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힘 대하20:21-
기적적으로 암을 치유 받았다는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 소견으로는 이제 병원 치료는
무의미하니까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님 저는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 애써왔습니다. 주일 한 번 어겨본 일 없고, 교회 봉사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왔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위암에 걸려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합니까?” 기도한다고 하나님 앞에 서면 이런 불평과 원망을 절규로
쏟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언젠가
들었던 담임목사님 설교 한 부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드리는 기도를 우선적으로 들으십니다. 그래서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려면
기도는 감사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원망을 멈추고 기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아니 딱 하나 감사할 것은 감사하려고 몸부림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놀랍게도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할 것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 용서 받은 것,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 여기까지 순탄하게 살아왔던 것, 좋은 교회 만나 신앙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뜨겁게 기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감사로 기도가 깊어지던 어느 날 온 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병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간증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감사가 암을 고쳤습니다. 감사가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복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감사의 힘을
경험하지 못하고 삽니다. 아니 감사의 힘조차 모르고 삽니다.
성경을 보면 감사하라는 명령이 가득합니다. 몇 가지만 열거해
보겠습니다.또한 감사로 예배드리며(시 50:14),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우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골 3:15) 나아가 감사에 깨어있고(골 4:2), 끊임없이 감사하라고(살전 2:13)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고(살전 5:18),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로 기도드리고(빌 4:6), . 감사하는 말을 하고(엡 5:4), 감사로 찬송하라(엡 5:19)고 항상 감사하고(엡
5:20),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사에 담아
놓으신 놀라운 힘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그 놀라운 힘을 받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의 힘은 무엇일까요? 감사하는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힘은 도대체 어떤 힘일까요?
1.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
대하 20:21-2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남왕국 유다 여호사밧 왕 시절에 모압, 암몬, 마온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유다를 공격해왔습니다. 이 때 여호사밧 왕이 모든 신하들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가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셔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국적인 감사운동을 전개하라는 것입니다.
왕이 그 말씀대로 전쟁터인 드고아로 나가서 백성들과 군대와
함께 큰 소리로 감사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바로 오늘 본문 1절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랬더니 바로 그 감사의 함성이 시작되자마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준비하신 복병이 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복병의 공격을
받고난 후 저들은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 괴멸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손에 피한방울 묻히지 않고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전리품을 거두고 나서 한 골짜기에 모여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했던 골짜기의 이름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브라가 골짜기는
바로 찬양의 골짜기요, 감사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기를 맞은
그 골짜기가 브라가 골짜기가 되게 하십니다.
사실 인생은 우리 힘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벅찹니다. 우리는 수많은 인생의 고비를
지나면서 뼈저리게 이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시도록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사밧이
감사했던 것처럼 그리고 오늘 본문의 시인이 감사했던 것처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점은 예수님께서도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눅
9:16을 보면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니까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감사부터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믿고 미리 앞당겨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음가짐을 바꾸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건과 환경에 사로잡혀 불행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마음가짐을 바꾸면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돈 베이커 목사님이 쓴 [감사 요법](Thank you
therapy)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감사가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감사해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미남미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가난해도 부자 이상 행복해 질 수는 있습니다. 감사하면 장애가 있어도 정상인보다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얼굴이 못생겨도 미남미녀보다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감사요번이라는 책을 보면 두 가지 예가 나옵니다. 첫째가
캐롤이라는 여자의 예입니다. 이 여자는 32세이지만 몸은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만합니다. 다리도 없고 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을
누구보다도 밝게 살아갑니다. 그녀가 어떻게 그런 몸으로 그렇게 인생을 밝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까요?
캐롤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런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자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감사가 내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해 주었습니다.”
둘째가 안드레아 보첼리라는 남자의 예입니다. 이 사람은 열 살 때 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력을 잃고 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력을 잃은 것을 슬퍼하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슬픔을
이길 수 있었고,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다행히 이런 상황마저도 감사할 수 있었다.” 그는 시력을 잃고 난 뒤 더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결국 그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된 뒤에 너무도 노래가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에 한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나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킵니다.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나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환경을 뛰어넘어서 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 마음이 환경에 갇혀 삽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 가난 속에 마음이
갇혀 있어서 늘 불행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 장애 속에 마음이 갇혀 있어서 늘 불행합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 무지 속에 마음이 갇혀
있어서 늘 불행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우리의 마음이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감사의 힘으로 환경을 뛰어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이미 나이 60이
넘었습니다. 몸에 지병이 있어 늘 불편합니다. 게다가 감옥에서 옥사하거나 순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당시 그의 조건과 환경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고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를 보면 한결 같이
감사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옥중서신 네 곳을 차례로 보겠습니다. 엡 1:16을 보면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빌 1:3을 보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골
1:3을 보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몬 1:4을 보면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가 그의
마음을 그가 맞고 있는 견디기 힘든 조건과 상황을 뛰어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우리 마음이 조건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를 변화시켜줍니다.
3. 관계를 강화시키는 힘
심리학에서 ‘공동의 ’힘(communal
strength)이라는 말을 씁니다.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자주할수록 관계가 더 친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만족감과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이 책임감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돼 그 관계를 강화시킨답니다. 이렇게
관계를 강화시키는 힘을 공동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감사가 서로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공동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인간관계론의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 4년 과정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평을 듣는 책이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평을 듣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요약 정리해 보면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타인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말하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언제나 내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말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칭찬과 감사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칭찬해 주고, 그 사람의 호의에 대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실패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상대방의 단점을 보고 비판하려
하고, 호의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보면 리더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질 가운데 첫 번째가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칭찬하고 감사를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인간관계를 강화시켜줍니다. 감사는 우선 내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보게 해 주고 상대방을 향해 손을 내밀게 해 줍니다. 다음으로 감사는 상대방의 마음 문을 열게 해 줍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긍적적으로 보게 해 주고 또한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서로를 행해 열린 마음을 갖게 하고, 서로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고,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게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귀는
중입니다. 남자의 친구가 여자가 별로라고 말했고 그 소리를 여자가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여자가 대꾸합니다. 이 때 여자가 어떤 말을 해야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질까요? “그래 내가 별로라서 실망했어!”라고 말한다면 남자의 마음이 편치 않아 두 사람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내가 별로라서 미안해”라고 말한다면 남자는 그런대로 관계를 계속 유지해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별로인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면 남자는 여자를 더 사랑스럽게 보게 되고 그 관계는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관계를 강화시켜주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강화시켜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로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감사는 관계를 강화시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감사는 공동의 힘을 발휘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감사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한해의 감사를 묶어 드리기 위해 추수감사절 예배로
모였습니다. 이 시간 감사의 힘을 새롭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감사함으로 이 감사의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고,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강화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 감사의 힘을 얻어서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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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
목사 주일설교
제목 : 우리에겐 감사뿐입니다
본문 : 역대상16:34-36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는 사실 오늘뿐만 아니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감사>입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도 우리에겐 주님의 송아지가 잘 죽는지 모르겠습니다. 환경이 조금 변하거나
곤란스러운 일이 생기면 제일 만만한 것이 주님의 송아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환경이 변한다
할지라도 감사만은 변하지 말아야 하고, 비록 병이 들었다 할지라도 감사만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가 병들면 내 인생의 전부가 병든
것입니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 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월등한 감사의
조건을 점점 더 부여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의 경우입니다. 하나는 무지해서 감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감사를 알아야 할 때 알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지의 죄요, 은혜란 마땅히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죄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감사가 있어야합니다.
과거도 감사한일이었고, 현재도 감사한일뿐이며, 또한 미래에 주어진 일들도 생각할수록 전부가 감사의 조건들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감사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 때부터는 불평과 원망이 못살게 만듭니다. 불행의 연속일 뿐입니다.
어디를 보나 나무랄 데가 없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는 한가지 숨겨진 큰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썹이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이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어요. 남자도 여자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해 주었고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눈썹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여자는
자기만의 비밀을 지키면서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노심초사(勞心焦思)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따뜻하기만 한 남편의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란 세월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상승일로를 달리던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된 것입니다. 둘은 길거리고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배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오후였습니다.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리어카의
연탄재가 날아와 여자의 얼굴은 온통 검정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고 답답했지만 여자는 혹시나 자기의 비밀이 들켜 버릴까봐 얼굴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여자는 어찌 할 줄을
몰라 당황했지만 뿌리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내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내의 눈에는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까지도 남편은 닦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물까지 다 닦아준 후 다정하게 웃으며 남편은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은 남편이 아내의 눈썹부분만은 건드리지 않고 얼굴의 다른 부분을 모두 닦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랑한 남편이 너무 고맙고, 현재를 눈물겹게 살아가는 남편이 고맙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사랑할 것 같은 남편의 배려에
뜨거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란 할수록 깊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감사란 할수록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제가 감사했으면 오늘은 더욱 감사한 일이고, 내일은 더 큰 감사가 기다리고 있는 법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것 중에 마일리지
서비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은행 카드, 전화요금, 심지어 화장품가게나 슈퍼마켓에서도 일정 금액 이상 사면 스티커를 주거나 카드를 발급해 주고
일정금액이 적립되면 특별상품을 준다는 누적보상제도(累積補償制度)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 주부들은 이러한 마일리지카드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누적되면 될수록 좋은 것이 있고, 누적되면 오히려 손해인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과로, 폭음,
폭식, 미워하는 마음, 편견, 나쁜 습관, 과도한 소비는 누적될수록 손해입니다. 그러나 누적 될 수록 좋은 것이 있습니다. 많이 웃으면 다른
사람의 머리 속에 좋은 인상이 누적됩니다. 많이 걸으면 건강이 누적됩니다. 칭찬이 누적되면 점점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마음에 교양과 품위가 누적될 것입니다. 약속을 지킬 때마다 신용이 누적됩니다. 무엇보다도 감사가 누적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마일리지의 특징은 처음 몇 번으로는 별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이용해야 그 점수가 누적되어 특별선물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감사의 마일리지 카드에는 얼마만큼의 포인트가 적립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만큼의 감사가 누적 되어져갑니까? 먼저
감사는 하지 않으면서 은혜만 바라는 것은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기도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법궤라고도 부른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 돌비와 만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 법궤는 이스라엘의 전부일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 때에는 이 언약궤가 70여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한 차례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는 감격했고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무나 감격해서 감사하는 노래를 부릅니다"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우리는 오늘 이 다윗의 감사 속에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총체적인 감사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다윗의 감사는 과거의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세상에 과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누구나 지난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돌이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날 속에서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들이 더 많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각자 뼈아픈 일들만 생각하고 원망과 불행했던 일들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감사하는 사람이란 이런 유의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다윗은 참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사울로부터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놓고 나서 감격의 감사노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구원하사 만국 백성 가운데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를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어떻습니까? 마땅히 내 세울 것이 없는 과거라고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분명히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다음 다윗은 현재의 은혜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를 감사합시다"하면 "나는
감사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볼멘 소리를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도 없고 자식들도 잘 되는 일이 없는데 무슨
감사 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감사에 극심한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내 생활을 가로막고 있어서 거저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요즘 성인병 때문에 많은 고생들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인병은 혈관이 상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통풍... 모두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병입니다.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가지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을 쇠퇴시키지 않는 방법입니다. 근육에 탄력이 있으면 피의 흐름이 원활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뇌의 통제를 받게 되는데 면역체의 기능 역시 뇌의 명령을 받아 통제됩니다. 그리고 뇌를 활성화시키려면 플러스 발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싸매고 걱정에 빠지면 뇌 속에 모르핀 분비가 중단됩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이 건강하고 정신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120-130세 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 영원한 생명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일종의 동맥경화입니다. 감사가 막히면 중병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현재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즉 "구원의 삶"입니다. 오늘 내가 "주안에서 살고 있다"는 이것이 축복입니다. 생각하면 감격할 일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현재 삶의 어려움, 환경의 좋지 않음 이 모든 것들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이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밀턴>은 말년에 소경으로 살았습니다.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어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에디슨에게 하나님은『발명왕』으로, 밀턴에게는『실낙원』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고 상급입니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감사의 상급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부인이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갔습니다. 이웃집 부인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지?"하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어른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오늘 현재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감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옛날을
돌아보면 그때 그 환경, 그 삶이 어떠했습니까? 가난, 무지, 초라함이 그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오늘의 삶을 상상이나 했습니까?
그런데 지금 까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우리의 지난날이 이렇게 왔듯이 장차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앞날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없이
살면 그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그래서<칼빈>은 임종시 고통 속에서도 "오늘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암송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세계는 위대한 것입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서울의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 가면 지은이의 이름도 없는 무명의
詩가걸려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만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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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감사의 비결
성경본문 : 합 3:17-18, 골 3: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