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보이나니
목경찬 | 서울 불광사 불교대학 교수
필자는 올해 사찰 문화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그 동안 산과 절을 미친 듯이 다니고, 그것을 토대로 사람을 만나가고, 강의하고, 그런 결과물로 책을 만든 것입니다. 책머리에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어두었습니다.
대웅전이 어떠한 건축 양식이라는 지식보다도, 대웅전에 계신 분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아니, 대웅전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잠시 법당에 앉아 쉬어 가는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아는 것 너머 볼 수 있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겼으면 합니다. 천안 각원사 청동대불을 돌아보고 어떤 보살이 말했습니다. “저 부처님은 엉덩이가 제일 멋있어!”
-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中
필자는 무엇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주눅들지 말고 자신의 느낌대로 느긋하게 절에 쉬었다 가라는 바람을 이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짧은 서평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책을 내기 전 출판사 측에서도 책 날개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적어둔 것을 삭제하게 하였습니다.
필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보다는 “아는 것 너머 볼 수 있는 힘”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전 유홍준의 글 때문에 필자의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마저도 그 분 말씀으로 읽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참으로 멋있는 말입니다. 이 땅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적은 그 시절에는 참으로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그 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 말을 꺼낸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말에 대한 느낌을 통해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사찰을 찾는 마음가짐 하나를 제시하고자 할뿐입니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에 대한 “주눅”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에 대한 목마름을 동시에 가집니다. 이러한 목마름은 어떤 경우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 물론 강박감 정도는 아니겠지만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속에는 ‘남은 아는 데 나는 모른다’라는 “비교”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합니다.
옛말에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이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약간 삐딱하게 말해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지 꼬라지 대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선입견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어느 재일동포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지 말고 작품을 봐라.”
이 말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가지게 되는 선입견을 경계한 것입니다. 큐레이터의 눈으로 보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작품은 어느 한 사람의 시각에 의해 닫힌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에 따라 다양하게 열립니다. 예를 들면, 시 “꽃”에 대한 시험문제에 대해 그 작품을 쓴 김춘수 시인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래도 알아야 뭐가 뭔지 알죠.” 이 말 역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알아야 그것을 토대로 더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말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글을 우리에게 심어준 유홍준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조선 정조의 유한준의 글)라고 하는 옛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사랑하면”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사랑을 통해” 아는 것으로 보면 같은 것도 그 전과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내 앞에 중요한 것이 있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스님은 출가 전 전국 곳곳에 있는 석탑을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 단지 탑 옆에 적혀 있는 안내 표시만을 보며 탑을 이해하였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니 이제 탑을 보면 전문가 못지 않게 그 탑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 “관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 “관심”은 결코 바쁜 삶과 함께 하기는 힘듭니다. 느긋함 속에 주위를 사랑하고 관심도 가질 수 있습니다. 빠른 호흡으로는 전체를 보기 힘듭니다. 느린 호흡으로 볼 때, 여러 관점에서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느린 속도로 달릴 경우 시야가 넓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느린 호흡으로 세상을 보면 평소 그냥 스쳐지나간 것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것에 마음을 두는 순간 그것은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성지순례이든 문화답사이든 너무도 빠르게 움직입니다. 모처럼 낸 시간이라고 더 많이 봐야 한다며 여기저기 바쁘게 다닙니다. 그런데, 바쁘게 다닌다고 몸만 피곤하지 어디를 갔다왔는지 모르기 일수입니다. 저 역시 시행 착오를 많이 한 탓에 이제는 하루에 여러 곳을 다니는 것보다는 한 두 곳만 정해 다닙니다. 사찰의 경우 몇 시간씩 머물면서 법당에 그냥 앉아 있어보기도 하고, 사찰 한 곳에서 사찰 풍광에 빠져보기도 합니다. 그 순간 물소리, 바람소리, 풍경소리 등 모든 것이 모두 새롭게 다가옵니다.
어떤 경우 사찰 한쪽에 혼자 있는 제 모습을 보신 스님이 건네주는 차 한잔은 더욱 향기롭습니다.
첫댓글 2553(2009)년 광주 증심사 사지 "증심'에 썼던 글입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참 멋진 말입니다..^^
베낭하나 달랑 메고, 카메라 목에 걸고, 이 산 따라 저 물길 따라 유유자적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구먼...... 무지하게 부러우이 친구.......!!
누군지 알겠어...조만간 함보자구....
저는 그책으로 공부하면서 너무 행복했었습니다!! 마치 눈앞에 부연안개가 겉이는것같은 !! 교수님!! 아직도 모르는것이 너무많지만
교수님 덕분에 조금은 아주조금 무엇인가를 알아가고있습니다~~