 대중목욕탕까지 데리고 갈 필요가 없다고 차츰 여기게 됐다.
이 빛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귀찮은 일에 엮일 위험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옛날 엄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눈부신 것, 빛나는 것, 귀한 것, 좋은 것은
숨겨놓고 혼자만 아는 거야.
남하고 나누는 게 아니란다.
어떤 날은 강하가 대하는 곤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말을 떠올렸고,

저 빌어먹을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새끼!
정작 강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호수의 바닥, 그 깊이였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과,
언젠가는 곤이 정말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 떼들 사이로 깊이깊이 헤엄쳐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날은 화를 냈고,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이 여자랑 뭘 어쨌는지 말 안 해?"
"보면 알잖아."
"애초에 네놈을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갈라버려야 했어."
"갈라서, 저며서, 다져버려야 했어."
"빌어먹을 고기 새끼 주제에."
또 어떤 날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불안정하나 안락한 삶의 연속에서
어느 날 곤은 청천벽력 같은 사고와 맞닥뜨리게 되었고,

"절대 이러려던 게 아니었어. 미안해. 미안, 미안……."

강하는 랜턴을 쥔 한 손이 떨리는 걸 다른 손으로 지그시 잡아 눌렀다.
"너도 다쳤어?"
곤의 사고는 강하에게 있어서도 큰 죄였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 물어오는 곤에게 강하는 말했다.

"…물론 죽이고 싶지."
작은 불꽃이 그대로 사그라지는 바람에
곤은 그 말을 하는 강하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그 사고로, 강하의 곁을 떠나게 된 곤은
어느 날, 강하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데,
곤, 당신 이름 있잖아요.
그거 할아버지 아니고 강하가 지어준 거래요.
그렇게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 글자뿐인 이름을,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곤, 왜 그래요? 고개 좀 들어봐요.
잠깐, 어디 가는 거예요?
또 그렇게 무턱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고요. 저기 사람들 있잖아요.
-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
강하와 곤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요.
곤은 다시 강하를 만날 수 있을까요?
소설 특유의 아름다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라도 전달 되었는지 걱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소설로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가미를 갖게 된 소년과 소외된 이들의 눈부신 잔혹동화,
'아가미'였습니다.
첫댓글 내옆에있잔아
배우 잘어울린다.. 아가미 존잼
와 글 너무좋다 읽어볼까
캐스팅 찰떡이잔아.... 대박 ㅜ
도서관열면 빌려봐야겠다!
캐스팅 너무 잘어울려..ㅜㅜ
아가미 보고 마지막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 나오더라
너무 좋아 책읽다 잘 안우는데 진심 눈물남
캐스팅 대박이잔아.............너무 잘어울려
헐 나도 읽어볼까...영업당했어
이거 사놓고 안읽었는데 읽어봐야지
또 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왕자를 두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 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아기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 생활하면서 은연중에 많이 떠올리는 책 구절인것 같애
아가미 너무 좋아..... 게시글 진짜 애정 느껴져ㅠㅠ
유ㅏ 진짜 대박
짤이 진짜 미쳤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