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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발전해온 여러 문명권의 인장문화는 중세 유럽의 인장의 근원이 되었다.
이 고대로부터 중세로 이어지는 기간 중에 '문자'는 많은 발전이 있어서, 알파벳은 여러 단계의 발전을 거쳐 오늘날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26자의 알파벳이 되었다. 파피루스대신 양피지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두루말이(볼루멘) 형식의 책은 AD 2∼4세기경에 낱장을 묶어서 꿰맨 코덱스(Codex)가 일반화됨에 따라 점차 사라져 갔다. 중국의 제지기술이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에 전해진 뒤 13세기에는 이탈리아·에스파냐로 유입되었고, 14세기 중반에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중세 책의 보급은 급속히 증가했다.
이 역사적 사실들은, 이 후의 유럽 인장의 발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주게되는데 또 한가지의 중요한 변화 요인은 '문장(紋章-coat of arms)'의 출현이었다. 이것은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근세로 오면서 유럽에서 인장의 사용이 줄어가고 또 다른 형식의 시각적 상징들이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기에 충분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장의 출현
11세기의 중세유럽에서는 인장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원래는 기사들의 방패에 장식되었던 문장이 앉아 있는 왕의 모습과 함께 'Grat Seal'-국새(國璽)-에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것은 이후의 인장이 문장의 형식을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유럽 인장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 Vataut 대공의 인장(14세기)
대좌에 앉은 왕을 둘러싼 방패들 속에 문장이 새겨져 있다
문장이 인장에 새겨지기 시작한 초기의 중요한 사례이다.
초기의 문장은 투구를 써서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는 상대방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가장 먼저 문장이 사용된 곳은 무장한 기사들의 '방패'였으며, 그 내용은 개인이나 가문의 역사와 점령지의 기록 등을 그래픽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그런 예로, 중세 영국의 마상 창시합에서는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이 그들의 방패에 새겨진 문장과, 투구에 붙이고 있는 '볕'에 의해 구분되었다. 이 때 경기의 진행자들은 채점과 보고를 위해 문장에 관한 지식을 갖춰야 했고, 점차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발전시켜 갔다.
기사의 방패에 새겨졌던 문장의 사용이 급속히 확산되어 간 것은, 문장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상징으로써의 강력한 힘과 효율성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신분의 표시와 식별수단으로 사용된 문장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의 존재를 말해주는 완전한 시각기호로 사용되었고 여기에 인류가 중세까지 발전 시켜온 상징의 방법들이 결집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어떤 형식보다도 강력한 힘과 효율성을 가졌던 것이다.
실제로 하나의 문장에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는데, 문장의 상징들을 충실히 해독하는 것만으로도 그 소유자가 어느 가문, 누구의, 몇째 아들인지 또 어떤 계급인지를 알 수 있었다. 또 여자들이 사용한 문장의 경우에는 아버지나 나 남편의 신분, 결혼여부 그리고 심지어는 과부를 표시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 정도로 풍부한 신분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중세 유럽의 왕들이 사용한 국새(國璽-Great Seal)는 인장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상징적 힘에 문장의 강력한 상징적 힘이 결합되어 나타난 인장의 새로운 형식이었으며, 이전보다 한층 정연한 상징방법으로 발전했다.
▲ 문장이 새겨진 프랑스의 주화. 좌로부터 루이 18세, 루이15세, 루이 16세
인장의 사용 형식
중세 인장의 사용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문서의 표면에 밀랍을 이용해서 찍는단일 인장과 문서 끝에 리본이나 비단 끈을 달고 여기에 앞뒤로 인장이 찍힌 밀랍덩어리를 붙여 보내는 이중인장이다. 이때까지 잉크를 사용하여 직접 문서의 표면에 찍히는 일은 없었으며 밀랍 대신 식물성 수지의 일종인 '셸락'이 쓰이기도 했다.
▲ 종이 위에 셸락으로 찍은 인장
▲ 인장을 찍은 밀랍덩이가 달린 문장 인가증 (영국-1587)
인장을 만들던 장인들은 인장의 완성과 함께 밀랍으로 그 인장을 여러 점 본떠 인장의 주인에게 주었는데, 이 밀랍을 가족, 친구, 관료들에게 보냈고 이후에 문서에 달아서 보내는 인장이 찍힌 밀랍과 대조해봄으로써 그 문서의 진위를 알 수 있었다. 인장의 주인이 죽게 되면 그 인장이 더 이상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기되었다.
18세기 무렵부터는 점차 봉인으로써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나폴레옹 1세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에 일시적으로 장식성이 강한 인장이 부활하지만 서명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오늘날의 유럽에서는 기업, 단체, 개인 등의 중요한 보증과 인가의 표시로 아주 가끔 사용된다. 늦게는 19세기에 봉함 편지봉투가 사용되기 이전까지 편지를 봉할 때 사용하는 작은 인장을 회중시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인장 문화의 쇠퇴
인쇄술의 발전은 유럽에서 "인장의 실용적 기능이 사라지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14세기 중엽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가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를 유럽에서 시작한 이래로 인쇄술은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종이가 없었더라면 별 의미가 없었을 인쇄술은 양피지보다 훨씬 더 저렴한 종이의 가격에 힘입어 좀더 폭넓은 계층에 보다 많은 책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푸른 소책자
17세기에는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 작은 판형의 책이 대중화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었다. 이 소책자는 표지가 푸른 색이었기 때문에 '푸른 소책자'라고 불렸다.
그 결과 이전에 비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문맹자들이 더 많았다. 17세기 말기의 프랑스에서 남자 27%와 여자 14%가 결혼 증명서에 서명을 했는데, 이 자료를 통해 읽고 쓸 줄 알았던 사람의 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군주의 통제와 출판인들의 독점으로 인해 인쇄술의 발전이 얼마간 지체되기도 하지만 산업혁명기였던 1814년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인쇄기가 만들어졌다. 이 무렵부터 인쇄물의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게 되며 책, 신문, 잡지가 대중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문맹자의 감소로 이어져 문서나 서신에 자필서명이 남겨지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업이나 개인의 특별한 거래나 증명서 등에만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유럽과 동양의 인장이 같은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서로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오늘날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지형 인장. 로마시대부터 유행했던 반지형 인장과 문장이 합쳐진 형태로 실용적 기능은 없으며 상징적 의미만이 남아 있다.
또 다른 상징으로 발전
비록 수세기전과 같은 방식이나 빈도는 아니지만 서류나 증명서 같은 중요한 문서에는 여전히 인장이 사용되고 있다. 또 오늘날에 사용 중인 시각적 상징들 중에는 인장을 기원으로 해서 좀 더 발전하거나 다른 형태의 시각적 상징으로 발전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지방자치단체, 협회, 대학교, 기업 등의 마크(Mark)와 상표(Treadmark)들이 그것이다.
▲ 미국 미시건 주의 'Great Seal' 인장의 역할과 마크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 미 연방정부의 대문장 'Great Seal'
물론 이것이 유일한 근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기호, 문자, 도형 등을 사용해서 자기 것임을 증명하고 다른 것과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종류의 인장을 통해 형식을 갖추며 발전되어 왔으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장의 영향은 근원적이며 지대한 것이 된다.
오늘날의 'Treadmark'와 CI(Corperate Identity) 등과 같은 시각 상징을 사용한 예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고대로부터 있어왔던 사실이다. 이집트의 발굴품이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토기 등에 보이는 '도공표'-토기의 밑면에 남기는 제작자의 표시-라고 하는 표지가 그것이고 중세에는 '길드'로 하여금 통상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소유권 표시를 의무화하였으며 1700년대 무렵에는 사실상 모든 상인이나 중계인들이 상표(Treadmark)와 인장을 그런 표시로 사용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된 뒤 기계에 의한 생산이 본격화되고 유통구조가 새롭게 편성됨에 따라 기업이나 상품의 고유한 상징과 시각적 통일화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으며, 차츰 이들이 하나의 재산으로 인식되면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들이 제정된다.
이 과정에서 인장에 새겨졌던 상징적인 그래픽과 '문장'들은 트레이드마크에 받아들여져 새로운 시각 '상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오늘날에도 단체나 기업을 상징하는 마크에서 그 흔적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비록 무엇인가의 표면에 압력을 가해 그 자국을 남기던 전통적인 개념의 인장은 많이 사용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미지와 문자를 조합해 만든 시각적인 상징들이 믿음의 증표로 사용되고 있다.
▲ 인장과 문장에서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마크
그리고 한가지 주의해야 할 사실은 인장은 여기서 소멸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기록 수단이 바뀔 때마다 그 형태와 사용방법이 발전되어온 인장은 디지털화 된 매체를 사용하는 시대를 맞아 디지털화된 방법과 형태로 발전하여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 개발된 스마트카드를 이용한 전자서명이나 '인터넷'상에서 '인증 Sever'를 통한 서명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장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매체의 변화에 따라 인장은 더 이상 시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형태로까지 발전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고대로부터 그래픽과 문자를 이용해서 시각적인 상징을 만들어온 인류의 이 오랜 전통은 계속 될 것이다.
▲ 유럽과 미국 증지에서 어떤 단체나 기관의 인장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들이 그대로 마크로 사용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