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은 장모님사랑
(쑥 개떡)
‘쑥 갠 떡’이 맞지만 흔히들 부르는 말이라서 그렇게 불러 봅니다.
6년 전.
장모님께서 초등학생 손자 손녀 교육을 도시에서 시키고 싶다며 부안에서 광주로 이사를 나오셔서 우리아파트 바로 윗 층에 사시게 됐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솜씨로 주변 공터에 배추, 상추, 깻잎, 완두콩 고구마 등을 심어 풍성한 식탁을 주시니 감사할 일이었는데 어느 날 손수 만드신 개떡을 뱃속이 출출한 오후에 만들어오셨습니다.
‘아, 이 맛........ 못 먹고 못살던 '대~한 민국'을 살렸던 민족에 떡 생명의 떡인 개떡......’
이젠 모든 것이 풍요로워 옛날에 먹었던 그 꿀맛은 잊었지만 세월을 거꾸로 돌려 그 시절 생각을 하며 '장모님~ 개떡이 담백하고 쫀득쫀득한 것이 참 꿀맛이네요~'했더니 무척 좋아하시며 그 뒤로도 개떡을 쪄주셨습니다.
그런데 도시생활 2년 만에 아이들 교육도 좋지만 농사도 지어야하고 홀로 계신 장인어르신 식사도 걱정이라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5월 부안에서 택배가 왔습니다.
묵직한 상자를 열어보니 연두색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에 '개떡 반죽덩어리'뭉치였고 전화로'자네가 개떡을 좋아해서 시골에 흔한 쑥 뜯어다가 만들었는디 냉동실에 얼려두고 먹을 만큼 하나씩 녹여서 쪄먹게~'하시는데 이사하실 때 개떡을 찌는 찜통을 우리 집에 놓고 가셨음을 알고 사위사랑 장모님마음에 울컥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한 달도 못 가서 개떡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허전한 듯 냉동실을 열며 개떡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우리는 장모님 말씀에 따라 개떡을 만들었습니다.
만드는 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파릇한 5월 쑥을 소다와 함께 넣어 쑥 잎이 풀어지지 않을 만큼 삶고, 하루쯤 물에 담가 너무 진한 쑥 향을 빼고, 물에 불린 5킬로그램에 쌀과 함께 방앗간에 가져가면 소금과 설탕을 넣어 잘 반죽해 줍니다.
그리고 반죽덩이를 집에 가져와 잘 주물러 네모반듯하게 10여개 덩어리를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 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개떡은 주무를수록 쫀득쫀득 한 맛이 나고 좀 더 영양가 있게 먹으려면 완두콩이나 돈부를 넣어 반죽해서 꾹꾹 눌러 호떡보다 조금 작게 만들면 울퉁불퉁 개떡이 됩니다.
그런데 깜빡 잊고 콩을 반죽 때 넣지 않고 만든 뒤에 박으려면 빠져버리지요
그리고 우리부부가 개발한 특별한'노하우'를 알려 드리자면 뒷산에서 따온 '맹 감'잎을 바닥에 붙이고 없으면 칙 넝쿨 잎이나 댓잎도 서로 엉겨 붙지 않아 좋고요 솔잎을 얹어 30분쯤 찌면 연두색 개떡은 진한 쑥 색에 반들반들한 개떡이 됩니다.
이 개떡은 뜨거울 때 먹는 것도 좋지만 1시간정도 지나 약간 겉이 말랐을 때 먹어야 더 쫀득한 맛이 나고 그리고 바닥에 깐 맹 감잎은 개떡을 찔 때 서로 붙지 않는 역할도하지만 먹을 때 손에 들어붙지 않으니 맹감 잎은 카스테라 종이 떼어내듯 떼어 내고 솔잎은 급하게 먹는 물에 가랑잎이라 생각하고 떼어내고 한 입 베어 물면 쑥 향과 솔 향이 솔~솔 나는데 맹감 잎이 암을 억제 한다는 소문에 그것까지 먹는데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카~~~이 맛!'
아침식탁에서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개떡을 아내가 맛있다고 먹는데 저는 정성 들여 만든 개떡 모양이 너무너무 좋아 선뜻 한 입도 베어 물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떡을 찌는 날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이 개떡을 좋아해 택배로 부쳐 줄때. 교회 갈 때 우리를 카풀 해 주시는 분께 고마움을 표 할 때. 그리고 변두리에 우리 옷가게를 찾아주시는 분 중에 개떡을 보고 반한 처녀 교수님이 오신다고 전화해주신 날입니다.
그분이 오시면'아니, 이게 개떡이라 구요? 무슨 말씀? 이건 개떡이 아니라 예술작품이에요'
그분께서는 이 개떡을 '예술작품'이라고 말하셨고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깝고 혼자보기도 아깝다 시며 동료 분께 선보이고 싶다면서 몇 개를 가져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예술 작품'을 주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본시 예술품이란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빛이 나는 것이라 이 떡을 부를 때 촌스럽게 개에 힘을 주어 '갯떡'이라고 폄하는 사람은 절대로 안줍니다.
개 떡. 아니 예술 떡!
만드는 과정에서 밥상 펴놓고 쭈그리고 앉아 꾹꾹 누르고 주무르느라고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만 하다못해 미물인 개도 저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데 갯떡을 '예술 떡'이라며 알아주는 그 교수님 말씀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더 정성을 들여 '예술 떡'을 쪄 냅니다.
끝으로 평소에 칭찬과, 긍정과 아름다운생각만 가득 차서 결혼을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오신 그분이'예술 같은 만남'으로 행복한 가정 이루어지길 기도 해봅니다.
어젠 장모님께서 또 개떡덩이 30여개를 택배로 부쳐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