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뉴 팅그리
아까 해발 5220미터 고지에서는 매우 추웠는데 여기는 한낮의 더위가 가득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마시러 갔고 나는 차안에 앉아 있다.
이상하게 오늘은 하루종일 우울모드. 그냥 한없이 가라앉는다.
라사나 시가체에 같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티벳인들의 모습을 오히려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느낀다. 매번 이렇게 오랜 시간 이동을 하면서 느끼지만 일부 티벳인들을 제외한 맑고 선한 그 표정이라니!
양이나 야크를 몰다가, 혹은 농사를 짓다가 우리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드는 티벳 아이들.
아까는 문득 순진한 어린 아이들의 인사를 받다가 문득 울컥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기도를 드렸다. 제발 이 선한 사람들에게 선한 일만 겪게 해달라고.
내가 여기서 직접 목도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이 사람들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여러 얘기를 들었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
어제는 숙소에서 지영언니와 지선에게 지금 티벳인들은 불행하고 불쌍하지만 천년이 지난 후엔 그저 그런 역사가 되겠지, 라고 함부로 말을 뱉은 것이 문득 몸서리치게 후회된다.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티벳인들은 지금 이 생이 하나뿐인 삶일텐데. 나는 어찌 그렇게 쉽게 말했는가.
3.
20020814 PM 8:51 네팔.
어제는 차안에서 조금 끄적거린 것 외에는 일기를 쓰지 못했다.
올드 팅그리는 너무 추웠고 우리 숙소의 불빛도 흐릿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과 007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너무 보내서 쓸 수가 없었다.
너무 쉽게 휘발된 어제의 느낌들이 안타깝다.
하지만 올드 팅그리에서의 군대 막사 같은 숙소와 하늘에 총총이 박혀있던 별들.. 그리고 거짓말같이 툭, 떨어지던 별똥별 하나. .. 그 영화 같은 장면 하나하나는 정말 선명하다.
그간 같은 일행이었음에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일행 등과 같이 놀았던 것도 좋았고.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신 새벽부터 분주했는데. 티벳에서는 중국 표준시를 적용하기 때문에 새벽 5시라는 건 실제로는 새벽 3시정도이기 때문에 정말 이른 시간이다.
그렇게 티벳을 떠나기 위해 분주한 오늘, 티벳인들에게 정말 감사할 일도 있었다.
워낙 길도 막히고 중간에 다른 차가 고장나거나 사고로 서있으면 같이 못하고 줄창 기다려야 하는 티벳 고원길인지라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러 떠나는 길이었지만 한 시간도 채 달리지 않아 버스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데 강물이 불어 길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미 다른 랜드크루저는 전복되어 옆으로 누워있었고 우리는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랐다.
물 속에 잠긴 길을 찾아 가이드와 바람님이 들어가려 했지만 해발 4,000미터가 높은 고산 지대의 신 새벽의 물은 너무도 차가왔다. 그런데 마침!! 티벳 중년 부부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그 차가운 물을 맨발로 걸어 길을 찾아주신 티벳 아저씨 덕택으로는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방인에게 웃어진 티벳인들에게 신의 축복을.
그렇게 잠을 두 시간도 채 못자서 비몽사몽간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아름다운 티벳 고원을 지나 라체를 지나 티벳에서의 마지막 도시 '장무'로 향했다.
자동 세차가 되는 길 위의 폭포, 안개에 가득찬 산의 매력은 신비로웠다.
아까부터 나무들도 조심씩 무성해지지 시작했다. 고도가 많이 낮아진 탓.
우리의 정 많은 가이드 아저씨와는 어느새 국경이 가까워서 인사를 하고 네팔 땅으로 들어왔다. 줄래줄래 따라다니다 보니 벌써 네팔 국경을 넘었다.
티벳에서 네팔로 넘어오자마자 확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 비록 얼굴이 까맣고 양 볼이 빨갛지만 우리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티벳과 달리 다갈색의 피부에 눈 크고 코 큰 입체적인 골격을 가진 네팔인들.
그 작은 우정의 다리 사이에 외양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사는 것이 신기했다.
드문드문 초원 위에서 흩어져 사는 유목민인 티벳인들은 우리가 지나가도 수줍어하지만 이 곳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할로'라고 인사를 한다.
그런 여러 가지 문화적인 차이들을 느끼며 네팔의 국경도시 코다리에서 수도 카드만두까지 다시 약 4시간 30분간을 달렸다.
처음부터 활기찬 느낌의 네팔. 상점들이 있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엄청나게 열대나무들. 초록의 깎아놓은 그림같은 계단식 논. 그리고 유독 오렌지색 벽돌집이 많은 네팔은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질주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영화관을 하나 봤는데 영화관 앞에서는 오토바이가 빼곡했다. 우리나라의 폭주족 처럼 '빠라빠라밤' 경적도 울리며 속도를 즐기는 모습이 왠지 반가웠다.
좌우지간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네팔은 농사를 짓던, 장사를 하던 거리를 활보하듯 매우 활기차다.
하지만 막 도착한 네팔도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문득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티벳이 못내 아쉽고 그립다. 티벳에 처음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와서 일까.
이제는 더이상 양, 야크 그리고 말 대신 까만 소만 드문드문 보이고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에는 이제 차가 가득하다.
정말로 네팔이구나.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티벳의 라사에서 네팔의 카두만두까지 920킬로의 우정공로의 대장정도 이제 끝이다.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레임이 뒤섞여진다.
카드만두의 파탄 지역에 있는 제니스 호텔에 도착했고 여기 종업원들은 매우 친절하고 좋았다. 네팔의 고도는 1900미터던가. 숨쉬기가 정말 자유로왔고 새삼 지금이 여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후덥지근한 날씨다.
나마스테, 네팔.
20020815 PM 8:20, Bamboo Club
네팔에서 처음 맞이한 아침은 느긋하게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충분한, 그리고 깊은 수면을 취한 뒤 상쾌하게 일어났다.
조금 뻑뻑하고 딱딱한 토스트였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아침을 먹고 파탄 구경을 느긋하게 나섰다. 길거리에 넘치는 사원 그리고 장식품 가게들. 일부터 여행자를 위한 거리를 꾸며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았다. 거리가 온통 박물관이고 온통 기념품 가게였다. 한눈에도 활기찬 거리. 현대에도 이렇게 전통이 살아 숨쉬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살아있는 여신이라는 꾸마리를 보러 나섰다.
비록 입장료 배분 문제로 꾸마리는 나오지 못해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가이드를 해주셨던 가네쉬로부터 꾸마리에 대한 새로운 얘기를 들었다.
꾸마리에 관해 나쁜 기사나 안내들이 많지만(여신 자격을 박탈 당한 후 결혼도 못하고 매춘을 한다는 등의) 그건 힌두교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가네쉬는 생각하신다고 한다.
왕국인 네팔에서 꾸마리는 왕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그 위치라는 건 정말 왠만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위치이다.
그 자리에 앉은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꾸마리가 되면 죽을 때까지 나라에서 돌봐준다고 말씀하셨다. 만얀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한다면 그 뒷바라지도 다해준다고.
모든 관점이 그렇게 상대적이고 그럼으로써 왜곡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파탄 관광을 그렇게 마치고 저녁시간에 지영언니와 지선과 함께 우리가 묵는 티벳 게스트 하우스 피씨방 여자분의 소개로 GILINCHE라는 음식점에 갔다. 여기는 현지인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집이란다. 가보니 역시 대부분의 손님들은 현지인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유명하다는 소고기 군만두와 물만두는 시켰는데 역시 맛있었다.
이 곳의 네팔인들은 지나가기만 해도 "Hello" "나마스테" "곤니찌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이 곳 타멜 지역은 원래 관광객들로 가득찬 그런 지역이기는 해도 한 골목을 지나면 그 골목에 있는 대다수의 네팔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싫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나니 친절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지선이의 강력한 주장으로 라이브 카페를 찾아 이곳에 왔는데 여기는 주말만 라이브를 한단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의 음료수에 분위기도 좋다.
지금은 싱가폴 슬링을 마시고 있는데 일부러 알콜을 적게 넣어달라고 했음에도 꽤 도수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외국의 한 야외 펍에서 좋은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글도 쓰도 칵테일도 마시니 천국이 따로 있으랴.
20020716
어제는 일기를 쓰지 못했다. 래프팅을 하고 불빛 하나 없는 텐트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네팔의 고속버스(?)를 타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어느 강가에 멈추었다.
그곳이 쪼롱띠라는 곳이던가? 나는 왠지 기분이 나른하고 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더위에 밀려서 그닥 래프팅을 하고픈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 래프팅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래프팅.
우리 캡틴은 활달한 성격에 늘 활짝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돋구워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더위로 인해 의욕까지 증발해 버렸지만 그래도 그 힘에 이끌렸는지 보트에 타 강물 위에 오르자 내가 언제 짜증을 냈었나 싶게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멋쟁이 래프팅 가이드 분들과 신나게 래프팅을 하다가 또 그 분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도 먹고 또 다시 래프팅을 했다.
래프팅은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었다. 요령이 없었는지 노를 젓는 손은 매우 아팠지만 출렁거리며 보트속으로 물이 밀려들때의 짜릿함! 그렇게 인도까지 간다던 강물을 따라 인도를 향해 네 시간이상 레프팅을 즐기고 우리가 오늘 야영할 곳에 도착했다.
이미 텐트가 다 쳐져있는 등 야영이 준비되어있었는데 다시 한번 우리 래프팅 가이드 분들께 감사드린다. 내내 너무나 수고하셨다.
좌우지간 저녁도 맛나게 먹고 네팔리들과 섞여 돼지 통구이도 먹고 장기자랑도 하고 재미나게 놀았다. 그러나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고 하루종일 너무 더웠다.
그리고 오늘이다. 사실 지금 너무 졸려서 제대로 일기를 쓰고 있는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더워서 또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다시 래프팅을 시작했다.
그새 조금 익숙해졌는지 오전의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하는 래프팅은 정말 재미있었다.
모두들 내가 물 속에 들어가기를 싫어하자 날 빠뜨리려 했는데 난 필사적으로 막았다.
갈아입은 옷도 마땅치 않고 물에 들어가면 더 탈 것 같아서였는데 결국 보트를 뭍에 대려고 할 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어쨌든 빠진 김에 물 속에서 논 후 다시 또 준비해주신 점심을 먹고 포카라로 가는 차를 올랐다. 고생하신 우리 캡틴을 비롯한 스태프 분들게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다. 고맙다는 얘기를 꼭 했어야 하는데.
지금 지선이와 지영언니.. 그리고 우리 팀 멤버들.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닿아있는 인연이 있을까. 갑자기 우울해진다.
지금은 포카라의 트랙오텔 호텔. 오! 새 건물에 정말 좋다. 벌써 새벽 한시가 가까워져오는 시간. 어서 자야지
20020718 PM 1:19
정말 한가로운 하루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다 지금은 근처의 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빡빡하게 돌아다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티벳에서 너무 내달렸기 때문일까.
게다가 여기는 포카라. 네팔의 휴양도시이다.
이 도시를 제대로 느끼는 건 이렇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좌우지간 네팔은 여러모로 매력있는 도시다. 활기차고 친절하고 영어도 잘 통하고.
온 세계가 똑같아져버린 현대 문화가 아닌 곳곳에서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환경이 매력적인 곳.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한번 이곳에 오고 싶다. .
돈이 없어서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니는 네팔인을 보자니 문득 저번에 카트만두에서 만난 재일 한국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본은 어딜가나 물가가 싸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한국인들은 여행을 많이 다니냐고 정말 많이 만난다고 했던 그 말.
왜 이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 아, 어제 포카라로 들어오다가 창밖으로 한국어가 보여서 깜짝 놀랐는데. 바로 '한국사원 보광선원' 이라는 글이었다. 여기에도 한국 절이 있다니 놀랍다.
여기는 삼성이나 LG 간판도 많고 티벳게스트 하우스나 여기 트랙오텔도 LG TV가 놓여있고 V채널은 삼성이 독점 광고를 하고. 신기하다.
20020719
어제 늦게 숙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기를 쓸 짬이 없었다. 어제 케밥을 먹고 포카라 강 옆을 걷는데 누군다가 날 불러서 쳐다보니 치주와 우리 일행인 선생님이 계신게 아닌가.
한글로 뭐라뭐라 씌여있는 음식점에 앉아계셨다.
'홍금보 아저씨네. 맛있는 수제비가 있어요' 라던가.
좌우지간 나도 들어가 이미 들어와 있던 두 한국인 여자와 한참동안 얘길 했다. 주로 얘기했던 아이는 스물 한 살의 여자애였는데 혼자 인도에 갔다가 비자연장을 받기 위해 네팔로 건너온거란다. A.B.C 산맥 트랙킹하다 죽은 한국 여자 등등 여러가기 얘기를 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거기서 만난 다른 한 한국 여자는 팔뚝에 커다란 문신을 한 서양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는데 인도에 꽤 오랫동안 있던 모양이었다.
이 남자친구도 인도에서 사귄 듯하다. 그 언니는 고야에서 대마초도 한 듯.
보통의 한국 여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는데 여행은 외국인뿐 만 아니라 같은 한국인에 대해서도 상대성과 다양성을 깨우치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지영언니와 지선을 만나 네팔인 치주네 집에 방문을 했다.
집은 깔끔하고 매우 좋아보였다.
한국의 집하고도 비슷하고.
네팔식 식사도 했는데 인상적이었다. 손으로 집어먹기는 하지만 반찬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네 입맛과도 닮았다. 나물도 있고, 그리고 네팔에서는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도 참 많이 산다고 들었다. 여기는 여러 가지 인종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각자 생활양식도 다르고 언어도 네팔에는 열 두개가 있다고 했던가.
아무튼 맛나게 먹었다. 남기지 않고 다 먹느라 배는 정말 불렀지만.
초대해주신 치주에게 감사를.
치주의 집에서 나와 간단한 술집에서 맥주를 간단히 마신후 Hard Rock 이라는 곳에 갔다. 거기서 치주 친구와 편을 나누어서 포켓볼도 치고 그랬는데 잠시지만 반군에 잠시 검문을 했는지?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기도.
새삼 네팔이 지금 정치가 좀 어수선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네팔은 외국인에게 늘 우대를 해주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크게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
그리고 오늘, 일찍 일어나 히말라야 산을 바라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짧았던 포카라의 일정을 마치고 카드만두행 버스에 올랐다.
역시 로컬 버스라 좌석이 불편하고 날이 너무 더워서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내 옆에 한 25살의 네팔 여자분을 만나서 재미나게 왔다. 서로 영어를 못해서 커뮤니케이션은 힘들었지만 언니가 코카콜라와 과자도 사주시고 좋았다.
그렇게 카트만두에 오니 체력이 달려서 그런지 한국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래서 네팔 김치 하우스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치주와 우리 팀 선생님 한 분간 두시간 이상을 타멜지역을 돌려 상점들과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네팔 김치 하우스에서 맥주를 조금 마셨는데 그 덕분인지 오늘의 피로가 몰려든다. 자야지.
20020721
어제도 일기를 쓰지 못했다.
현지인들과 함께한 만족스러운 날이었는데 돈도 많이 써버려서 현재는 한 푼도 없다.
아침을 김치하우스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지선이가 레게 파마를 한다고 미용실에 간다길래 따라나섰다가 두 명의 네팔 여인(수니타, 아니타)를 만나 그 분들의 도움으로 미용실에 갔는데 여기서는 그런 머리를 할 수 없다길래 어찌어찌 하다가 옷을 맞추러 갔다.
이것저것 다양한 천들 속에서 어리둥절하다가 천을 고르고 치수를 쟀다.
그건 다음날 오후 5시에 나온단다. 생각보다 빠르다.
총 975루피였던가를 주었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두 여자들이 브로커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의심도 했지만 여러 정황을 살려볼 때 아닌 것 같다.
옷을 찾을때도 같이 가준다기에 왠 과잉친절? 했지만 어쨌단 함께 만두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고 그들 중 아니타의 남자친구 레코드샵으로 놀러갔다.
그 곳은 매우 작은 곳이었는데 씨디 샵이었으면서도 씨디가 30장 정도 밖에는 안되어보였다.
좌우지간 무언가라도 사주어야 할 듯해서 난 Air의 10,000MHz를 골랐는데나중에 숙소에서 뜯어보니 Jazz 편집음반이 아닌가.
더구나 들어보면 째즈도 아닌 올디스 팝송이었다는.
황당했지만 이따가 다시 그녀들을 만날테니 그때 얘기를 해야겠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진 후 지영언니, 지선, 그리고 치주와 Bamboo club에 갔다.
신나게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식사와 맥주를 하고 다시 Jump club이라는 나이트 비슷한 곳에서 다시 술과 그리고 춤이 더해졌다.
새벽 두시까지 그 곳에서 놀았는데 네팔리들이 동양여자라서인지 너무 찝적거려서 짜증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어쨌건 그 곳에서 네팔리들도 노는 건 한국인들과 그닥 다를바 없다는 생각도.
네팔리들은 영어도 잘해서인지 왠만한 노래를 거의 다 따라 부르는 것도 놀라왔다.
그렇게 네팔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 오늘도 다시 타멜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이제는 타멜지역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지영언니가 문신를 한다기에 찾아갔었는데 발목에 살짝 띠를 두르는 가격이 무려 7,000루피! 정말 너무 비싸다.
지금은 김치하우스. 시간은 오후 1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
오늘이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왕궁이나 사원들도 제대로 안보고 그냥 타멜만 몇 일 묵어서 매우 아쉽기도 하고.
네팔에서의 남은 시간. 나에게 Have a nice day!
20020722
아직도 여행의 날들은 남았지만 이상하게 여행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오늘이다.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
많이 아쉽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여행을 하는 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서 일 것이다.
익숙해서 편하지만 그래서 지치게 되는 곳을 잠시지만 빠져나올 수 있는 것.
여행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내가 가진 못난 부분이 드러나지만 그래도 여행은 잠시 나를 놓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방관자가 되어서 좋다.
하루종일 뒹굴뒹굴 센치해져 있다가 어제 맞춘 옷을 찾으러 갔다.
어제 만난 아니타와 수니타와 약속한 시간은 오후 5시.
우산을 들고 릭샤를 타고 옷가게 근처로 지영언니와 찾아갔다.
그리고 만들어진 옷을 입는데 너무 타이트하다.
여러 번 고쳐서 겨우 옷을 입고 아니타와 수니타의 집으로 향했다.
그 전에는 나의 씨디도 교환하고.
집에 도착해보니 그 두 명은 보기엔 매우 잘사는 집 규수들처럼 보였는데 정말 작은 집이다.
그들이 못살아서가 아니라 그 여자분들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충격이었다.
둘은 매우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도 잘하고 그리고 야망이 서린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쨌든 온 가족의 환대를 맏으며 달밧을 먹고 얘기도 나누고 그들의 사진도 구경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는 꽤 먼 거리의 우리 숙소까지 그 분들이 데려다주셨다.
잠시나마 브로커가 아닐까 의심해서 너무나 미안했고 설사 그들이 브로커라 하더라도 그들의 환대만은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호의를 호의로 받으며 살고 싶었는데 부끄럽다.
그렇게 숙소에는 들어오기는 했지만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이제 나는 태국으로 그리고 지영언니는 인도로 간다. 언니와는 티벳, 네팔에서 같이 다니며 정이 많이 들었는데.
술이나 사서 숙소에서 마시자고 길을 나섰는데 오늘 약속이 엇갈렸던 치주와 지선이를 길에서 반갑게 재회했다.
호텔에서 술도 마시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다 새벽녁에서야 잠이 들었다. 그래서 기상시간인 5시를 놓쳐서 다른 일행이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올때까지 자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지각이라니. 최악이다.
혼비백산하여 배낭에 짐만 쑤셔넣고 세수도 못하고 후다닥 도망치듯 네팔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비행기를 비몽사몽간에 탔는데 기류가 너무 심해서 기체가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무사한 도착. 여기는 방콕이다.
훅- 밀려오는 후덥지근한 공기.
그리고 또 한번 달라지는 사람들의 외양.
택시를 타고 그 창 밖으로 보이는 방콕의 모습은 서울과 그리 달라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방콕 카오산로드의 한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