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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생애와 사상
루터는 독일의 삭소니(Saxony) 북서쪽에 있는 라이프찌히 근처의 아이스레벤(Eisleven)에서 광부 한스 루터(Hans ruther)의 아들로 1483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한스 루터는 그가 법률가가 되는 것이 희망이었으므로 그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501년, 루터는 옥캄(William Ockham)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당시 인문주의로 유명한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여 7자유학과와 법률을 배웠다. 그는 라틴 고전과 기독교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으면서, 음악적 재능도 지니고 있었다. 1502년에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505년에는 석사시험에도 합격했다. 그 후 그는 종교적 신비감을 체험하고 복종,청빈,순결의 서약 아래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에 속하는 에르푸르트 수도원에 들어갔다. 1510년부터 1511년 까지 그는 수도원의 수사로서 로마에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로마여행에서 목격한 부패와 테첼(Johan Tetzel)의 면죄부 판매는 그를 분격하게 하여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문을 공개하여 종교개혁 심지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이 때 루터는 "옛 초대 교회시대보다 현재가 더욱 사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종교개혁의 의지를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해에 그는 그가 성서학 박사(Holy Scripcture) 학위를 받았던 에르푸르트대학으로 돌아 왔으며, 그 후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다. 이 때에 루터를 분노하게 한 것은 교회의 면죄부 판매라는 타락상이었다.
1517년 면죄부판매 대행자인 테첼(Johan Tetzel) 수사가 교황에 의하여 포고된 면죄부를 팔기 위하여 삭소니 지방에 나타나자, 이에 대항하여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 조문을 공개하여 본격적인 종교개혁의 불을 댕기게 된 것이다. 95개 조문의 주된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위에서 믿는 자들의 전생에는 참회의 연속이 되어야 함을 요구하셨다. 가난한 자를 도우고, 궁핍한 자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행하는 것임을 기독교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면죄부에 의하여 구원받는다고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비록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혼을 걸로 그 정당성을 보증하려고 해도 그것은 헛된 일이다.
이러한 95개조를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 해서 면죄부 판매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어, 교회는 분격하여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반항하여 루터는 대학의 열광적인 학생들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새로이 왕위를 오른 신성로마황제 찰스(Charles) 5세는 루터를 설득하기 위하여 소환하였는데,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결같고 인간의 양심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교황에게 강력히 주장하고 황제의 설득에 불응하였다. 그러자 그를 이단자로 선고하고 법률상 보호를 박탈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발트부르그의 프레드릭 3세의 성내에 피신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그는 성서의 독일어번역을 했다. 이것은 일상용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독해하기가 쉬워서 기독교의 참된 정신을 보급하는 것과 독일의 국어를 통일하고 국민의식을 함양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만년이 되어서도 루터는 끊임없이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육신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1546년 2월 18일 출생지인 아이스레벤(Eisleven)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걸인이다. 참으로 그렇다." 라는 글을 남긴 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1. 사 상
루터의 인간관의 핵심은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라는 것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 및 신-인(紳-人) 관계에 대한 지식 없이는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심 안에서만 그의 사람됨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그 자신을 보기 전에는 그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행해야 하며, 그 뚜렷한 이유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존하여 사람의 삶은 다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뜻과 관련될 때에만 그 의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 중심으로 본다. 루터의 신학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그리스도의 업적을 고찰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십자가의 고난이 있기 전모든 인간은 자신의 성향과 업적에 의해 언제나 죄인이며, 죄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새 이름 안에서 인간은 한없이 강해질 수 있다. 그 자신의 본성은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의 나약함을 깨닫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힘을 구한다면 언제나 인간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움에 의해서 의를 얻고자 간청할 때,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된다고 루터는 주장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인간과도 연결되어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의 윤리는 믿음, 소망, 사랑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사랑의 행동이야 말로 신앙의 외적인 표현이라 생각했기에 개인이 그의 이웃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평소의 생활에서 이웃과 공동체의 선과 이익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었다.
개인이 이웃을 위해 살고 또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윤리관에서 루터의 신적 직
업관인 소명론(召命論)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주어진 지상적 과업을 통해서 이웃과 사회에 기여한다. 그들의 환경이 각각 다르듯이 각자에게 맡겨진 소명도 다르다. 그러나 그 소명은 귀천이 없고 모두가 신성한 것이다. 즉, 그 직책과 소명에 대해서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널리 모든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소명론이다.
자유에 대한 루터의 견해는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박애와 봉사의 정신을 따르며, 육체적 쾌락이나 이기적인 유익을 떠나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박애를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의지를 일으켜 자발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참된 영적인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2.루터의 교육사상
가. 교육 목적
루터가 생각한 교육은 종교적인 사람을 기르는 것이고 내세의 구원을 얻기 위한 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루터가 생각한 참 지혜는 자기자신과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었다. 인간은 가련하고 상실과 죄인들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하여 은총으로 구원하려고 열망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루터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규율 있게 행동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속에서 지식의 증진과 인격의 도야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루터의 교육은 사회와 국가의 번영을 증진시키는 목적을 지닌다. 루터는 교육을 사회와 국가를 위한 부와 힘과 번영의 근본요인으로 보고 사회와 국가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교육적 사명을 높이 평가하였다. 실로 "사회란 모든 시민들의 재능을 최대한 실현시켰을 때 더 큰 안정을 얻게 되고 법에 의해 통치되어지며, 더욱 신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라고 하는 점에서 루터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교육의 기여를 크게 평가하고 있다.
나. 교육 내용
종교가 인간생활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때의 교육내용은 종교적인 것이 중시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모든 저술들은 교훈적이면서 또한 교육적인 것들로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를 강조한 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루터는 다음과 같은 교육내용을 추천했던 것이다.
① 성서는 교육프로그램에서 으뜸가는 것이라고 해서 성서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독일의 기독교 교회 귀족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대신 그릇된 사상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는 자녀를 보내지 말라"고 하였으며,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리로서 종교의 개인적인 해석에 대한 권리를 변호했고, 성서에 의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권위가 명령한다 해도 거부되어져야 한다는 성서의 원리를 주장했다.
② 삭소니(Saxony) 지방 교회의 무지를 목격한 후 지은 교리 문답서의 서문에서 교리 문답서가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교리 문답서 및 십계명,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학습을 강조했던 것이다.
③ 또한 언어는 성서의 연구와 현재 생활의 영위를 위해 가르쳐질 필요가 있는 정신적인 무기라고 주장하여 언어의 연구를 권장하였다. 특히, 루터 자신은 성서 번역을 통하여 현대 독일어의 통일을 시도하였으며,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념을 제공하여 "언어는 문법에 의해서 보다는 실습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④ 루터는 한편 역사과목을 강조하고 역사교과가 목회자와 교사의 지식을 넓혀 주고, 또한 추상적인 진술과 원리를 통해서 지식을 확실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적인 진리를 제시해 주며, 사회제도를 이해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터는 "도서관의 중요한 장소에 모든 언어로 기록된 연대기와 역사를 비치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⑤ 루터는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자연의 연구가 하나님의 선한 경이를 들어내고,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⑥ 교육은 종교적이고 지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과 신체발달 전부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음악과 체육을 강조했는데,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음악은 하나님의 뛰어난 은사이며 신학 다음가는 귀한 것이다. 나는 아무리 큰 보수를 받는다 하여도 음악에 대한 나의 약간의 지식을 양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는 이 예술을 배워야 했다. 왜냐하면 음악은 훌륭하고 숙련된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훗날 그는 플라톤(Platon)이래로 가장 음악을 사랑했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방탕, 방종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체육 훈련이 필요하다"고했다.
⑦ 루터는 직업교육을 강조하면서 「시장과 시의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소년들은 하루에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장사하는 일을 배우고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소녀 또한 매일 한 시간씩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배우는 것과 일하는 것이 병행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루터에 의하면 교육은 성서를 모든 직업에 응용하는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신학 그 자체는 성서를 설명하는 것이기에 루터의 교육은 그의 신학을 실생활에 응용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 교육 방법
루터가 생각한 교육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경건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비록 자녀들이 잘못된 일을 행하고, 감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자녀들 가운데서 좋은 것을 찾으려고 힘쓰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의 교육을 요구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부모들은 그 자녀들로 하여금 시민교육을 받게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강조하여 모든 어린이가 무지로부터 해방되고 지적인 희열(喜悅)을 얻기 위해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사적이며 공적인 모든 직무와 의무들을 능숙하고 정당하게 수행하는 데 적응시키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었다. 따라서 루터는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와 학습자의 생활경험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분위기는 즐겁고 완화해야 한다고 보고 루터는 "젊은이는 슬퍼해서는 안된다. 명량하고 즐거워하며 좋은 기분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들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라고 적었다. 또한 루터는 사귐을 통한 교육도 강조하여 젊은이들이 인격도야를 위한 사귐을 가진다는 것이 우 좋은 일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올바른 훈육을 강조하고 교육에 있어서 훈육은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는 늘 사과가 회초리 곁에 있는 형식으로 자녀와 학생들을 벌해야 한다. 그것은 자녀들이나 학생들이 부모나 교사들에 대한 친근한 마음을 상실한다면 좋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루터는 조기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의무에 관한 설교」(Sermon oder Predigt dass mann kinder sollen zur Schule halten, 1530)에서 "늙은 개를 말 잘 듣게 하고, 나이든 악한이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얼마가 도중에서 꺾여지기는 하지만 어린 나무들은 보다 쉽게 굽혀지기도 하고 훈련되기도 한다."고 말함으로
써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루터는 반복과 암송의 학습, 단계적인 학습, 문답식 학습, 관찰을 통한 학습등 다양한 학습원리들을 제공했으며, 구체적인 예로써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강조했다.
마. 가정교육
교황권 밑에서 결혼이라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고, 반면에 독신이나 미혼상태는 거룩한 은총을 받은 신성한 소명으로 찬양되었다. 그러나 루터는 두 성의 존재에서 결혼의 자연적인 기초를 보았고, 그것이 신성한 제도인 것을 알았다.
가정은 교회와 국가의 복지를 이룩하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루터는 부모들이 모든 열성을 다해 그들의 자녀를 훈련하고 가르칠 것을 강조했다.
바. 학교 교육
루터는 가정교육 만으로는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데 충분치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루터는 언어와 그 밖의 다른 예술,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는 데 자격을 갖춘 남녀 교사는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리하여 학교에서 학생들은 역사와 세계의 금언을 듣고, 그것으로 인해 짧은 시간에 전체 세계의 인물, 시간, 일, 생활, 성공과 실패를 모범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여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사. 교회 교육
루터의 교육은 그의 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고 또,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하는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기를 계시할 때에 생겨진 기관이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일으키신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 널리 알려지기 위함이다."라는 말에서 루터가 생각한 교회교육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목적이 학습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지식을 주입하는 데 있지 않고, 전 생애를 통해 기독교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려는 데 있다고 할 때 "학습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서 교회의 생활과 신앙을 충분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肢體)로서, 그의 동역자(同役者)가 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을 완성할 수 있는 길임을 알게 한다"고 주장한 점은 루터의 교회교육의 목적을 잘 반영하고 있다.
3. 루터 교육사상의 현대적 이해
루터는 종교개혁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개혁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록 당대에 있어서는 그의 사상이 전적으로 거의 완전히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교육에 진보적인 변화와 자극을 가져다 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그의 교육이론이 차지한 교육사적 의의는 의무교육제도, 서민교육 기회의 균등, 공교육 제도의 중요성, 여자의 취학, 교육방법면에서의 공헌, 직업교육 및 도서관의 설립, 가정교육 및 조기교육, 영재교육 등의 강조 등에서 그 의의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모든 교육기관은 소년, 소녀, 빈부, 귀천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는 신념과 여자의 취학의 필요성에도 적극적이어서 모든 계급과 성별에 구별됨이 없이 보편적인 의무교육이 실시되어야 하고, 이러한 교육은 모두 정부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루터의 공교육에 대한 주장은 고오타 교육령과 메사추세츠 교육령과 더불어 현대 공교육 제도의 성립에 큰 공헌을 했던 것이다.
루터는 또한 남의 자녀들을 정성껏 교육시키는 일이야말로 이 땅위에서 가장 고귀한 덕 가운데 하나라고 봄으로써 교사의 지위와 역할을 강조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루터는 정서순화를 위한 음악과 신체의 단련을 위한 체육을 중시하고 고전어의 내용을 학습하는 일과 수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역사등을 교육내용으로 다루어야 하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루터의 교육적 제안들은 "너무나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당대에는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았다."고 진술한 만큼 그의 주장들은 근대적인 것이었다.
루터는 직업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모든 소년, 소녀는 교육과정의 일부로서 직업, 또는 가정생활에 관한 실제적인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직업은 신에 의한 명령이므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직업소명론은 현대직업관에 시
사하는 바가 많다. 다른 한편으로 루터는 영재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초등학교에서 충분히 교육받을 가장 적합한 학생만이 상급학교에 보내져야 한다."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우수한 학생들의 설교자, 교사등이 될 수 있고, 전문적인 직업인이 되어야 할 유망하고 영리한 학생들은 더 높은 학문적인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가치를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루터는 가정환경이 교육의 전체적인 과정에서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보고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기독교 훈련의 가장 중요한 터전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아동교육에 있어서는 시기상조란 있을 수 없으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여 조기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루터가 성경에 따라 언행을 하도록 강조한 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의 현대적 인간상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한 사람
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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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요시야 왕(B.C.640) 치리 당시에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 이스라엘의 상태는 이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분의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했던 주의 전 외에도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위에 많은 산당들을 세웠다. 거기서 그들은 바알과 태양과 달과 행성들과 하늘의 모든 군상들에 분향했다. 그 일은 우상을 섬기는 사역에 부름받은 "제사장들"의 몫이었다(그들의 생활은 어쩌면 그 당시 주의 제사장들보다 더 풍성하고 부유했으리라!).
그 어리석은 백성들은 솔로몬이 세운 전통에 따라 시돈인들의 아스토렛과, 모압인들의 크모스와, 암몬 자손의 밀콤을 위하여 세운 산당들에서도 분향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의 관심사는 어느 신(god)의 제사장이 되는 가였으며, 그것은 제사장 학교 시험 순위에 따라 결정되었다.
백성들 사이에 동성애가 늘어나면서 주의 전 곁에도 남자 동성애자들의 집이 자리잡았다. 백성들은 자기 딸이나 아들을 불로 통과하게 하여 몰렉에게 바침으로써 앞다투어 자기의 "믿음과 헌신"이 아브라함에게 비김을 증명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신접한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앞 일"을 예언받고 그들에게 "헌금봉투"를 건네는 일도 다반사였다고(왕하 23장, 대하 34장).
하나님을 섬기고자 수도원에서 들어갔던 나와 내 친구 마틴이 사제가 되었을 당시 독일의 상황도 이러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카톨릭 교회에 속했다. 황제와 제후들 이하 모든 사람들이 그 교회가 베푸는 세례를 받고 지상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매주 미사에 참석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 빵과 술을 먹고 마시며, 금식과 철야와 기도와 갖가지 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노력했다. 그러한 일들로도 마음의 평안이 없을 때는 고해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양심을 괴롭히는 일들을 털어 놓고 용서받으면 되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을 주심을 감사할 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옥불 가운데서 고통당하고 있는 먼저 죽은 가족의 면죄부를 통해 용서되었으니 말이다.
내 친구 마틴은 광부였던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가레타 사이에 태어났다. 어느 날(1505년 7월) 부모님을 만나 뵙고 학교로 돌아오던 길에 벼락을 맞아 나뒹굴면서 그는 광부들의 수호신 성 안나에게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하게 되었다. 그 서원대로 수도사가 된 마틴은 구원받기 위해 있어서 카톨릭 교회가 제시한 일이라면 남김없이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죄인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 철저히 금식하고 고행하며 기도할수록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인의 죄는 씻어지지 않았다. 카톨릭 교회는 죄인들이 다른 성자들의 공로를 전가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실 어떤 교황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모두가 면죄를 받으면 연옥에 가서까지 덕을 보는 것으로 장담했다.
그리고 죽어서 연옥에 가 있는 자들은 이미 그들이 지은 죄의 집계가 끝나 있으므로 당장에라도 빼내올 수 있다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연옥에서 여러분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릴 좀 살려 줘, 제발 좀 살려다오. 이 지긋지긋한 고문, 너희들의 잔돈 몇 푼이면 여기서 벗어나고도 남을 텐데.' '널 낳아 길러 준 우리가 아니냐? 네게 유산까지 남겨 주었는데 그렇게 박절하고 잔인하게 몇 푼 아끼려고 우리를 이곳에 그냥 둘 셈이냐? 여기 이 불 속에 있게 내버려 두겠느냐? 이 면죄부를 받지 않으시렵니까? 귀중하고 불멸하는 한 사람의 영혼을 고향 낙원으로 보내는데 단돈 금화 4분의 1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금이 필요할 때 엄청난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쓰고서 후에 이 빚을 갚기 위해 면죄부를 발급했던 것이다. 사실 교황이 면죄부를 발급해서 죄인들을 구출할 수 있다면, 죄인들 모두를 구출하지 않는 그의 처사는 너무 잔인한 것이다.
그러나 면죄부란 비성경적인 것이엇던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어느 계기로 로마로 여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빌라도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계단에 입맞추면서 할아버지 하이네를 연옥에서 끌어내 주고자 했던 마틴에게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알지?"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요시야 왕에게 주의 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이 그의 손에 주어졌다. 요시야 왕이 그 율법책을 펴서 읽게 하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적혀 있었다. "...너희는 다른 신들, 즉 네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지니(신 6:14; 8:19)...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을 경배하거나,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태양이나 달이나 하늘의 군상들에게 경배하여, 그 사실이 네게 알려져... 곧 그러한 가증함이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것이 확인되면... 그 남자나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신 17:3-5)...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레 18:21)...나는 주니라. 너는 여자와 함께 하듯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그것은 가증함이니라(레 18:22)... 또 돌이켜서 신접한 자들과 마법사들을 따라, 그들과 음행하는 혼은 내가 그 혼을 외면하여 그의 백성 가운데서 그를 끊으리라(레 20:6)."
루터는 성경 교수가 되면서 시편에 이어 바울의 로마서를 강의하고자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 연구가 루터에게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이 되었다. 루터가 성경을 펴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었다. "....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갈 2:16)...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6)... 내가 내 죄를 주께 시인하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내 죄과들을 주께 자백하리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용서하셨나이다(시 32;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요시야 왕은 그들이 믿고 섬겨왔던 그들의 "주"인 우상들의 형상과 제단을 깨뜨리고, 불사르고, 더럽히며, 허물고, 폐하고,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루터는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자들 앞에 95개 조항을 내걸었다.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들에 관해 책자들을 써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 소책자들에서 교황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교회 회의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오직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이 성경보다 위라는 점에 나는 반대하네. 누가 그에게 그런 권위를 주는 것인가? 그의 근거는 성경에 없고, 그의 교서는 단 한 번도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다네. 아첨꾼들이 교황을 성경 위에 올려 놓고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우겨대지만, 그렇게 되면 성경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인간의 말뿐일세."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그처럼 헌신해 온 교황이 결국은 그리스도의 큰 원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는 라틴어 성경이 틀리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해 성사를 뒷받침하는 마태복음 4:17이 라틴어 성경에 "고해하라"(do penance)로 되어 있지만,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에는 "회개하라"(be penitent)로 되어 있었다. 마틴에게 있어서 이것은 너무나도 선명한 발견이었다. 헬라어 성경에 따르면 카톨릭의 많은 성사 중의 하나의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또 그들이 연옥의 근거로 제시하는 마카비후서(12:45)는 구약의 외경이었다. "마카비서는 정경이 아니며, 외경이네, 따라서 거기에 근거를 줄 수는 없네. 외경에도 권위를 주기 시작한다면 인간의 모든 책에도 동일한 권위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
마틴을 반대하는 어떤 사람도 성경을 근거로 말하지 못했다. "'나는 반대한다. 나는 부정한다.'는 식으로만 시종 일관한다면 어느 멍청이, 어느 나귀, 어느 통나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정죄할 수 있지 않겠나? 단지 자신의 근거없는 말만으로 성경의 무기고를 습격할 수는 없지."
그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큰 이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단"들의 동조자가 되었다. 그 당시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위클리프와 후스의 영향 아래 있던 보헤미아 형제들의 주장을 복음적인 것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틴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시장이나 거리에서나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독일말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된 것이다(1522년에 신약을 번역했고, 1534년에 완역하여 <루터 성경>을 내놓았다).
요시야 왕은 더 나아가서 그 언약의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백성으로 주의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다. "이스라엘을 재판하던 재판관들의 시대부터, 이스라엘 왕들의 온 시대와, 유다 왕들의 시대에도, 참으로 이처럼 지켜진 유월절이 없었으나".
마틴은 다른 사람들의 순교와 자신의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카톨릭 교회와 교황의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담대히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목적의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마틴을 앞세워 폭력을 사용하려고 했을 때이다. "악한 대상을 없앤다고 그 악습이 사라질 것으로 상상하지 말게나. 성급함과 횡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일 뿐이네.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설교할 걸세."
물론 모함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를 "기회주의자 박사님"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새롭게 하려는 개혁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경적인 믿음으로 돌아오고자 하였던 것이다. "세상과 대중은 그들이 비록 세례를 받고 이름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린다 할지라도 여전히 비그리스도인이요, 언제나 그럴 것이네. 따라서 하나의 전체 공동체나 세계를 복음으로 다스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 우리 안에 늑대, 사자, 독수리, 양을 집어 넣는 목자나 다름없네."
그는 자신들의 대적자들에게 부지런히 성경으로 논박했지만 여전히 그의 일은 묵묵히 계속해서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진리를 널리 퍼뜨릴 책을 쓰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앞에 어떤 왕도, 그와 같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께 돌이킨 자가 없었고, 그의 후에도 그와 같은 왕은 일어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세상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리에 대해서도 알지만 그것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자들이 더 많다. 그러나 내가 주 안에서 자랑하는 내 친구 마틴은 이와 같은 고백을 남겼다. "여기 제가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이 땅에 마귀 꽉차서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싸워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원수가 취해도 두려워말지라
주 말씀으로 이기리.
하나님 말씀 능력이
이 세상 권세 이기네.
주 성령 우리 안에서
큰 능력 채워 주시네.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면
이 몸은 죽어도 큰 영광 보리니
그 나라 무궁하도다."
그가 확고부동하게 서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던 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내 친구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서 죄인들을 바른 구원의 길과 바른 섬김의 길로 인도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사랑어린 내 친구 마틴의 음성을 듯는 듯하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의견과 성경의 진리가 서로 반대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자네는 그 대가가 무엇이라도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리의 길에서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마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먼저 진리를 고백하게. 그리고 진리를 따라 나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