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색동저고리를 입고 알록달록 옷맵시를 뽐내고 있는 강원도의 산들 중에 유달리 누런 억새만을 빽빽이 품은 채 외톨이가 된 산이 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민둥산(1,119m)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 산에 올라 나무 한 그루 없이 평평한 산을 보고 있노라면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난다고. 법정스님은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엔가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크게 버릴 때 크게 얻을 수 있으며,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다. 텅 빈듯하나 모든 이에게 꽉 찬 즐거움을 주는 이 민둥산이야말로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산세가 둥글고, 특히 정상에 오르면 완만하게 펼쳐진 참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산을 오르는 것에 비해 훨씬 수월한 산. 능선을 따라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30여 분은 억새밭을 헤쳐 가야 할 정도로 억새가 많은 것은 산나물이 많이 나게 하려고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나. 억새꽃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까지 피며, 이곳에선 해마다 10월 중순에 민둥산 억새축제가 개최된다.
요즈음 같이 하수상한 시절에 산행 중에 만나는 올곧은 전나무 숲과 오밀조밀 불타오르는 단풍이 바쁜 발걸음을 부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