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마을에서 당신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내가 당신을 가까이 만나게 된 건 전주 최명희문학관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몸 깊숙한 혼의 말을 맞닥뜨린 순간, 나는 내리치는 벼락에 감전된 듯했습니다. 그것은 내 그리움의 정수리에 얹힌 고갱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순례자의 마음이 되어 내 안의 꽃심이 된 당신의 그리움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해질녘 혼불문학관 너른 마당에서 가랑비 내리는 혼불마을을 아득히 내려다보는 당신을 만납니다.
꽃심 땅에 젖어 들기 위해 하룻밤을 자고, 아침 안개가 드리워진 문학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문학관 안에서 먼저 당신의 육성을 만납니다.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바위를 뚫고 새기는, 한 마디 한 마디’ 단단한 모국어의 육성에서 당신의 강인하고도 애절한 혼불의 꿈틀거림을 봅니다. 아릿한 뭉클함이 가슴을 툭 칩니다. 이토록 절실한 염원이면 반드시 세세(世世)에 뿌리 내리고 이어져 또 하나의 근원을 이루겠다 싶었습니다. 진즉에 당신을 만나 뵙지 못한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장례까지 흘러가는 한 생애와 세시(歲時)마다 벌이던 풍속의 흐름을 디오라마로 봅니다. 모두 흘러가는 세월 속 쓸쓸한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의 등을 쓰다듬듯 바람은 부드럽고 안개가 조금씩 걷힙니다. 이런 날이면 매안이나 고리배미, 거멍굴 여자들도 삶의 신산스러움을 기대고 싶어 호성암을 찾았겠습니다. 지극히 곱고 선연하게 종이꽃을 만들었던 도환스님. 나는 당신이 도환스님을 내심 사모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천왕상에 담긴 정신을 설명하는 도환스님 말씀에 온종일 그대로 흡입되어 버린 당신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네 마장 남짓 되는 길은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절터만 남은 호성암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먼 너울이 밀려오는 듯합니다. 여기서라면 제생(諸生)만물의 천추락만세향의 원(願)이 다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바위에 암각된 마애불은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인지 근심어린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있습니다. 난세에 이 불상을 암각하여 주불로 삼고 천추락만세향이 올 때까지 천년만년 꽃심 땅을 굽어보고자 함이었을까요. 합장을 올리고 발길을 돌리니 입구 물 고인 돌확에 비단개구리 몇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호성암을 지키는 생염불이 요것들이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다 내려오니 벌써 점심때가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혼불마을을 다음으로 남겨두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후 나는 다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매화낙지 매안에서 고리배미, 거멍굴을 거쳐 노봉마을로 노선을 잡았습니다. 이 발걸음은 당신이 이끄는 것이겠지요.
지금은 상신마을이라 부르는 매안 동구에 서면 마을의 모양이 마치 손 큰 만두할머니가 커다란 만두를 빚어 오므려 놓은 것 같습니다. 비질을 한 듯이 단정한 마을을, 뒤로 우뚝 솟은 산이 호위하듯 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정갈한 집들이 이어진 골목길을 걷고 싶었으나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달갑지는 않을 것 같아 동구로 다시 나와 마을을 조망해 봅니다. 이른 봄 푸른 소나무 위로 매화가 눈처럼 흩날아 드는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곳을 무릉매원이라 했겠습니다. 오고가는 이의 발길이 절로 이 매화낙지로 들어와 열매를 맺고 싶었겠고요.
팻말을 따라 소로로 접어들어 인화리에 섰습니다. 이곳이 고리배미라고 당신이 말합니다. 고리 모양 같다던 당신의 말씀처럼 마을의 형상도,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마을 입구가 달라진 것일까요, 솔숲은 입구에서 마을 연못을 지나 돌아가 있는데 민촌에 아깝다던 이 적송들은 그 위용이 성글어지고, 비오리주막과 송풍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솔숲 육각정에 앉아 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한참이나 바람이 전하는 솔향을 맞으며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봄바람은 차별없이 천지에 가득 불어오지만 살아 있는 가지라야 눈을 뜬다’. 새삼 당신의 그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생명의 싹은 결국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이지요? 천지를 합일하듯 벌름거리는 적룡의 숨결처럼 내 안의 삶의 의지라야 세상을 오롯이 만나게 될 것임을 생각합니다.
비오리주막에 가서 당신과 시원한 탁주 한 잔 하고 싶은 날입니다. 불그레한 얼굴로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나와 힐끗 볼 것 같습니다. 마을 가운데로 구불구불 난 길을 올라가니 복판에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웃고 이야기합니다. 고리 밖으로 나와서 보니 비스듬히 앉은 집들이 석류알처럼 박혀 있습니다. 120여 호나 되었다던 고리배미에는 정미소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고, 동네 연못도 있어 마을의 입지와 자존심을 짐작케 합니다.
안내인 없이 옛 혼불자리를 정확히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는 그저 당신과 함께 하는 그곳이 바로 그 자리라 여겼습니다. 헤매던 끝에 비탈진 샛길로 접어들어 무산교를 건너니 근심바우 안내판이 나와서 몹시 반가웠습니다. 잡목잎에 가장자리가 가려진 바위는 당신 말씀대로 수굿이 고개를 숙이고 근심에 잠긴 듯했습니다. 바위 이름이나 형상, 마을이름마저 거멍굴에 살던 사람들의 억센 비애가 느껴집니다. 천민촌이라서인지 빈 집 두 채만이 마을의 흔적을 말해 줄 뿐 살림집들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백정 택주네, 대장장이네를 지나 옹구네, 평순네, 공배네, 산 밑 춘복이네 집을 눈으로 그려볼 뿐입니다. 이 골에서 그악스럽게 살아가던 그들, 당신은 이 거멍굴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투혼을 절절하게 그려냈습니다. 어디선가 아직도 그들의 생명력이 치열하게 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오기를 기원하면서 노봉마을로 향합니다.
종가의 위엄을 떠받들 듯 아랫몰에서 원뜸까지는 오르막길인데 높은 담장 밖으로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고개를 내밀고 반겨줍니다. 기응과 기태의 집을 가늠하며 오르는 길은 어릴 적 외가 마을을 걷는 것 같아 낯설지가 않습니다. 원뜸으로 갈수록 나무와 잡풀이 우북한 빈 집이 더러 보입니다. 당신은 세월 따라 생기는 집들이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종가의 솟을대문 앞에 섰습니다. 아득한 매안의 벌판 끝에 멀리서 달려온 산능선들이 어깨를 걸지 않았다면 노적봉의 정기는 동해로 빠져들었을 것 같습니다. 일으키되 욕심내지 않았던 청암부인의 골기들이 둘러친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종가의 앞뜰은 여유롭습니다. 붙살이하는 사람들의 많은 서성거림과 웃음을 받아주던 장소였을 것입니다. 터만 남은 노봉서원은 한 시대의 정신적 소산과 훼절의 흐름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남길 정신적 터전은 무엇일까요.
종가와 청암저수지 앞에 서면 청암부인을 닮은 당신이 더욱 생각납니다. 저수지 공사를 벌일 때 부인이 말했지요. ‘백섬지기가 고을을 염려하고 문중의 장자로서 어른 노릇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는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뭇 사람들의 천추락만세향을 염려한 것이겠지요. 노적봉의 정기를 저수지에 모아 뭇 생명들에게 퍼올려서 어떤 고난이 와도 살아가게 하고 이어가게 하는 일 말입니다. 청암부인이 재산을 털어 저수지를 파듯 당신은 모국어로 그리움의 새암을 파고, 청암부인이 저수지물로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내듯 당신은 모국어의 붓대로 뭇 생명들의 혼불을 밝혀냅니다. 당신이 청암부인의 혼불을 그릴 때, 혼불은 그 혼불을 본 사람에게로 봉화되어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 효원에게로, 당신에게로 이어진 것이라고요. 오늘날 청암부인의 정신과 당신의 모국어가 더욱 그립고 절실해집니다.
당신과 3일 동안 혼불의 마을을 다니면서 나는 당신이 왜 그토록 ‘근원에 대한 그리움’에 매달렸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나를 있게 한 근원들과 삶의 터전들은 바로 나의 정서가 잉태된 곳이고, 내 그리움의 원천이며, 내 연민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모국어로 그리움의 원천을 파고, 모국어의 은결로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비추어 살려내고자 한 것입니다. 저마다 절절한 혼불들을 애틋이 바라보며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게 삶으로서 온전해지도록 말입니다.
이제 당신과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뭇 사람들의 근원이 되고 혼불이 되어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