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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가톨릭 신자인 이모의 집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모의 권유로 열한 살 때 세례를 받았다.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에 발표한 『하얀 사람』(白ぃ人)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고 일본의 대표적 문학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엔도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유럽의 〈신의 세계〉를 경험한 〈나〉가 결국 동양의 〈신들의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자전적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는데, 그 6개월 뒤에 『백색인白い人』을 발표하였고, 또 6개월 뒤에 『황색인黃色い人』을 발표했다. 그리고 백색인으로 1955년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아덴까지』의 작품 의식을 기반으로 한 『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아이(황색인)』 역시 엔도가 유럽과 동양의 종교문화의 차이로부터 겪은 방황, 갈등의 요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백색인〉과 〈황색인〉은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악과 선의 대립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신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 서구인 〈백색인의 세계〉에서도 그 신을 믿는 인간과, 그 신을 부정하는 인간이 상호 존재하고 있으며, 이 둘 역시도 항시 대립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설혹 신을 부정하며 신과 격렬히 투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투쟁을 통해서 이르게 되는 어떤 섭리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은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66년에 『침묵』(沈默)을 발표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며, 종교소설과 통속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문학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예수의 생애』,『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1996년 9월 29일 서거. 東京 府中市 가톨릭 묘지에 잠들어 있다.
[침묵 책이야기 배경***********]
때는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정문에 붙여진 날이었다. 루터는 교회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성경에 맞지 않는 면벌부 판매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루터의 글은 독일을 넘어 이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흐름의 탄생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개혁의 흐름은 가톨릭 내부에도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가톨릭은 내부의 부정부패들을 개혁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움직임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에스파냐 출신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Ignatius de Loyola)는 이를 위해 신의 사자로서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제자 6명과 함께 작은 모임을 만들게 된다. 이른바 예수회(Societas Jesu 또는 Jesuits)의 탄생이었다. “보다 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정신 아래 예수회는 군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격한 규율과 굳건한 결합력을 자랑하였다. 예수회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반종교개혁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해외선교였다. 특히 14세기 이후 포르투갈, 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국가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자 교단은 이를 이용하여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등과 같은 非그리스도교 지역에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소설 『침묵』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최초의 가톨릭 전파는 에스파냐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데 하비에르(Francisco de Xavier)로부터 비롯된다. 1549년, 인도 고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서 일본의 가고시마에 상륙한 그는 2년여의 활동으로 1500명의 개종자를 얻었으며 ‘동양의 사도’라고 불렸다. 이후 해외 문물에 관심을 가졌으며 사원세력을 견제하려고 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보호아래 피게레이드(M. de Figuereido), 프로이스(Luis Frois), 발리냐노(A.Valignano) 등의 선교사가 교토, 나가사키 등의 대도시에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 1580년대까지 일본인 가톨릭 신자의 수는 20만 명에 이르게 된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의 패권을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또한 16세기 초만 해도 가톨릭에 우호적이었다.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선교사들의 활동이 무역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히데요시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나가사키, 교토의 상인들이 해외 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핵심 참모들인 고니시 유키나가, 타마야마 우콘 등이 모두 가톨릭 신자였기에 오사카 성 아래에 토지를 주고 성당을 짓도록 허락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1587년 규수 정벌 이후에 히데요시는 돌연 하카다에서 파테렌(신부를 뜻하는 Pater의 일본식 용어)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목은 선교사들이 악마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일본인들을 홀리고 있으며 일본의 종교와 사원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가톨릭을 탄압한 진짜 이유는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는 가톨릭 세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것이 가장 표면화 된 사건이 바로 산 펠리페 호 사건이다. 1596년 산 펠리페 호는 태풍으로 인해 일본에 표류하게 된다. 히데요시는 당시 일본 법률에 따라 배에 실려 있던 모든 물자를 압수하고자 하지만 산 펠리페호의 선장은 이를 거부하며 "스페인은 세계 강국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여 현지인을 개종시키고 점령할 것이다."라고 선포한다. 이에 격분한 히데요시는 선박에 있던 선교사를 포함해 모두 26명을 1597년 2월5일 나카사키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니시자카 언덕에서 처형한다. 이것이 이른바 일본의 첫 순교인 26성인 순교 사건이다.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배교를 맹세했다는 것이다.(p.7)
소설 『침묵』의 첫 머리는 이렇게 서늘하게 시작한다. 페레이라 신부는 33년 동안 나가사키에서 선교 활동을 해왔으며 주교라는 최고 중요한 직책에 있었다. 그는 어떤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을 지켜왔다. 1614년 추방당했을 때에도 신도들을 버릴 수 없다며 잠복하여 감동적인 선교보고서를 보냈던 그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배교했다니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신학교 시절 페레이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로드리고 신부는 이러한 소식을 믿을 수 없어 그의 동지들과 함께 직접 일본으로 가고자 한다.
일본으로 가는 여정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로드리고는 강한 신앙과 확신으로 이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선교의 중심지인 마카오에 도착한다. 그 당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영토였다. 그곳에서 발리냐노 신부를 만나 일본의 사정을 듣고 그곳에 있던 일본인 기치지로와 함께 일본으로 입국하는데 성공한다. 먼저 로드리고는 그의 친구 가르페와 함께 나가사키 근처의 작은 어촌 마을인 도모기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숨어 살면서 신도들의 고해를 들어주는 한편 그곳에서의 미사를 주관한다.
그들은 100평도 안 되는 밭에 겨우 보리나 토란을 재배하고 있는 가난한 농민들로서, 논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바다 쪽을 향한 산중턱까지 경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근면성에 감탄하기보다는 비참한 생활의 고통스러움이 찡하게 가슴에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도 나가사키의 부교오는 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 농민들은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을 소나 말처럼 일하고 소나 말처럼 죽어 갔겠지요. 저희 종교가 이 지방 농민들에게 물밀듯이 확대되어 간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으로 취급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의 인자함에 동요되었던 것입니다.(p.50)
처음 일본에 있으면서 로드리고는 도모기 마을의 비참한 현실에 마음 아파한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곳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이내 그를 도왔던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끌려가서 수형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동지 가르페마저 정부군에 발각되어 거적에 둘러싸인 채 바다에 던져져 죽고 만다. 그런 상황을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있던 로드리고의 마음속에 한 가지 강렬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이와 같은 처참한 상황에서 ‘주님은 왜 침묵하시는가’였다.
'당신은 어째서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까?'라고, 하나님의 침묵을 원망하며 신부가 연약한 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당신을 위해 만든 마을조차 불타 버리도록 당신은 방관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사람들이 추방당할 때도 당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지 않고 이 어둠처럼 다만 침묵하고 계셨던 것입니까? 왜, 어째서? 왜인지 그 이유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는 당신이 시련을 주기 위해 악창에 걸리게 했던 욥처럼 강한 인간이 못 됩니다. 욥는 성자입니다만 신도들은 가난하고 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고통을 이제 더는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신부는 기도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어둡고 차디차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p.151)
데카르트 이후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근대철학은 인간 이성의 완전함을 줄곧 주창하였지만, 그것이 인간 본성의 연약함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였다. 인간의 연약함은 이기심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이타심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서 고통 받을 때, 그로 인한 고통은 어떤 고문보다도 괴롭고 끔찍하다. 로드리고 역시 잡혀 와서 고문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받은 고문은 모키치나 이치소우처럼 자신의 육체에 해를 가하는 고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배교하지 않으면 그의 신도들이 구멍 매달기라는 끔찍한 고문으로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것이었다. 아나즈리(穴吊り)라고 불리는 구멍 매달기 고문은 실제로 일본에서 가톨릭을 박해할 때 사용했던 고문이었다. 거적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거꾸로 매달아 귀 뒤에 조그마한 상처를 내고 오물이 잔뜩 들어있는 구덩이에 머리를 처박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고문을 보면 당시 시대적 상황이 얼마나 인권과 거리가 멀었는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소름끼치도록 절감하고는 한다.
그 과정에서 로드리고는 나가사키에 있던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완전히 일본에 동화되어 나가사키 봉행(奉行) 이노우에 밑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면 부인하는 저서를 저술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실망한 로드리고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는군. 마카오는 고아에 있는 수도원에서 이 나라의 선교를 구경만 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 데우스와 오오히(大日)를 혼동한 일본인은 그때부터 우리의 하나님을 그들 식으로 바꾸고, 그런 다음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 언어의 혼란이 없어진 뒤에도 이 굴절되고 변화된 신앙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단 거야. 자네가 아까 말한 포교가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서도,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아닌 그들의 굴절시키고 변화시킨 하나님만을 믿고 있었던 거지."(p.232)
실제로 일본의 잠복 기독교인(카쿠레 키리시탄)들은 박해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선교사가 오지 않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신앙은 토착화되고 변질되는 양상을 보인다. 소설에서는 페레이라와 이노우에의 입을 빌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페레이라의 말은 한국의 개신교 교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역시 기독교를 우리식으로 변형시키고 굴절시켜 받아들이지 않았나. 무분별한 선교와 교회건축,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정작 그리스도의 사랑을 등한시하지 않았나. 현재 한국의 교회는 양으로나 규모로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본질은 교회도 그리스도도 아닌 다른 무언가에 대한 신앙에 근거했던 것이 아닌가. 이는 오늘날에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로드리고 신부는 배교를 선택하게 된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과정은 “주님은 왜 침묵하시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딜레마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거기까지 성난 듯이 단숨에 말해 버린 페레이라의 목소리가 차츰 약해졌다.
"나도 그랬었지. 저 캄캄하고 차디찬 밤, 나도 지금의 자네와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행위란 말인가? 신부인 나는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쳤어.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페레이라는 순간 침묵을 지켰지만 곧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
밤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어둠의 덩어리였던 마루방에도 엷은 하얀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해 분명히 배교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신부가 손으로 얼굴을 덮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스도는 배교했을 것이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이상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물러가 주세요. 멀리 가 주세요."
신부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빗장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벗겨진 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하얀 아침 햇살이 흘러 들어왔다.(p.265)
처음 로드리고 신부가 일본 땅을 밟은 것은 주님의 뜻을 실현하고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수많은 자신의 신도들이 자신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당신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피가 흘렀다.”(p.210)는 일본인 통역의 비난은 로드리고 신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p.267)
성화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 로드리고는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와 고통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느 한 쪽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페레이라의 말처럼 “그 누구도 하지 않은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p.265)였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는 그러한 아픔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았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p.295)
로드리고의 배교가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혹자는 이러한 로드리고의 말이 자신의 연약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들의 비판은 어떻게 보면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순교한다고 한들 그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이름 한 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부합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고 모진 박해 끝에 순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짓을 한 것이라고 비난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 역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박해받았고 끝내 십자가 끝에서 순교하셨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일반 사람들은 쉽게 갈 수 없는 험난한 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며 목숨 걸고 선교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순교 정신은 본받고 기념해야 할 일이지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목숨을 버려가며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든 인간적인 괴로움을 견뎌가며,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가며 선교를 하겠다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당장 시리아, 이라크, 북한 같은 곳으로 가서 선교하라고 한다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 고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로드리고나 모키치, 이치소우 같은 사람들보다는 살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을 배신하고 어떠한 진흙 구덩이에 뒹굴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약하다”고 부르짖는 기치지로에 더 가깝지 않을까?
처음 로드리고는 기치지로를 혐오하였지만, 배교하고 난 이후에 자신이나 기치지로나 결국에는 별 다를 바 없는 신세임을 깨닫고 그의 고해를 들어준다. 민주주의 사회가 정착된 뒤 우리는 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어떤 이념을 내세우면서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惡이라고 쉽게 구분하지만 막상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이 惡이고 善인지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교황청의 가톨릭 신부들은 페레이라와 로드리고를 교회의 배신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교회이고 무엇을 위한 율법인가? 교회의 율법이 인간의 생명에 앞선다면 그 율법은 과연 善인가? 예수님이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교회조차 자신의 율법에 얽매여 자신들을 善, 자신과 반대되는 것들을 惡이라고 규정지었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공평과 정의, 선과 악이라는 것은 애초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며 인간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 선과 악은 결국 인간이 그렇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예수를 비난하고 박해했던 바리새인들과 유대 제사장들도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페레이라 신부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 본질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이념의 틀을 모두 걷어 들이고 나면 결국 ‘인간’만이 남는다. 고고한척 하지만 결국에는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은 매한가지인 불쌍한 인간만이 남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한없는 연민만이 남는다. 이게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나.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묻는다. 왜 신은 침묵하시는가? 내 생각은 그렇다. 신은 침묵한 게 아니라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배교한 로드리고나, 배신한 기치지로에서 보여지듯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구질구질하고 슬프기에, 불쌍하기 때문에 침묵하면서 말없이 속으로 슬픔과 연민을 삼키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박해한 이노우에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시종일관 그의 악랄함과 교활함을 비추지만 어떻게 보면 그도 시대의 희생자이다. 다른 곳도 아닌 일본이었기에, 정부가 가톨릭을 용인하지 않았기에 결국 그도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이란 이런 나라요. 어떻게도 할 수 없소.”(p.290)라는 그의 말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역시 현실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누구의 잣대로 누구를 벌하고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노우에의 말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오늘날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내외를 차지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중국의 교회와 신자들에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이다. 심지어 한국의 어느 한 시인은 일본에 살면서 이런 말까지 했다.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또 하나의 세금을 내는 것이다”라고. 그만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선교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수는 적지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릿쿄 대학과 같은 명문 미션 스쿨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은 4~500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히 큰 변화다. 여전히 주님은 침묵하실 때가 더 많고, 우리는 그러한 침묵에 회의와 원망을 보낼때가 더 많다. 여기에 대해 아직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개인적으로는 고민이다. 하지만 최대한 자신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주님이 어떤식으로든 응답하시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출처]침묵(엔도 슈사쿠, 홍성사)|작성자Clum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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