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산호 화백이 그린 소서노 영정(고구려.백제의 국모)
소서노는 누구인가?
소서노는 만주 졸본천의 토착세력인 연타발의 딸로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이었던 우태와
혼인해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그러나 우태가 먼저 사망하자 두 아들을 키우면서 지냈다.
그런데 서기전 37년 북부여에서 주몽이 망명해 소서노가 사는 졸본부여까지 내려왔다.
이때 소서노의 나이 32세 주몽은 21세였다.소서노에게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고
주몽은 부여에 임신한 부인 예씨와 아들 유리가 있었다.
국가창업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주몽을 선택
망명객 처지는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칠 때 따라 나선 인물들은 오간 마려 협보 등 세 명뿐이었다.
겨우 세 사람을 데리고 남하했고 겨우 엄사수를 건너서는 세 사람을 더 얻고 나서
'천명,건국'운운하는 주몽을 토착세력이 곱게 봤을 리는 없다.실력도 없이 큰소리만
치는 허세꾼으로 보였을 것이다.그러나 소서노는 달랐다.
그 자신이 토착세력의 대표 연타발의 딸이었지만 정체된 현실에 만족 하는 기득권자의
시각이 아니라 졸본의 변화를 추구하는 도전자의 시각으로 주몽을 바라 보았다.
소서노는 졸본지역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졸본지역은 흔히 오부족으로 불리는 부족들로 나뉘어 있었다.
졸본지역의 시대적 과제는 부족통합에 의한 국가창업이었지만 남편 우태가 죽은 후
졸본에는 이를 수행할 능력자가 없었다.소서노에게 중요했던 것은 토력세력인지 이주세력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졸본지역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었다.
대제국 고구려의 물적 토대가 소서노
주몽의 명분과 능력에 졸본지역의 유력 세력이었던 소서노가 가세하자 졸본지역은 물론
만주 전 대륙에 엄청난 폭발력을 일으키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연상의 과부 소서노가
주몽이라는 젊은 망명객을 선택한 것은 만주 지역의 정세를 바꾸어 놓았다.
소서노는 북부여 왕 해부루의 손부(孫婦)였으니 북부여에서 망명한 주몽은 엄밀하게 따지면
시가의 정적이었다.그러나 소서노는 과거의 악연을 털고 미래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주몽을 선택한 것이다.만주 전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통일제국 수 당과 천하를 놓고
정면승부를 펼쳤던 천하 제국 고구려는 이렇게 탄생했다.
고구려는 소서노라는 토착세력의 물적 토대가 주몽이라는 이주세력의 명분과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 건국된 신흥국가였다.
내부투쟁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백제창업
그러나 소서노의 창업의 공은 주몽왕 19년(서기전 19년) 부여에서 주몽의 아들 유리가
찾아오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이때 소서노가 주몽을 왕으로 올린 지 19년째 되는 해였다.
소서노는 당연히 자신의 장남 비류가 태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태자가 된 인물은 북부여에서 온 유리였다.유리를 태자로 삼은 지 6개월만에
주몽은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고 태자 유리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때 소서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유리왕과 권력투쟁에 나서는 길이었다.졸본은 소서노의 고향이자 세력기반이었다.
부러진 칼조각을 들고 부친처럼 세 명의 부하를 이끌고 망명한 유리는 졸본지역에
자신의 세력이 없는 상태였다.토착세력인 소서노가 두 아들과 손잡고 유리왕 축출에 나선다면
유리왕이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서노는 내부파장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또다시 개국의 길,또다른 킹메이커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 주몽을 선택할 때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성과에 안주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장남 비류도 어머니의 뜻을 따라 온조를 설득했다.
소서노는 조선사상의 유일한 여제왕의 창업자일 뿐더러 곧 고구려 백제 양국을 건설한 자
도읍지를 놓고 비류와 온조가 대립했다.비류는 바닷가를 고집했다.장남 비류가 고집을 꺽지 않자
소서노는 장남 대신 차남 온조를 왕으로 선택했다.그는 차남 온조를 왕으로 선택했다.그는 온조와
한강 유역에 하남 위레성을 쌓고 새 나라를 건국했다.소서노는 두 아들을 화해시켜 두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다 신하들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소서노는 온조 왕 13년(서기전 6년)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는 조선사상 유일한 여제왕의 창업자일 뿐더러,
곧 고구려 백제 양국을 건설한 자"라고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과장만은 아니다.비록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고구려 개창의 공은 남편 주몽에게 백제 개창의 공은 아들 온조에게 돌아 갔지만 이 두나라는
소서노가 없다면 건국되기 어려웠던 나라들이었다.
그녀는 주몽을 선택해 대륙국가인 고구려를 건국했고 아들 온조를 선택해 해양국가 백제를 건국했다.
한국사의 원형인 대륙성과 해양성인 소서노의 일생에 온전히 담겨 있는 것이다.현 사회는 안의 일로
더 시끄럽다.안의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밖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더 큰 결과물을 낳는다는 것을 소서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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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카페 <안기영의 공감의 정치>에 실린 역사학자 이덕일의
<왕과 나-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리더:소서노>를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